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눅강03]쉼 없는 기도로 열리는 평강의 길(눅 1:5-2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1,567 2012.08.09 16:48

본문

[눅강03]쉼 없는 기도로 열리는 평강의 길(눅 1:5-25)

기도시간에 배달된 기쁜 소식

5절에서 ‘반열’(Courses)이란 성전에서 봉사를 담당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조(組) 편성을 말한다. 반열은 다윗 왕 때 아론의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을 24개 조로 나누어 조별로 일주일씩 일 년에 두 차례 성전에서 봉사하게 한데서 비롯되었다(대상 24:1-19). 각 조의 이름은 처음 조를 나눌 당시에 각 조의 조장의 이름을 따랐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속한 조는 아비야 조로써 8번째였다(대상 24:10). 임무교대는 저녁 희생제사(오후 3시) 전 매주 안식일에 있었다.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은 7천여 명, 레위인들은 1만 1천여 명, 도합 1만 8천여 명에 이르렀고, 별도의 생업들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 매일 성전에서 봉사한 자들의 수가 750여명이었다. 이 가운데 290여명이 제사장들이었는데, 이들 가운데서 제비뽑기에 당첨되어 성소 봉사자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제사장이라도 함부로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하루 두세 차례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경우 제사장들은 일생동안 구경조차 못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의인’이란 613개의 하나님의 계명들과 온갖 규례들 즉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계명들을 어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랍비들이 만든 울타리 법들(Gezeiroth)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스가랴와 엘리사벳이 의인이라고 불린 이유는 6절에서처럼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절에서 보듯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의인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다. 무자(無子)는 형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칠거지악에서처럼, 유대인들에게 무자는 파문이나 이혼을 당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게다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자식을 갖기에는 이미 너무 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의(義)를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아들을 주셨다.

사가랴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기쁨의 소식이 배달된 것은 그가 성소에서 분향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누가는 11-13절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성전은 휘장으로 지성소와 성소를 갈라놓고 있었다. 지성소에는 서편 벽 앞에 법궤 한 가지만 놓였다. 그러나 성소에는 동편 출입구에 섰을 때 정면으로 휘장 앞에 향단이 놓였고, 휘장에는 체루빔 천사들이 공교(工巧)히 수놓아져 있었다. 성소 왼편에 일곱 개의 등잔을 올리는 등대가 놓였고, 성소 오른편에 열두 덩어리의 빵을 진열하는 상이 놓였다. 빵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바꿔놓지만, 분향은 아침과 저녁에, 등잔불의 정리는 아침에, 등잔에 불을 밝히는 일은 저녁에 이뤄졌다. 10절에서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였다”에서 보듯이 분향은 아침과 저녁기도시간에 이뤄졌다. 또 분향은 기도를 상징한다(시 141:2, 계 5:8, 8:3-4). 사가랴가 분향, 곧 기도하고 있을 때 그 응답을 갖고 천사가 나타났다. 기도는 응답의 도구이다.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생을 사가랴의 기도응답으로 보았다. 기도시간이 바로 문제해결의 시간임을 보여준 것이다.

누가의 역사이해

누가복음 1장에서 우리는 야누스처럼 두 시대의 문들과 두 인물들의 등장을 볼 수 있다. 늙은 엘리사벳은 옛 시대의 상징이요, 세례 요한은 옛 시대의 문을 영원히 닫을 자였다. 그러나 젊은 마리아는 새 시대의 상징이요, 예수님은 새 시대의 문을 영원히 여실 분이셨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등장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歷史)를 연결하는 고리였다. 세례 요한의 등장은 비범하였다. 그는 구약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인 사무엘과 엘리야한테서 예표를 갖고 있었다. 세례 요한의 출생은 사무엘의 것과 매우 흡사했다. 양가부친이 모두 제사장 출신이었다. 양가모친이 모두 불임여성들이었다. 두 아이가 모두 기도응답으로 태어났다. 두 아이가 모두 하나님께 드려졌다. 두 사람 모두 왕의 임직을 위해 세워졌다. 사무엘은 옛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기 위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고, 세례 요한은 새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삼기 위해서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었다. 사무엘이 사사시대와 예언자시대를 연결하였듯이, 세례 요한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연결하였다. 한나가 찬송하였듯이, 마리아도 찬송하였다. 누가는 이런 점들을 자세히 연구하여 성령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시켜나가고 계신가를 파악하였다. 사무엘의 출생에 깊이 개입하셨던 성령님은 세례 요한의 출생에도 깊이 개입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역사 속에서 드문드문 이뤄지는 단편들이 아니라, 아담이후 지금까지 또 미래에까지 끊임없이 지속되는 연속적인 역사라는 것이 누가의 역사이해였다.

누가는 이 같은 역사이해에서 예수님의 출생에 주목하였다. 사무엘과 세례 요한의 출생에 깊이 관여하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출생에서도 특별섭리로 관여하시고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계획을 성취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사무엘의 출생과 세례의 요한의 출생에서 동질성을 발견한 누가는 예수님의 출생에서도 이들과의 동질성을 발견하였다. 이런 동질성의 관점에서 누가는 양가부모의 신실한 믿음과 꾸준한 기도와 자비하신 하나님의 기도응답과 그 응답을 전한 천사의 수태고지와 산모와 태중아기의 성령 충만을 소개하였다.

성령 충만은 기도와 함께 누가가 복음서에서 강조한 핵심 주제들에 속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성령 충만함 속에서 성령님의 개입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또 미래에도 연속된다는 것이 누가의 역사이해였다. 누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하는 힘을 기도와 성령 충만으로 보았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을 갖게 된 힘은 구름기둥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영의 임재와 여호수아와 같은 신앙인들의 간절함에서 비롯되었다. 누가는 인류에게 평강의 길을 열었던 사무엘과 세례 요한이 모두 성령 충만했던 부모들의 기도응답으로 태어난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이미 성령 충만한 모친의 태중에 있었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모태 때부터 성령 충만했었다는 것을 보았다. 이점에 있어서 예수님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성령 충만한 자들과 기도하는 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만들어져왔고, 또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지속된다는 것이 누가의 역사이해였다. 인류를 평강의 길로 인도할 자들은 이렇게 기도와 성령 충만함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태어난 자들은 14절에서 보듯이 모두에게 기쁨이 된다.

구원사(救援史)의 연속성

세례 요한은 금욕생활을 지시받았다. 사명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종교탄압에 맞서 싸웠던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갖고 메시아의 길, 곧 평강의 길을 예비하기 위함이었다.

엘리야는 털이 많았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왕하 1:8)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떠돌면서 야훼신앙복원을 위해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였다. 스승 엘리야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를 갑절로(왕하 2:9)로 받았던 엘리사는 야훼신앙을 유린하고 탄압한 아합 왕국을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새 이스라엘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마 3:4) 빈들(80절)에 거주하면서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어조로 회개를 촉구했던 세례 요한은 옛 구습의 시대를 폐쇄시키고 새 시대를 열기위해서 요단강에서 회개의 침례를 베풀었다. 세례 요한이 죽자 예수님은 메시아신분을 공개하시고 새 이스라엘을 활짝 여셨다. 엘리사와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사역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동일한 심령과 능력을 가진 성도들에 의해서 성취되어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지속되어진다고 본 것이 누가의 역사관이다.

성령의 역사는 성도들의 기도와 합할 때 시너지가 발휘된다. 누가는 세례 요한의 탄생을 사가랴의 기도 때문으로 보았다. 기도는 응답의 열쇠라는 점을 아예 처음부터 강조한 것이다. 성경은 분향을 성도의 기도로 이해하였다. 다윗은 시편 141편 2절에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노래하였다. 자신의 기도를 성소의 분향에 비교했던 것이다. 계시록의 저자는 지상의 성전을 하늘 성전의 그림자로 보았다. 특히 향연을 성도의 기도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계시록의 저자는 5장 8절에서 향을 성도의 기도라고 하였다.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신 향기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성소밖에 있는 제단에서 피어오른 제물의 향연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성소 중앙에 놓인 향단에서 피어오른 거룩한 관유(향기름)의 향연이었다. 제물의 향연은 제 몸을 불태워 드리는 향기로써 우리 성도들이 몸과 시간과 재물을 바쳐 올려드리는 예배와 섬김의 향기를 말한다. 또 거룩한 관유의 향연은 기름과 향품을 섞어 제조한 향기름을 태워 드리는 향연으로써 우리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를 말한다. 계시록 8장 3-4절은 이 두 가지 모두를 언급하고 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에 향을 받아 담은 것은 제물의 향연이고, 성도의 기도는 성소 중앙에 놓인 향단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말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 하늘 보좌 앞 금 제단에 바쳐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가랴의 분향봉사와 기도는 맥을 같이 한다. 13절에서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고 하심은 사가랴가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준다. 사갸라는 자식을 구했을 것이고, 속히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간구했을 것이다. 천사의 기별은 정확히 이 두 가지에 대한 응답이었다.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강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