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강05]예수님의 유년시절(눅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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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05]예수님의 유년시절(눅 2:1-52)
예수님의 탄생이야기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누가의 기록은 마태의 것보다 훨씬 길고 자세하다. 글자 수로 비교했을 때, 누가의 것이 마태의 것보다 약 2.7배 정도이다. 마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30세 이전의 삶을 아예 기록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에 관해서 기록한 저자는 마태와 누가 뿐이다. 그런데 이 두 저자들은 출신 혈통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따라서 그들의 관심사도 달랐다. 마태는 아람어를 사용한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 그리스도의 교회 소속이었고, 유대인들의 희망(Ha-Tikvah)인 메시아도래와 왕국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는가를 소개하려 하였다. 한편 누가는 헬라어를 사용한 이방인으로서 안디옥 그리스도의 교회 출신이었고, 이방인들의 희망인 평화(Eirene)와 구원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고 있는가를 소개하려 하였다. 따라서 예수님 탄생에 관한 마태의 기록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태는 나라를 빼앗긴 유대인들이 6백년간 고대한 다가올 세상(Olam Ha-Ba)의 왕으로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분에 걸맞은 동방박사들의 예방을 부각시켰다. 한편 예수님 탄생에 관한 누가의 기록은 평화의 구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가는 오랜 외로움과 가난과 질고의 짐을 지고 사는 인류가 고대하는 평화의 구주로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나귀구유에 임하신 예수님의 신분에 걸맞은 양치는 목자들의 예방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베들레헴의 별과 동방박사들의 예방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요셉이 출산이 임박한 마리아를 대동하고 호적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간 것과 목자들의 예방이야기 및 예수님의 유년시절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누가의 평화의 왕은 마태의 유대 왕과 당대의 로마 황제와 대조된다.>
예수님의 탄생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예수님은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가 분명하다는 것, 그러나 그분은 유대인의 문자적인 왕이 아니라, 온 인류의 영적인 왕이시라는 것, 그분이 세우신 나라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했던 문자적인 다윗왕국의 재건이 아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의 왕국 곧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 그 나라는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것,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고 구원의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이방인에게조차 값없이 차별없이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동일한 내용을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동족인 유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이 희망하는 내용으로 소개하였고, 누가는 헬라인으로서 유대민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하였다.
바울을 도와 이방인 선교에 헌신했던 누가는 소외계층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기술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가를 피력하였다. 누가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글을 쓴 사람이다. 유대인들의 배타적 민족적 희망(Ha-Tikvah)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해석하지 않고, 주변부 이웃들인 열방민족들의 보편적 희망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적었다.
예수님의 유년시절이야기
누가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유대인 소년으로서 겪었을 법한 네 가지 사건을 소개하였다. 그 중의 세 가지는 유대인들이 연령대별로 아이들에게 행하는 중요한 종교의식들이다. 그것들은 할례와 장자의 대속의식과 성인의식이다.
누가는 순례(여행)를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테마로 삼았던 저자이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한 가난한 여성 속주민의 몸을 빌린 예수님은 태아의 상태에서조차 북쪽 끝 갈릴리에서 남쪽 끝 베들레헴까지 여행을 하셔야만 했다. 그것은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호적칙령에 따른 것이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순간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조차도 세속 황제의 칙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그것이 세속 황제에 의한 것인 듯싶어도 실제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위대한 섭리에 따른 것이었다. 메시아에 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지 않고 영적으로 성취되었지만, 예수님은 메시아의 예표인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셔야만 했다.
예수님은, 비록 영적이었지만, 구약예언의 성취를 위해 오셨기 때문에 유대인 소년으로서 가난했지만 율법의 규례대로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셨다는 점을 누가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소개하였다. 예수님이 도입하신 새 시대는 옛 시대와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옛 시대의 완성 혹은 성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남성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언약이 있다는 흔적을 몸에 표시하는 할례이다. 태어난 지 8일 만에 하는 할례의식(brit milah)을 통해서 유대인 남성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언약 공동체임을 나타내는 흔적을 몸에 지니게 된다.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 열 명 이상이 모여서 이 의식을 진행하는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연대책임을 갖기 위한 것이다. 갓난아기가 여자이면 첫 안식일 회당 기도회 때 이름을 부여하지만, 갓난아기가 남자이면 바로 이 할례의식 때 이름을 부여한다. 예수님도 이 할례의식 때에 이름을 부여받으셨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 간 것은 아기 예수님의 속전과 마리아의 정결예식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민수기 18장 15-16절에 따라 하나님의 소유인 ‘맏아들의 대속’(pidyon ha-ben)을 위해 속전의식을 출생한지 31일이 되는 날에 행한다. 만일 이 날이 안식일이면 다음날에 행한다. 이 때 지불한 몸값은 은전 5세겔이었다. 그 가치는 대략 일용직 임금으로 20여일어치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은전으로 5달러를 제사장이나 절차에 익숙한 경건한 자에게 주고 간략한 의식을 행한다. 22절의 “정결예식의 날이 찼다”는 예수님이 태어난 지 41일이 지났음을 의미한다. 레위기 12장에 따르면, 산모는 남자아이를 출산했을 때 41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여지고, 여자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80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여진다. 이 기간이 차야 산모는 번제물로 어린양과 속죄물로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제사장에게 가져갈 수 있었다. 가난해서 어린양을 바칠 수 없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각각 번제물과 속죄물로 바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면, 산모가 정결하게 되었다. 24절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했던 것은 그들이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가난은 누가의 관심사들 가운데 한 가지였다.
예수님의 성인식 준비
41-51절은 예수님이 열두 살 때의 일을 적고 있다. 유대인 소년에게 이 나이는 종교적인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유대인 소년은 만 13세에 성인식을 갖는다. 유대인들은 만 13세가 되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능력이 있으며 또 그 계약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할례가 하나님과 유대인 사이에 계약이 있다는 사실을 계약 당사자의 몸에 객관적으로 표시하는 행위이라면, 성인식은 그 사실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의식이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에서 취한 613개의 계명들(Mitzvot)과 수많은 울타리법들(Gezeiroth)을 갖고 있다. 성인식을 끝낸 유대인 소년은 이들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킬 의무를 갖는다. 이때부터는 부모의 책임이 면제되고, 자녀는 계명과 율법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 그는 이제 ‘계약 혹은 계명의 아들’(Bar Mitzvah)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인식을 치른 유대인 소년은 유대인 공동체 즉 이스라엘의 정식회원이 된다. 따라서 유대교의 모든 종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기도회 때 회중을 대표하여 성경봉독과 기도를 드릴 수 있고, 기도회를 마감하는 찬양인도와 성경두루마리를 묶거나 법궤 안에 보관할 수 있으며, 헌금위원으로 뽑힐 수도 있다. 유대교에서는 최소한 열 명의 성인 남성이 있어야 회당설립과 기도회를 열 수 있다. 성인식을 마친 소년은 회당조직과 기도회 때 필요한 최소인원(minyan) 열 명의 숫자에 포함된다.
유대인 소년은 12살 때 성인식을 준비한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옷 술(zizit)이 달린 기도보(tallith)를 어깨에 걸치는데, 이때 부모는 옷 술이 없는 기도보를 선물하여 일 년 간 임시로 사용토록 함으로써 기도생활에 익숙토록 하며, 성인식 30일 전에는 옷 술이 달린 완전한 기도보를 가지고 아침 기도회에 참석토록 한다. 이날 부모는 간소한 음식을 준비하여 이를 기념한다. 성인식 7일전에 보통은 안식일 오후 기도회 때 토라를 생애 처음으로 읽을 기회를 주어 일주일 후에 있을 성인식을 준비하게 한다. 성인식 5일전에 보통은 월요일 아침 기도회 때 다시 한 번 토라를 읽게 한다. 성인식 이틀 전에 보통은 목요일에 세 번째로 토라를 읽게 한다. 그리고 성인식 하루 전에 금요일 기도회를 인도하도록 하고, 당일에는 설교까지 하도록 한다.
요셉과 마리아가 열두 살이 된 예수님을 명절에 예루살렘에 데리고 올라간 것은 성인식 준비와 무관하지 않다. 40절,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와 51-52절, “예수께서 ...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유년시절에 예수님이 예쁘게 신앙교육을 받으셨다는 것과 그런 착실한 신앙교육의 결과로 예수님이 훌륭한 성인이 되셨음을 보여준다. 누가는 2장에서만 “모세의 법대로”(22절),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24절), “율법의 관례대로”(27절),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41절), “절기의 관례를 따라”(42절)란 표현들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할애하고 있다. 이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얼마나 성실하게 예수님을 신앙으로 양육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예수님께서 도입하신 새 언약시대가 옛 언약시대와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옛 언약시대의 완성 혹은 성취에서 비롯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역사 속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밖에 예수님의 유년시절을 기록한 책들에는 외경 복음서들인 야고보원복음서와 도마복음서가 있다. 야고보원복음서는 2세기경에 예루살렘에서, 도마복음서는 2세기 후반에 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마복음서는 나그함마디 도서관에서 발견된 이집트의 콥틱 영지주의 도마복음서와는 다른 책이다. 이들 외경 복음서들은 신약정경 복음서들이 기록된 지 최소 50년에서 최고 100년 뒤에 쓰인 것들로써 사도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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