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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14]예수님의 평화군(平和軍) 임무1(눅 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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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715 2012.11.0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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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14]예수님의 평화군(平和軍) 임무1(눅 7:1-17)

공평하게 주어지는 희년

누가복음 7장은 예수님의 평화군(Peace Corps) 임무가 희년선포임을 보여준다. 마태는 109절이나 되는 긴 산상수훈 직후에 10개의 기적을 소개함으로써 예수님이 말씀과 능력에서 모세보다 뛰어난 메시아이심을 소개하려 했다. 반면에 누가는 30절의 짧은 평지산상(平地山上)수훈 직후에 2개의 기적만을 소개하였다. 누가는 예수님의 손 내밀어 생명구하기가 민족성별 빈부귀천의 상관없이 이방인 백부장의 천한 종(노예)과 과부의 귀한 외아들에게 공평하게 펼쳐졌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또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것은 믿음을 보신 때문이었고, 나인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것은 연민 때문이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종이나 외아들은 모두 사랑받는 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이들의 죽음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아픔이었다. 따라서 누가는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려는 자의 깊은 연민과 손을 내밀어 고침을 받으려는 자의 믿음은 민족성별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놀라운 기적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세 사람씩 두 쌍이 등장하고 있다. 두 쌍 가운데 한 쌍은 이방인 남성, 유대인 과부, 죄악 가운데 살았던 유대인 여인이었다. 또 다른 한 쌍은 병들어 죽어가던 종(노예), 이미 죽은 과부의 외아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이었다. 이 여섯 사람은 민족성별 빈부귀천을 각각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로마시대의 종들은 조선시대처럼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전쟁노예들이었다. 전쟁노예들 가운데는 배운 자들이 많았고, 더불어 그들의 몸값은 보통노예들보다 훨씬 비쌌다. 비숙련 노예는 120일 노동자 품에 해당되었지만, 의사, 교사, 기술자와 같은 숙련 노예인 경우에는 가격이 40배나 높았다. 로마에서는 헬라인 가정교사가 가장 값이 비쌌는데, 가장 값싼 노예와의 가격차가 무려 100배나 되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백부장이 종을 사랑하였다는 말은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valued highly)는 뜻이다. 죽게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종이었다. “사랑하는”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엔티모스’(entimos)로써 ‘귀중한,’ ‘소중한,’ ‘가치 있는’이란 뜻이다. 죽었던 과부의 외아들도 마찬가지이다. 병들어 죽게 된 백부장의 종보다 더 귀했으면 귀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인 과부에게 외아들은 삶의 의지요 희망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여성에게 ‘기업 무를 자’가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였지만, ‘기업 무를 자’가 없다는 것은 큰 수치였다(룻 4:14). 다말과 나오미의 사례뿐 아니라, 과부에게 대가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과부가 고인의 형제와 결혼하도록 한 수혼(嫂婚, Levirate marriage)법이 있었던 것을 봐서 알 수 있다. 또 바리새인들은,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잘못이 인정되지만, 그들은 민중에게 존경을 받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은, 본문의 내용으로 볼 때, 성품이 좋았던 것 같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누가복음 7장은 민족성별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고 귀하며 가치 있는 존재들임을 암시한다. 만일 그들에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는 더욱 명백한 사실이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권세를 주셨기”(요 1:12) 때문이다.

믿음으로 얻는 희년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 16-30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희년이 이제 성취될 것과 그 희년의 복을 맞이할 자들이 독점적으로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여 믿는 자들이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없다면, 유대인일지라도 희년의 복을 누릴 수 없고, 사렙다의 과부나 아람(시리아)의 나아만처럼 이방인일지라도 믿음만 있다면, ‘주의 은혜의 해’인 희년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누가는 이 희년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는가를 5-7장에서 설명하였다. 5장에서 인간들의 오랜 외로움, 오랜 출렁임, 오랜 헛수고, 오랜 배고픔, 오랜 병듦의 상징이었던 빈 배에 가지셨던 예수님의 관심(사명)을, 6장에서 희년을 실현하기위한 평화군의 조직과 강령선포를, 그리고 7장에서 누가 희년을 누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누가복음 7장에 소개된 이방인 백부장(1-10절), 나인 과부(11-17절), 죄악 가운데 살았던 유대인 여인(36-50절)은 누가 희년을 누릴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인물들이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백부장에게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신 일은 엘리사가 이방인 나아만에게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한 것을 기억나게 한다(4:27). 예수님께서 나인 과부에게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신 일은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에게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한 것을 기억나게 한다(4:25-27). 또 예수님께서 죄악 가운데 살았던 유대인 여인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선포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로 희년을 선포하신 글,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4:18-19)를 기억나게 한다.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께 물었던 질문의 답과 설명도 이 희년선포에 준한 것이었다(18-35절).

누가는 희년의 복이 민족성별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듯이, 유대 땅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역에도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려 했다. 고향 나사렛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희년이 이제 성취될 것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62km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어떤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셨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제2고향이며, 갈릴리 호수가의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로써 회당과 세관이 있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및 세리 마태가 이곳 출신이었다. 그리고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신 나인은 가버나움에서 남서쪽으로 40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고 나서 언급된 곳이 “온 유대와 사방”이다. 17절에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퍼진 것을 언급한 후에 18절 이하에서 유대 땅과 요단 강변에서 활동했던 세례 요한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누가복음 7장에 언급된 인물들은 신앙인들이었다. 60-80명으로 구성된 로마군 소대를 지휘했던 백부장은 유대교에 입교한 ‘하나님 경외 자’였다. 그에게는 회당을 지어 줄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나인 과부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악 가운데 살았던 여인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연민으로 주어지는 희년

누가복음 4장 27절과 열왕기하 5장 1-14절에 언급된 아람(시리아) 장군 나아만은 누가복음 7장 1-10절에 언급된 백부장 이야기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누가복음 7장 1-10절을 요약해 보면,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존경받는 로마군 장교였고, 유대교 장로들이 대신해서 종의 치유를 예수님께 청탁하였으며, 백부장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원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치유가 이뤄졌다. 열왕기하 5장 1-14절을 요약해 보면,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아람을 구원한 존귀한 자였고, 그의 나병치유를 위해서 유대인 소녀가 엘리사에게 중재하였으며, 나아만은 엘리사를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원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치유가 이뤄졌다.

여기서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거나 집에 들이지 아니한 것은 그가 하나님 경외 자로서 이미 배워 알고 있는 유대교의 정결규례에 따라 혹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금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유대교의 울타리 법에 저촉되어 부정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집에서 부리는 종(노예)조차 아끼고 사랑하는 자의 태도로써 예수님을 배려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울타리 법들에 전혀 개의치 않고 행동하셨고, 또 친히 백부장의 집을 향하여 가고 계셨지만, 백부장의 이런 태도와 배려와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9절에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크게 칭찬하셨다.

예수님의 칭찬은 단순히 백부장의 믿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배타적 선민의식, 땅의 문자적 이해, 하나님 독점의식 때문에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해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카샤룻’(Kashrut) 음식법을 만들어 엄격히 지키게 하였다. 예수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차별 당하고 하나님께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당하는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하셨다.

누가복음 4장 25-26절과 열왕기상 17장 8-24절에 언급된 사렙다 과부는 누가복음 7장 11-17절에 언급된 나인 과부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나인 과부의 사건에서 예수님의 관심은 죽은 외아들보다 외아들을 잃은 과부에게 집중되었다. 예수님은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 말라”고 위로하셨으며, 죽은 청년의 관에 손을 대시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고, 예수님은 그를 모친의 품에 돌려 보내셨다. 이것은 이미 5장에서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오랜 외로움, 오랜 출렁임, 오랜 헛수고, 오랜 배고픔, 오랜 병듦의 상징이었던 빈 배에 관심을 보이셨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사건이었다. 5장에서 빈 배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었던 어부들의 상징이었다. 빈 배는 문둥병자의 상징이었다(12-16절). 빈 배는 중풍병자의 상징이었다(17-26절). 빈 배는 손가락질 당하는 세리의 상징이었다(27-39절). 누가가 예수님의 희년 사역으로써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있었던 사건들을 연상시킨 것은 이방인, 여성, 약자, 가난한 자, 병든 자, 고통당하는 자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속되어져 왔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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