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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25]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위한 무장2(눅 1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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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901 2013.02.13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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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25]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위한 무장2(눅 11:5-13)

간청의 기도

누가는 사무엘을 세례 요한의 모형으로 소개한 바가 있다. 누가가 사무엘의 출생배경에 한나의 간청의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사무엘상 1장 10-20절을 보면,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원통하고 슬픈 심정을 여호와 앞에 토해내고 있다. 이 애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아들이 사무엘이다. ‘사무엘’이란 이름은 ‘야훼께 구함’이란 뜻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비유 ‘간청의 기도’가 연결된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예수님의 기도비유가 세 개나 있다. 그 첫 번째 것이 11장 5-8절의 ‘간청의 기도’이고, 나머지 두 개는 18장 1-14절에 연이어 실린 ‘끈질긴 기도’와 ‘겸손의 기도’이다. 누가는 11장 5-8절 간청의 기도에 이어진 9-13절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끝 절인 13절,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이다. 이 부분을 마태복음 7장 11절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가 그냥 “좋은 것”이라고 소개한 것을 누가는 구체적으로 “성령”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나 마태가 “좋은 것”이라고 말한 것은 하늘 가나안땅이다. 마태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좋은 것을 하늘 가나안땅 즉 천국이라고 말한 것을 누가는 좋은 것인 하늘 가나안땅을 받게 할 능력의 하나님이 성령님이라고 말한 것이다. 누가는, 바울이 하나님의 선물이신 성령님을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가나안땅을 상속받게 할 보증과 인침이라고 말한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셔야 좋은 것인 하늘 가나안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성령”이라고 말한 것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간청의 기도가 결국 구하는 자에게, 몰라서 구하지 못한 더 좋은 것인 성령님까지 하나님의 선물로 받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이전에 활동했던 하나님의 종들뿐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게도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계셨고, 구약성서에 성령님에 관한 예언의 말씀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예수님 당시 제자들과 민중이 성령님을 받아야 한다거나 성령님 받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누가는 반세기 전에 예수님께서 들려주셨던 간청의 기도비유를 통해서 하늘 예루살렘에로의 오름을 훼방하는 자들과의 투쟁에서 이기려면 끈질긴 기도가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성령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령님은 인간이 구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하늘 가나안땅을 유업으로 받게 할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활동

누가가 이해한 하나님의 구원활동은 그 역사가 태곳적부터이다. 그리고 인간들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성령님으로 보았다. 구약시대와 예수님시대에도 활동하셨고, 신약시대에도 활동하고 계신다. 다만 구약시대와 예수님시대에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활동하셨다. 구약시대에 성령님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출애굽부터 바벨론에 유배당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성령님으로부터 능력을 덧입었던 인물들은 모세, 여호수아, 사사(판관)들, 예언(선지)자들, 몇몇 왕들이었다. 여기까지가 구약성서시대이다. 이어진 400여 년의 기간은 그 대부분을 헬라가 지배했다. 이 기간을 신구약중간기라 부른다. 이 기간의 이야기가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개신교가 구약외경이라 부르며 사용하지 않는 이 시기에 기록된 9권의 글을 거룩한 글로 인정하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 시기, 곧 신구약중간기는 유대교 랍비들의 율법주의 활동이 성령님의 활동을 가로막았던 암흑기였다.

400여년의 침묵을 깨고 성령님의 활동이 다시 시작된 것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출생 때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적인 생애에서 성령님의 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다. 3년 6개월 남직 되는 기간에 예수님의 사역에 집중된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는 모세의 사역에 집중되었던 것보다 월등히 크고 중한 것이었다. 그 차이는 모세시대의 2백만 히브리민족과 예수님 시대의 2억 명 열방민족의 차이, 즉 100배 만큼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모세이후 예수님까지가 구약(옛 언약)시대인데, 이 시기의 성령님의 활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능력을 덧입히던 시대였다. 그러나 신약(새 언약)시대에는 구약시대 때보다 훨씬 더 특별한 방법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하고 계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신약시대를 성령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50일째, 승천하시고 10일째 날인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유대인들의 아침 기도시간인 9시경, 기도하려고 예루살렘 성전영내 솔로몬 행각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심으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기도시간에 성전 뜰에서 혹은 유대교 회당에서 희생 제사를 대신해서 ‘쉐모네 에스레이’라 불리는 18개의 기도문을 낭송하고 있었다.

이 날에 나타난 성령님의 역사는 교회시대를 출범시키기 위해 제자들을 특별한 능력으로 덧입힌 외적 역사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모두에게 하늘 가나안땅의 상속을 보증하고 인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성령님의 내적 역사 즉 내주동거가 처음 시작된 날이다. 구약시대의 특징은 지상 가나안땅을 유대인들의 민족기업으로 유지시키는 것이었고, 이 기업유지를 보장하는 것이 구약(옛 언약)의 내용인 토라계명이었기 때문에 성령님의 보증과 인침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민족기업인 그 땅을 차지하여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저 하늘 가나안땅을 아직 기업으로 차지하지 못한 채 여전히 이방문화 속 지상광야에서 떠돌이의 삶을 살기 때문에 성령님의 내주동거를 통해 하늘 가나안땅의 약속을 보증 받고 인침 받을 필요가 있다. 이것을 성령님으로의 세례, 줄여서, 성령세례라 부른다.

간청의 기도비유에 담긴 뜻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손님 대접이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한 가지였다. 여관과 가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간청의 기도비유에는 먼 길을 찾아온 친구를 잘 대접해야한다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함께 들어 있다.

예수님의 간청의 기도비유는 한밤중에 예상도 못한 친구의 방문을 받고 대접할 음식이 없어서 이미 잠들어 있는 다른 친구를 찾아가 빵 덩어리 세 개를 빌리는 내용이다.

중동지방에서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밤에 여행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더라도 한밤중에 친구가 찾아오는 것은 특별한 경우요 곤란한 일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손님에게 빵을 넉넉하게 대접하지 않는다든지, 이미 쪼개놓은 빵조각을 내놓은 것은 손님을 모욕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주인은 빵조각조차도 갖고 있지 못했다.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대접하기위해서 다른 친구의 집으로 빵을 빌리려 간 때는 이미 깊은 밤중이라 문이 닫혀 있었고 모든 식구가 잠든 상태였다.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친구가 청을 거절할 것이 뻔해 보였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침에 문을 열어 놓으면 하루 종일 열린 채로 두었기 때문에,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표시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웬만하면 닫힌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대개가 가난하였기 때문에 집들은 방이 딸랑 한 개뿐이었다. 이 방이 낮에는 거실이 되고, 밤에는 온 가족이 함께 눕는 침실이 되었다. 따라서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온다면, 잠들었던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야 한다. 손님이 찾아오면 등불을 켜고 집안으로 친절히 맞아들여야 하지만, 그러자면 잠든 식구들을 모두 깨워야한다. 그런 무례함을 무릅써야 빵 덩어리를 빌릴 수 있고, 그런 번거로움과 수고를 감수해야 집주인이 문을 열어줄 수가 있는 그런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쪽도 물리설 수 없는 딱한 처지였다. 한밤중까지 여행하다가 숙식을 제공받기위해 찾아온 친구를 나몰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본문에서 “간청”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나이데이안’(anaideian)은 문자적으로 ‘고집’, ‘뻔뻔함’, ‘파렴치’ 등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말은 단순히 무리한 간청의 차원을 넘어서 무모하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끈덕진 요청을 시사한다. 집주인은 식구들이 누워 자는 한밤중에 찾아와 뻔뻔스러울 정도로 무모하게 간청하는 친구의 청을 이기지 못해서 결국 빵 덩어리를 빌려주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11장 8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는 말씀으로 교훈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집주인이 빵을 꾸려고 찾아온 친구의 무모하고 뻔뻔스러울 정도의 끈질긴 간청과 절박감 때문에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또 한나의 애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에 열심을 내야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말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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