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강31]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갖춰야할 덕목1(눅 1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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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31]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갖춰야할 덕목1(눅 14:1-35)
생명의 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은 마태복음에 20개, 마가복음에 18개, 누가복음에 20개씩 실려 있다. 그 가운데 누가복음에만 있는 기적이 다섯 개다. 첫 번째 고기 잡는 기적(5:1-11),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기적(7:11-15), 18년간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인을 고치신 기적(13:10-17), 수종병이 든 사람을 고치신 기적(14:1-6) 그리고 열 문둥이를 고치신 기적(17:11-19)이 누가복음에만 소개된 기적들이다. 이들 기적들은 모두 생명의 일이었다.
누가복음에만 실린 비유들도 많다. 고리대금업자(7:41-43), 선한 사마리아인(10:30-37), 간청의 기도(11:5-8), 어리석은 부자(12:16-21), 열매 없는 무화과(13:6-9), 연회의 말석(14:7-14), 큰 잔치(14:16-24), 제자의 길(14:28-33), 잃었던 동전(15:8-10), 탕자의 아버지(15:11-32), 지혜로운 청지기(16:1-8), 부자와 나사로(16:19-31), 주인과 종(17:7-10), 끈질긴 기도(18:2-8) 그리고 겸손한 기도(18:10-14)가 그렇다. 이들 비유들은 대부분 기도와 선교에 관한 비유들로써 생명의 일에 관련된다. 마태복음의 대부분의 비유들이 종말과 심판에 관한 비유들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것들 가운데 수종병이 든 사람을 고치신 기적(14:1-6)과 연회의 말석(14:7-14) 및 제자의 길(14:28-33)에 관한 말씀이 누가복음 14장만에 실린 것들이다.
수종(고창)병에 든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는 6장 1-5절에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비비어 먹은 이야기, 13장 10-17절에서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신 이야기와 함께 안식일 논쟁에 관련된 사건들이다.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를 쓴 마태라면 안식일 논쟁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헬라인으로서 헬라인을 위한 복음서를 쓴 누가까지 안식일 논쟁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안식일 논쟁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사건들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거나 초기교회에 안식일대신 주일을 지켜야한다는 이슈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초기교회가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모였다는 증거가 누가복음이 기록되기 20여 년 전에 이미 있었다(행 20:7절). 또 안식일 논쟁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한 음모와 관련이 있어서 누가복음에서의 안식일 논쟁은 배척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식일준수는 제4계명에 근거한다(출 20:8-11).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계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첫째,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를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는 것을 말한다. 둘째, 이 날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출 20:10절). 셋째, 이 날에 하지 말아야할 일은 창조행위(Melacha)를 말한다. 천지창조 때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째 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이다(창 2:2).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멈추셨던 것처럼 인간들도 안식일에는 모든 창조행위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창조행위의 범주를 39가지로 이해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이 침묵하기 때문에 랍비들이 출애굽기 31-35장에 언급된 성막(Mishkan)건축에 필요한 39가지 공정에 착안하여 만들었다. 성막구조는 우주의 축소판이고, 성막제조는 창조행위를 상징하므로 그 같은 창조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살림의 일
예수님은 안식일에 수종병에 든 사람을 고치셨다. 수종병은 심장병이나 신장병의 하나로 심장병일 때는 다리, 신장병일 때는 얼굴이 붓는병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우물에 빠진 아들이나 소를 건져주는 것에 비교하셨다. 과연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수님은 그들도 우물에 빠진 아들이나 소를 건져주고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안식일 법 가운데 ‘쭈드’(Tzud), 즉 가두기(덫 또는 올가미 설치)가 있는데, 동물을 코너로 몰아 놀라게 하거나 만지는 것이 금지된다. 이것은 동물을 잡아 가죽을 얻기 위한 것인데, 그 반대의 행위도 안식일 법에서는 통상 금지된다. 결국 안식일에는 살림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6장 1-5절에서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은 것을 바리새인들이 문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안식일 법에 ‘자르기’나 ‘꺾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자르기’(Kotzair) 금지법은 안식일에는 땅에서 나서 자라는 것을 가지나 잎 하나도 뽑거나 잘라서는 안 된다는 법이다. 예수님께서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사건을 언급하신 것은 살림의 일이 랍비들이 만든 안식일 법보다 우선되기 때문이었다.
또 6-11절에서는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것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문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인 ‘매듭풀기’(Matir) 금지법을 어기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3장 10-17절을 보면,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고치시고 나서, 분을 내며 책망하는 회당장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님께서 이 질문을 던지신 것은 안식일에 묶인 것을 푸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 사함의 권세가 있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고발할 증거를 찾고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6장 9절에서 물으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안식의 참뜻이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3장 4절과 11,16절에 쓰인 숫자 18은 구속과 매임을 상징한다. 사사기 3장 14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간 섬긴 일, 사사기 10장 8절에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이 십팔 년 동안 억압을 당한 일, 예레미야 52장 29절에 느부갓네살의 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 된 것이 다 그렇다.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한 여인은 사탄에 매인 때문이었고,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자들은 죄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밖에 누가복음 11장 37-41절에는 손 씻기 법 논쟁과 그릇 씻기 법 논쟁이 언급되어 있다. 손 씻기 법이나 그릇 씻기 법은 본질에서 벗어난 불필요한 의식들이다.
자리의 일
누가복음 14장은 자리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첫 번째는 수종병이 든 사람이 식탁을 가운데 두고 예수님과 마주 앉았다가 병 고침을 받은 이야기이다. 그는 제자리를 잘 선택함으로써 병 고침이란 행운을 안았다. 그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바리새인들과 미리 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그는 예수님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음으로써 병 고침을 받게 되었다. 물론 그의 동료들은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병 낫음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로서는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보다 병 낫음이 더 절박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예수님께 많이 고마워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초청받아 온 자들이 서로 상석을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펼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제신분에 맞게 처신하라고 충고하신 말씀이다. 또 복을 받으려면 잔치 때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고”(12절), 오히려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13절)고 권면하신 말씀이다. 세 번째는 큰 잔치에 초청받은 자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제자리를 비우고 채우지 않음으로써 엉뚱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는 경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의 길과 그 자리에 대해서 권면하셨다.
누가복음 14장에서 말하는 자리는 ‘토포스’(topos, 22절)이다. ‘토포스’는 ‘장소’란 뜻이며, 문학 철학 신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적었다. “세상에는 그야말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자리가 있다. 놀자리, 술자리, 별자리, 든자리, 난자리, 낄자리, 안낄짜리, 설자리, 앉을 자리, 잘자리, 죽을 자리,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부모의 자리, 맞선자리, 임산부 자리, 울자리, 웃을 자리, 부끄러운 자리, 자랑스런 자리, 일등 자리, 꼴등 자리, 빈자리, 그대가 머문 자리, 그대가 떠난 자리, 풍금이 있던 자리, 사랑을 나누던 자리....”
이처럼 자리란 말은 참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예수님께서 제자의 길에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6-27절)고 말씀하셨듯이, 자기 자리가 어떤 자리이든지 간에 제자리에 대한 부담감은 필히 갖고 살아야한다. 자기 자리가 부담되는 자리란 인식도 필요하다. 여기서 자리에 대한 부담감은 비용을 계산해보고, 손익을 따져보며, 비용편익을 분석해보는 것과 같고, 소금의 맛을 잃지 않는 행위와도 같다.
예수님을 안식일 날 집에 초청한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는 제자리의 본분과 사명을 망각하고 오해한 자들이다. 상석을 탐한 자들이나 초청을 받고서도 잔치자리를 채우지 아니한 자들도 마찬가지이고, 헌신과 희생보다는 명예와 권세를 탐한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본분, 겸손, 배려, 직무에 대한 미덕이었다. 사람이 “앉을 자리 설 자리, 누울 자리 일어날 자리, 낄 자리 빠질 자리, 머리인지 꽁지인지를 알면 인생의 숙제가 반은 해결된다.” 또 “올라 갈 때와 내려 올 때를 알면 일 잘하고 뺨맞는 일이 없어진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자리의 일을 잘하는 것이 상 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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