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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04]성령 충만함으로 열리는 평강의 길(눅 1: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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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327 2012.08.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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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04]성령 충만함으로 열리는 평강의 길(눅 1:26-80)

하나님의 백성들의 동질성

누가는 세례 요한의 생애와 예수님의 생애에서 동질성을 찾았다. 하나님의 구원이 역사 속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시대는 다르고 인물은 달라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님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의 아버지에게 생후 첫 안식일 회당예배 때 그날분량의 모세오경을 낭독하고, 아기와 부인의 건강을 비는 축복을 낭송하는 영광이 주어진다. 여아인 경우 바로 이 날의 회당예배 때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남아이면, ‘브리트 밀라’(brit milah)라 불리는 할례의식 때에 이름을 부여받는다. 사가랴의 아들에게도 바로 이 할례의식에서 이름이 주어졌다. ‘요한’이란 이름은 ‘야훼는 자비하시다’는 뜻의 히브리어 ‘예호하난’ 또는 ‘여호난’의 헬라어 이름이다. 만일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다면, 그의 이름은 ‘벤-사가랴 하-코헤인’(ben-Zechariah ha-Kohein)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란 뜻이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 때문에 ‘예수’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예수’는 히브리어 ‘예호수아’의 헬라어 이름이다. ‘야훼는 구원자,’ ‘야훼가 구원하신다’ 혹은 ‘야훼의 구원’이란 뜻이다.

누가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생애에서 많은 동질성을 찾아 열거했지만, 특히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각자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누가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확실한 동질성은 쉼 없는 기도와 성령 충만함이었다. 이 두 가지에 추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배척당함과 천로역정(天路歷程)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나라의 백성들로부터 자주 배척을 당한다. 그러나 배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성에로의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배척을 극복하고 순례를 성공리에 마치는 힘은 쉼 없는 기도와 성령 충만함이다.

예수님 당시 그리스-로마세계에는 영웅 헤라클레스에 대한 신화가 있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들은 이솝의 우화처럼 가공된 것들이지만, 그 속에 매우 중요한 교훈들을 담고 있다. 신화이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가공인물인 헤라클레스는 실존인물인 알렉산드로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같은 전쟁영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가엾은 운명과 치열하게 싸웠다. 싸움을 하되,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했고, 옳은 가치와 정의를 위해서 싸웠다. 그는 항상 지혜의 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았다. 신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영웅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신은 고난을 극복할 방법을 항상 예비했고, 헤라클레스는 그 방법을 찾아 난관을 극복했다. 신은 앞문을 닫으면, 반드시 뒷문을 열어두신다는 확신이 헤라클레스에게 있었다. 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련을 주시지만, 그 시련으로 그를 성숙하게 만들고, 진정한 영웅이 되게 하여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헤라클레스는 최후까지 신 앞에서 겸손하였다. 그런 그에게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최고의 여신 헤라까지도 박수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헤라클레스’ 즉 ‘헤라의 영광’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실존인물이었던 예수님의 삶이 이와 비슷하였다. 누가는 예수님의 이 영웅성을 본받아 천로역정을 완주하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도하고 있다.

동정녀에게 전해진 임신소식

한나와 엘리사벳처럼 마리아도 임신할 수 없는 여성이었다. 그들처럼 불임이어서가 아니라,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임신하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그에게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출생한다는 것이었다.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꼭 6개월 만에 생긴 일이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처녀였다. 유대사회에서는 결혼 1년 전에 정혼하는 관습이 있었고, 1년 후 결혼식이 끝나야 합방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마리아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였던 것이다. 결혼이나 정혼의 여부를 떠나서 간음은 투석형에 처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러므로 임신소식은 마리아에게 까무러칠 지경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매우 침착하게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를 받아드렸다.

수태고지는 세 단계로 나눠진다. 첫 단계는 천사의 인사와 마리아의 당혹감이고, 두 번째는 천사의 수태고지와 마리아의 의혹이며, 세 번째는 천사의 답변과 마리아의 순응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었던 여성이었다. 29절의 “은혜를 받은 자”와 30절의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은 마리아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어왔다는 뜻이다. 이는 마리아의 신앙이 신실했고, 몸이 순결했으며, 마음이 진실했으므로, 그녀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사는 31절에서 아기의 이름을 ‘예수’로 정해주었고, 32-33절에서 아기의 신분을 밝혀주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여기서 “다윗의 왕위”와 “야곱의 집”은 유대인들과 유대교적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처럼 결코 문자적인 뜻이 아니다. 그것들은 영적인 의미로써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로서 왕이시기 때문이다.

34-38절은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님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를 덮음으로써 되었다고 말한다. 35절에서 “덮으실 것이다”는 뜻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지 어떤 경우에도 성적인 접촉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신 영(靈)이시고,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이다. 만세전부터 살아계신 독생자 하나님이 마리아의 몸을 빌려 육체로 오신 것이지, 태어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시다. 강건한 믿음의 소유자 마리아는 38절에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에 순응하였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45절).

더 놀라운 것은 임신 6개월의 태아였던 세례 요한이 수주밖에 되지 아니한 배아상태의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 뛴 것이다. 이것은 두 모친뿐 아니라, 두 태아까지도 성령님에 충만했음을 보여준다. 또 늙은 엘리사벳이 어린 마리아에게 “내 주(主)의 어머니”라고 불렀고, 태중의 아이를 “나의 주(主)”라고 불렀다. 성령님의 영감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 12:3).

신의 아들을 잉태했던 신화 속의 여인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알크메네와 세멜레는 인간 동정녀들로서 제우스의 아들들을 낳는다. 그들의 이름이 헤라클레스와 디오니소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부활의 상징들이고,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의 대전(大殿)에로 승천하여 신들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한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 신은 동생인 세트 신의 손에 죽는다. 오시리스 신의 누이이면서 아내였던 이시스 여신은 오시리스의 사체를 수습한 다음 홀몸으로 오시리스의 아이를 잉태한다. 이시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호루스 신이다.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환생이다. 아기 호루스 신은 세트 신의 복수를 피해 나일 강의 갈대숲에 숨겨진다. 그 후 호루스는 세트를 패배시킨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친 올림피아스는 결혼식 전날 번개(제우스)가 그녀의 몸을 관통하는 꿈을 꾼다. 그 꿈으로 인해서 올림피아스는 자기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믿고 그를 세뇌시켰다. 전쟁의 영웅 알렉산드로스는 지중해연안세계를 손에 넣는데 성공하지만, 자신을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환생으로 믿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33세에 과음이 원인이 되어 요절하였다.

자연법칙만 믿고, 예언과 계시와 기적을 믿지 않는 자들은 복음서의 일부 기사들을 이런 신화에서 차용한 조작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바로 그 신화를 탄생시킨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데 있어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그리스-로마인의 정신과 종교와 문화는 신화가 지배하였다. 생물과 사물의 이름들이 모두 신(神)으로 불릴 만큼 그들이 믿는 신은 자그마치 3만이 넘었다. 수많은 신전(神殿)들이 대표적인 신들에게 봉헌되었고, 그들의 신심(信心)을 표현한 문화예술작품들이 화려하게 꽃피웠다. 그 흔적들을 보기 위해 지금도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리스-로마로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도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98퍼센트가 유일신 야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며, 로마교회는 서방교회로 일컬어지는 가톨릭교회의 중심이 되었고, 그리스는 동방교회로 알려진 그리스정교회로 발전되었다. 그러니 당대의 그리스-로마 신화와 이집트의 신화 및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차용해서 예수님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메아리인가를 알 수 있다.

신화는 다신사상에서 비롯된 것이고, 살생과 파괴가 주된 테마들이다. 헤라클레스와 알렉산드로스 및 오시리스의 신화들이 다 그렇다. 디오니소스는 방탕과 환락의 상징이다. 더욱이 제우스는 천하에 둘도 없는 난봉꾼이다. 제우스는 종종 인간으로 변신하여 알크메네와 세멜레와 같은 여인들을 속여 자신의 성욕을 채운다. 그러나 만세전부터 살아계신 독생자 하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육체로 오셨을 뿐이지, 성적인 접촉을 통해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다. 또 태어날 아기는 인류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 오신 분이다. 죽임의 일이 아니라, 살림의 일을 위해서 오신 분이다. 정복의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의 모형들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들에 있지 않고 구약성경에 있다. 그분이 많은 사람들의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그 어떤 종교와 신화에도 없는 특별한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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