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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06]예수님의 공생애 출범(눅 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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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90 2012.08.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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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06]예수님의 공생애 출범(눅 3:1-22)

예수님의 청년시절

누가는 예수님의 성인식준비를 끝으로 10대와 20대의 18년간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기간은 유대인 청년들이 계명의 아들들로서 유대교의 가르침과 전통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실천하는 기간이며, 생업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기간이었다. 유대인들은 보통 6살에 토라(모세오경), 쓰기, 수학을 배웠고, 10살에 미쉬나(Mishna)를 배웠으며, 15살 이후에는 게마라(Gemara)와 탈무드를 배웠다. 전 세계 민중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시절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들은 회당에서 성경을 읽어야 했었다. 그들이 특별했던 것은 그들이 단지 계약을 지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증거이다.

미쉬나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유대교의 가르침과 전통을 말하며, 주후 200년에 사망한 랍비 유다가 수집하여 책으로 엮었다. 미쉬나에는 농사법(Zeraim), 안식일 및 절기법(Moed), 결혼 및 이혼법(Nashim), 일반 형법(Nezikin), 희생제물법(Kodashim), 레위인의 성결법(Tohovoth)이 담겨 있다. 또 게마라(Gemara)는 미쉬나를 주석하고 해석한 것으로써 유대교 교육의 특징인 문답(問答)으로 되어 있다. 탈무드는 주후 500경에 이들 미쉬나와 게마라를 모아 편집한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탈무드에는 삶의 모든 측면,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행하는 것, 먹을 수 있고 없는 것, 입을 수 있고 없는 것, 몸치장하는 방법, 업무를 보는 방법, 결혼의 대상, 축일들과 안식일을 준수하는 방법,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을 취급하는 방법 등의 율법과 전통을 담은 할라카(Halakah/법)와 철학, 신학, 역사, 도덕, 시, 속담, 성서 해설, 과학, 의학, 수학, 천문학, 심리학, 형이상학 등의 지혜를 담은 아가다(Aggadah/의미)가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예수님 때에는 탈무드가 없었고, 미쉬나와 게마라도 문답을 통해서 구전으로 교육되어졌다.

예수님은 청년시절에 부친 요셉의 직업인 목수기술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막 6:3). 유대인은 생업에 필요한 기술을 한 가지씩 익히도록 되어 있었다. 유대인은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노동은 신성한 것이었다. 직업의 종류가 제한적이었던 고대에는 대부분 부모의 직업을 전수받았다. 유대인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가정예배를 인도하는 사제였을 뿐 아니라, 자녀의 신앙교육과 직업교육을 책임졌던 교사였다. 탈무드는 “아들에게 직업을 안 가르치면 자식을 강도로 키우는 것과 같다”고 경고하였다. 유대인들은 “생업이 수반되지 않는 모든 토라연구는 헛된 것이다. 빵이 없는 곳에 토라가 없고, 토라가 없는 곳에 빵도 없다.”고 말할 만큼 생업과 율법연구를 동일하게 여겼다.

유대인들은 일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을 경멸하였다. 게으른 사람은 사회의 좋은 이웃이 되어 사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 짐을 지우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농사하는 법, 양치는 법, 전투하는 법, 노래 부르는 법, 악기 다루는 법과 같은 직업교육을 토라율법과 함께 가르쳤고, 특히 돈을 불리는 비법을 전수했다. 돈을 불리는 것만이 수천 년의 떠돌이와 노예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육신의 일과 세상의 일보다는 복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셨다. 예수님은 나이 30세가 되자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유대광야로 나가셨다.

예수님의 공생애 출범시기

누가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출범시기를 3장 1절에서 로마의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재임하던 때라고 설명하였다. 본디오 빌라도는 제5대 유대지방 총독으로서 주후 26년에 부임하여 36년에 파면되었다. 티베리우스는 주후 13년에 최고 통수권을 부여받고 제1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수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노환으로 통치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었기 때문에 티베리우스가 사실상 단독 통치자나 다름이 없었고, 아우구스투스가 14년 8월 19일에 사망함으로써 제2대 로마황제로 즉위하였다. 따라서 누가가 언급한 “통치한 지 열다섯 해”는 주후 26-27년경을 말한다. 누가는 시리아 출신이므로 시리아의 연대계산법에 따라 티베리우스가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주후 13년부터 계수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에서 누가복음 3장의 역사적 시점 즉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를 주후 26경으로 본다.

또 누가는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를 제사장이 직무를 시작하는 30세쯤의 일로 보았다. 예수님께서 출생하신 연도는 주전 4-6년경이다. 영국의 천문학자 마크 키저는 베들레헴에 별이 출현한 때를 주전 5년 유월절 경쯤으로 보았다. 따라서 예수님의 나이는 주후 26년에 30세쯤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는 주후 30년 유월절 날이었다. 그때가 만 35세쯤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시기는 암흑기나 다름없던 시기였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압제를 받고 있었다. 이 압제는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에로 6백년이 넘도록 대물림되어온 것이었다. 가난한 유대인들에게는 1년에 반 세겔(노동자의 2일간 품삯에 해당) 내는 성전세와 로마제국에 내는 인두세가 버거운 짐이었고, 세리들의 부정과 부패도 심했던 때였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고 했듯이 민중들의 삶은 심히 고단하였다. 실로 그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다(마 4:16).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시기는 수많은 신들의 숭배와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근친상간, 동성애, 매춘이 성행했고, 여성들도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라면 남편이나 연인 갈아타기를 서슴지 않았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시기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민중들의 삶이 피폐할 때로 피폐해졌던 때였다. 전쟁으로 인해서 생긴 수많은 노예들이 시중에서 짐승처럼 매매되었고, 주인들에게 학대를 받았으며, 투기장에 끌려 나가 많은 사람들의 오락꺼리가 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던 때였다. 당시의 세계는 끊임없는 전쟁과 혼란과 가난과 전쟁노예들로 인해서 가정이 붕괴되고 도덕과 윤리와 기강이 무너진 시기였다.

<많은 신들의 숭배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타락됐던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는 잦은 전쟁과 노예제도 때문이었다. 일상적으로 착취를 당했던 노예들에게 도덕심과 수치심은 존재되기 힘들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때에 이 땅에 평화의 주님으로 오셨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기”(사 61:1-2)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의 공생애 출범식

주후 30년경 세례 요한은 요단 강변들을 돌며, 회개를 외치고 침례를 베풀었다. 그가 베푼 회개의 침례는 오실 자 메시아를 영접시키기 위한 준비였다. 그가 외친 말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는 이사야 40장 3-5절을 인용한 것이었다.

세례 요한의 침례는 그리스도인의 침례나 유대교의 개종침례와도 다르고, 유대인 쿰란공동체가 행한 정결의식하고도 달랐다.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새 언약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멤버로 가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대교의 개종침례는 유대인과 혈통이 다른 남녀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교할 때 받는 의식이며 유대인들은 받지 않는다. 남자 개종자는 할례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요한한테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 쿰란공동체는 개인이 자기 죄를 자백하고 정결의식을 행한 후에 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결의식은 단회(單回)의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의 침례는 단회의식이었고, 그 어떤 공동체에도 가입을 권유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를 믿거나 신앙을 고백하도록 권하지 않았고, 오직 오실 메시아와 그의 시대를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것은 죄를 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본래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죄가 없었으며, 회개가 필요치 아니한 분이셨다. 이뿐 아니라, 세례 요한의 침례가 예수님 자신의 임재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더더욱 불필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은 메시아로 기름부음 즉 임직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받으신 침례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침례는 다르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 받지만, 그분은 그 누구를 믿거나 소유가 되실 수 없는 독생자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침례는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에 대한 실체였다. 이미 우리는 1장에서 사무엘이 세례 요한의 모형과 그림자였다는 것을 살펴본바가 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던 것처럼, 세례 요한도 예수님께 침례로 기름을 부어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 삼으셨다. 그 사실을 입증한 것이 “하늘로부터 소리”였다. 이 “하늘로부터 소리”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보다 더 질적으로 뛰어난 것이었다.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자기 위에 임재하시는 것과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1-22)는 음성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이후로 기독교에서는 침례가 성령님으로의 기름부음 또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시간으로 믿게 되었고, 그 상징으로 침례직후에 기름을 이마에 바르는 인침(견진)과 주의 만찬 의식을 치렀다. 성령님으로의 기름부음은 구원의 보증을 의미한다(고후 1:22, 5:5). 16절의 말씀,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는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될 것과 믿지 않는 자는 불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행 2:38). 물론 우리 성도들은 모두 성령님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기름부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광야로 상징되는 교회를 지나 저 천국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가 받을 땅의 상속과 또 우리가 상속자인 것을 보증하고 인치기 위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성령 충만함과는 다르다. 신학에서는 이 기름부음을 성령으로의 세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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