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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07]예수님의 족보(눅 3: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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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382 2012.08.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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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07]예수님의 족보(눅 3:23-38)

누가복음의 족보

역사에는 순수역사(historie)와 해석의 역사(geschichte)가 있다. 순수역사는 사건그대로의 보도 즉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조사탐구해서 보도한 사실적 기록을 말하고, 해석의 역사는 사건이 주는 교훈과 뜻, 또는 의미와 해석을 가미한 기록을 말한다. 함석헌은 해석의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와 관련해서 골라진 사실들에 대한 뜻풀이라고 했고, 그 뜻풀이에 역사는 생명을 갖는다고 했으며, 역사가의 능력은 해석하는 힘에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잘된 역사책은 정신을 밝혀주는 글이요, 잘하는 역사독법(歷史讀法)도 정신을 읽어내는 해석에 있다고 하면서 “이 해석하는 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역사를 아는데 깊고 얕은 차이가 생긴다.”고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누가복음의 족보도 뜻풀이에 의한 족보이다.

유대인들이 족보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500년이 넘는 유배생활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모계를 중시하지만, 성서시대에만 하더라도 부계(父系)를 중시했기 때문에 아들선호사상이 매우 컸었다. 유대인들의 족보사랑은 창세기 5장 1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에서부터 시작된다. 다행한 것은 창세기가 아브라함이전까지는 족보를 통해서 인류가 하나님이 빚은 아담에서 비롯된 한 가족이고, 종족과 언어와 피부색과 거주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가족이란 점을 보여준다. 이 정신에 입각해서 누가는 인류가 하나님이 빚은 아담 한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본래 하나님의 한 가족이요, 형제자매인 것을 깨우쳐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태가 족보나열방식에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향식을 택한 반면, 누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상향식을 택하였다. 마태가 혈통을 강조하기 위해서 “낳고”란 단어를 쓴 반면, 누가는 법적인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 위는”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족보상으로 상위일 뿐이지, 반드시 혈통으로 상위란 뜻이 아니다. 아담의 위는 하나님이시지만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듯이, 예수님의 위는 요셉이지만,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요셉의 혈통을 받으신 것이 아니란 뜻을 담고 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아담부터 마리아의 남편 요셉까지가 75대(代)이다. 75란 숫자는 두 가지를 암시한다. 첫째는 제1아담이 죄와 사망을 도입시켜 황폐시킨 세상이고, 둘째는 누가가 쓴 사도행전 7장 14절에 실린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다”는 스데반의 설교에서 보듯이, 75대(代)는 유대민족의 흥망성쇠를 암시한다. 그리고 75대(代)로써 제1아담의 죄와 사망의 옛 시대가 종결되고, 제1대(代)로써 제2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사와 생명의 새 시대를 개방하셨음을 암시한다. 요셉의 초청으로 이집트에 입국한 히브리인들의 숫자가 창세기 46장 26-27절에서는 70명이지만,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은 75명으로 언급하였다. 이 75명설은 헬라어구약성경에 따른 것이다. 히브리어성경에 언급된 70명은 야곱과 야곱의 남녀 자손들과 이집트에 살고 있던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포함된 반면에 야곱의 자부들이 제외된 숫자이고, 스데반이 언급한 75명은 므낫세의 아들과 손자 한 명씩과 에브라임의 두 아들과 손자 한 명이 포함된 숫자이다.

마태복음의 족보

마태복음의 족보에 ‘낳고’ 또는 ‘낳다’란 말이 40번 나온다. 이는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가 40대(代)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포함해서 예수님까지 총 41명의 가장(家長)의 이름들이 나온다. 이는 옛 언약의 땅인 가나안을 민족의 기업으로 약속받고 옛 언약시대를 개방한 아브라함부터 그 기업에 속한 마리아의 남편 요셉까지가 총 40대(代)란 의미를 갖는다. 40은 죽음과 고난을 상징하는 숫자로써 떠돌이와 노예의 삶으로 점철된 슬픈 유대민족사를 대변한다. 예수님이 41번째인 것은, 아브라함이 옛 언약시대의 시조(始祖)였던 것처럼, 예수님이 새 언약시대의 시조(始祖)가 되심을 의미한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는 이스라엘왕국의 출범과 발전기를 말한다. 이스라엘왕국은 아브라함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모세가 싹을 틔웠으며 다윗이 열매를 맺게 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는 왕국의 쇠퇴기와 멸망을 말한다. 여기까지가 노예와 떠돌이였던 유대민족의 첫 번째 희망의 성취와 실패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는 유대민족이 가나안땅을 빼앗긴 후 또 다시 예전의 노예와 떠돌이의 신세로 되돌아간 다음에 두 번째로 품었던 희망이 성취되기를 고대하던 시기였다. 두 번째 희망은 빼앗긴 땅과 나라를 되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2모세 또는 제2다윗이 필요하였다. 그가 메시아였다. 메시아사상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 속에서 활동했던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회복의 메시지였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가나안 땅의 희망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이며 문자적인 것으로써 유대민족만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의 첫 번째 희망과 두 번째 희망이 모두 문자적으로 가나안 땅과 유대민족에 관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유대인만을 위해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인류를 위해서 영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이 마태와 누가를 비롯한 신약성경 저자들의 확신이었다.

마태복음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겉보기에는 유대인 혈통의 계보인 듯이 보여도, 실상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계보이다. 그래서 다말과 라합과 룻과 밧세바와 같은 이방인 여성들이 족보에 포함된 것이다. 동정녀의 몸으로써 뜻하지 않은 임신을 믿음으로 수용한 마리아도 믿음의 사람에 포함된다.

마태복음은 족보를 통해서 모세가 세우고 다윗이 극대화시킨 인간왕국의 실패를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이 세우시고 극대화시킬 천국을 온 인류의 미래와 희망으로 제시하였다. 인간왕국이 필연적으로 갖는 유한성, 제한성, 일시성, 불완전성 때문에 그곳에서는 참 정의와 평화와 안식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마태는 영원하고 완전하며 영적인 하늘왕국의 개벽을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통해서 예고하였다. 따라서 마태는 그리스도의 오심이 유대인들이 바벨론 유배이후 580여 년간 기대하고 꿈꿨던 다윗왕국의 재건이나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영원하고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 곧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두 복음서 족보들의 강조점

첫째, 마태가 유대민족의 희망인 가나안땅에 초점을 맞춘 반면, 누가는 인류의 희망인 하나님의 평화에 맞췄다. 누가의 족보는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준 것이다(롬 1:3-4).

둘째, 마태가 유대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시작한 반면, 누가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부터 시작하였다. 누가는 하나님의 관심이 유대인에게만 있지 않고, 온 인류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셋째, 마태가 예수님을 제2모세로 설정한 반면, 누가는 제2아담으로 설정하였다. 누가의 동역자였던 바울 역시 로마서 5장 15-21절에서 제1아담을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로 보았다. 이곳에서 바울은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끼친 악영향을 예수님의 순종이 상쇄시킬 뿐 아니라, 예수님의 은사와 생명은 아담의 죄와 사망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와 의의 선물은 아담의 죄의 결과보다 더욱 넘치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하였다.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1아담 안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상실한 것을 제2아담이신 예수님에게서 또한 알게 모르게 찾았고 또 찾을 것이다.

넷째, 마태가 요셉의 계보를 소개한 반면, 누가는 마리아의 계보를 소개하였다. 누가는 요셉보다는 마리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예수님이 요셉의 친자가 아니라,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대로 뱀(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임을 상기시켰다. 마태가 요셉의 아버지를 야곱으로 기록한 반면, 누가는 요셉의 상위를 마리아의 부친인 헬리로 기록하였다. 그렇다고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니다. 야곱은 혈통에 의한 요셉의 친부(親父)였고, 헬리는 모세의 법에 의한 양부(養父)였다. 예수님에게 이모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헬리에게는 딸만 있었던 것 같다(요 19:25). 모세의 법에 따르면, 유산을 상속받을 아들이 없으면, 딸이 상속받을 수 있었다. 다만, 유산을 상속한 여인은 다른 지파의 남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이는 지파에 속한 기업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민 27:1-11, 36:1-12). 모세의 법에 따라 마리아는 헬리의 유산을 물려받고 같은 유다지파에 속한 요셉과 결혼하였으므로 요셉은 자동으로 헬리의 법적 아들이 된 것이다.

다섯째, 마태와 누가의 족보에서 가장 상이한 곳은 다윗부터 요셉까지의 계보이다. 메시아는 유다지파에 속한 다윗의 자손이어야 했다.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신 메시아이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윗의 왕권을 계승한 솔로몬으로 시작해서 바벨론에 유배되기까지 14명의 유다 왕들로 채웠고, 누가는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여자의 후손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윗의 셋째 아들인 나단으로 시작해서 19명의 보통 사람들로 채웠다. 마태가 바벨론에 의해 유다왕국이 망하고 왕권이 끊어진 이후 요셉까지 13명을 요셉의 계보에서 채운 반면, 누가는 22명을 마리아의 계보에서 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후손인 요셉의 계보와 나단의 후손인 마리아의 계보가 모두 유다지파에 속한 다윗의 자손들이었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누가 역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제각기 적합한 족보를 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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