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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10]예수님의 품성(稟性)(눅 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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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546 2012.09.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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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강10]예수님의 품성(稟性)(눅 4:31-44)

기독교 태동의 산실

예수님과 바울이 전도장소로 빈번하게 찾았던 곳이 유대교 회당들이었다. 그곳에서 지지자도 얻고 배척도 당하였다. 그런 점에서 유대교 회당들은 기독교 태동의 산실이었다. 주전 586년에 성전이 파괴되고, 성전예배를 대신할 회당예배가 생긴 것은 기독교라는 옥동자를 잉태키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드린 예배장소는 성막 한 곳뿐이었다. 성막은 조립과 분리와 운반이 가능한 이동 성전이었다. 히브리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369년간 성막은 예루살렘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도달할 수 있는 에브라임 산지의 실로(Tel Shiloh)에 있었고, 당연히 실로는 야훼신앙의 중심지였다. 이 성막은 한나가 아들을 얻기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곳이고, 그의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곳이다.

사울이 사사시대를 끝내고 통일왕국시대를 열면서 남북갈등이 점화되었고, 급기야 솔로몬 사후에는 남북이 분열되고 말았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은 곧 남북갈등의 상징이었다. 남북분열과 함께 실로의 성막시대도 막을 내렸다. 성막의 지성소에 있어야할 법궤는 전쟁터에 끌러갔다가 불레셋에 넘어가기도 했고, 이곳저곳에 방치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솔로몬이 주전 960년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비로소 정식 집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마자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남왕국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북왕국은 벧엘과 단에 성소를 지었으며,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예배자들의 행렬을 막았다.

주전 586년 바벨론제국의 대침으로 솔로몬 성전시대가 막을 내렸다. 페르시아제국시대가 열리면서 유배되었던 일부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주도로 고토에 돌아와 천신만고 끝에 주전 516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성공하였다. 사마리아인들도 주전 400년경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하였지만, 유일하고 참된 성전은 오직 예루살렘 성전뿐이라고 믿었던 유대인들의 통치자 요한 힐카누스에 의해서 주전 128년에 파괴되었다.

지금까지도 유대교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예루살렘에 성전과 성전예배를 복원시켜야 비로소 이스라엘이 회복된다고 믿고 있다. 이토록 막힌 생각을 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지 않고, 무소부재하시며, 장소에 상관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발전된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유배되고 나면서부터였다. 성전이 훼파되고 없을 뿐 아니라, 몸은 이미 머나먼 이국땅에 묶여 있으니 더 이상 성전예배만을 고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13세 이상의 남성 열 명 이상만 모일 수 있다면, 문자적으로 거의 2평방킬로미터마다 한 곳씩 기도처를 세우거나 기도회를 개최할 수 있게 하였다. 이 기도처가 바로 유대교 회당들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안식일에는 물론이고 매일 세 번씩 제사 대신에 쉐모네 에스레이 기도문을 암송하였고, 토라를 낭송하고 해설을 들었다. 그러나 목회자나 설교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누가문서에서 보듯이 예수님과 바울이 자주 회당에서 기회를 얻어 말씀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회당이 바로 기독교 발전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한 그릇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인성(人性)

누가가 독자인 헬라인들에게 전하고자한 예수님의 이미지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인자(人子)로서의 모습이었다. 약자의 편이 되어주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의 인간적인 혹은 인성(人性)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삶에 지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선포하신 말씀들은 대부분 인간을 향한 연민 때문이었다. 다른 복음서들과 두드러진 차이점은 예수님의 비유들 가운데 14개의 선교비유가 누가복음에만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마태복음에 소개된 다수의 종말과 심판에 관한 비유들이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신성보다는 인성에 관한 글로 읽히곤 하였다.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으로써 예수님의 인성과 관련된 호칭이다. 인자는 죄를 사하는 권세와 병을 고치는 능력(5:24)이 있고, 안식일의 주인(6:5)이시며, 장차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분(21:27)이시고,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실 분(22:69)이시지만, 누가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7:34)로서의 인자,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인자(19:10),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인자(24:7)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마태복음에 29절, 누가복음에 27절에 걸쳐 인자란 말이 쓰였다. 이 말은 시편과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에서도 쓰였다. 에스겔은 자기 자신을 호칭할 때 100회 이상 인자란 표현을 사용하였고, 시편에서는 단순히 사람을 호칭할 때(8:4; 80:17), 위경인 에녹1서에서는 초인적 존재로 선택받은 자를 말할 때, 랍비 아키바(Akiba/132-135)는 다윗왕국의 메시아를 말할 때 사용하였다. 그리고 다니엘서와 계시록은 ‘인자와 같은 이’란 말을 각각 두 번(7:13, 10:16) 사용하였다. 이들 묵시록은 모두 종말론적인 왕국의 통치자를 인자로 표현하였다.

중요한 것은 신약성경에서 이 ‘인자’란 표현이 예수님께만 사용된 표현이란 점이고, 특히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일컬어 호칭하실 때 쓰셨다는 점이다. 제3자가 예수님을 일컬어 ‘인자’란 호칭을 쓰지는 않았다. 제3자가 예수님을 일컬어 호칭할 때는 ‘하나님의 아들,’ ‘랍비,’ ‘다윗의 자손,’ ‘유대인의 왕,’ ‘오실 그이’ 또는 ‘선지자’와 같은 별칭들을 사용하였다.

인자호칭은 누가복음에서 두 가지 범주에서 사용되었다. 첫째는 지상에서의 예수님을 호칭할 때 사용되었고(6:22, 19:10, 22:48), 둘째는 ‘오실 그이’ 곧 메시아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었다(12:8, 17:22,30, 18:8;21:36). 여기서 ‘오실 그이’는 유대인들의 희망(Ha-Tikvah)이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다. 유대인들에게 ‘오실 그이’는 아직 한 번도 오지 않은 모쉬아크(Moshiach)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미 한번 오셨고, 또 다시 오실 재림주 메시아이시다. 계시록에서 말한 ‘인자’란 바로 이 재림주를 말한다. 이밖에도 마가복음에 쓰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련된 ‘수난자 인자’가 있다(막 8:31, 9:9,12,31, 10:33,45, 14:21,41). 수난자 인자는 마가복음에만 있는 메시아관이다. 이 수난자 인자 사상에서 나온 것이 영혼구원이다. 지금까지에서 보듯이 누가복음에 소개된 예수님의 품성은 신성보다는 인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神性)

그렇더라도 누가는 복음서 초반부터 예수님의 신성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누가복음 4장 31-44절의 말씀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언하는 자들로 아이러니하게도 귀신들이 열거되었다.

유대교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의 신분을 알아보았다. 34절을 보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고 말하고 있다. 40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온갖 병자들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때, 귀신들이 나가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어서 말문을 닫도록 하셨다.

예수님이 대단하신 것은 귀신들을 꾸짖고 나가라고 명령하신데 있다. 36절을 보면,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이 나온다.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고 하였다. 더욱 진기한 것은 39절에서 열병을 향해서도 꾸짖고 계시다는데 있다. 질병을 향해서 꾸짖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질병은 육체의 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물리쳐야할 악한 세력이요, 마귀의 권세이다. 예수님께서 병을 향해 꾸짖으신 것은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을 우리 인간이 극복해야할 악한 세력으로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질병이 마귀나 귀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은 이미 1-4장까지에서 다양한 표현으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한 말로써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1:32) 혹은 “하나님의 아들”(1:35)이란 표현이 있다. 누가의 하나님에 대한 표현 중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있다.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1:76),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6:35) 혹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8:28)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말로써 “내 주의 어머니”(1:43)란 표현도 있다. 누가는 예수님께 “주”(Lord)란 표현을 40번 이상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표현이 “그리스도 주”(눅 2:11)이며, 대부분 예수님을 호칭할 때 사용되었다.

이밖에도 예수님이 요셉과 마리아에게 한 말씀으로써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2:49)이라 하였고, 하늘에서 들린 음성으로써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3:22)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도 공회원들 앞에서 수긍하셨다(22:70)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에는 두 가지 교훈이 담겨 있다. 한 가지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 믿게 하는 표적이란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예수님에게 병을 고치고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기적 행하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적의 결과라고 말한다. 기적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놀람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더욱 경청할 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란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데, 이것을 기적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기적이 일어나는 목적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 이런 기적의 목적이 풍성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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