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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2]새천년시대의 윤리기준4(마 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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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194 2012.02.1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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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2]새천년시대의 윤리기준4(마 7:1-29)

새천년시대에 합당치 못한 자들

마태복음의 이해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대립각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7장 1절,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십계명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와 맞물리는 계명이다. 말의 위력으로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계명이다(출 20:16). 유대인들은 제9계명이 말로써 짓는 모든 죄(lashon ha-ra)를 금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점을 분명히 밝혀주는 계명이 레위기 19장 15-18절의 말씀이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 말씀을 요약하자면, 비판은 하되, 불의한 비판, 편협한 비판, 거짓된 비판, 남을 해하려는 비판, 자기 유익을 위한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진솔하게 책망은 하되 이웃사랑하기를 자신에게 하듯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613개의 계명들과 안식일법, 손 씻기법, 음식법, 그릇 씻기법, 성결법, 기도와 금식과 십일조와 같은 장로들의 유전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특히 이방인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세리들, 창기들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고 고압적이었으며, 자만심과 우월감에 차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교의 종교법대로 살지 못하는 이방인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세리들, 창기들을 죄인 취급하여 그들과의 접촉을 거부하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2절에서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하셨다. 사람들을 재판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선 자들이란 뜻이다.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 예수님의 제자들이 특정일에 금식하지 않는 것,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 귀신을 내쫓으신 것 등을 비판하였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다며 중상을 일삼았고, 어떻게 하면 올무를 놓아 예수님이 걸려들게 할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체포하여 죽일까를 모의하였다.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 외식하는 자, 회칠한 무덤,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는 자, 난체 하는 자, 높은 자리와 섬김 받기를 탐하는 자, 천국 문을 가로막고 선 자, 교인을 오히려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는 자, 화를 당할 자,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린 자, 눈은 있지만 소경인 자,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자,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자,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자, 지옥의 판결을 면치 못할 자라고 마태복음 23장에서 책망하셨다.

새천년시대에 합당한 자들

“외식하는 자”란 표현은 마태복음에서 주로 쓰였고,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쓰셨다. 정의와 사랑과 믿음은 없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과 가식으로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득세하여 명예와 권세와 재물을 누리지만, 또 힘없고 배경 없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얕보고 죄인 취급하지만, 다가올 새천년시대에는 합당치 않고, 오히려 힘없고 배경 없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대우받게 될 것을 암시한 것이다. 천국에서 대우를 받을 자들은 명예와 권세와 재물이 많은 자들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 심령이 가난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긍휼히 여기는 자들, 마음이 청결한 자들, 화평케 하는 자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다. 그들이 천국을 소유할 자들, 위로받을 자들, 땅을 기업으로 받을 자들, 배부를 자들,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들, 하나님을 볼 자들,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자들, 큰 상을 받을 자들이다.

민중을 재판하는 자리에 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눈에 커다란 들보를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눈에 들어간 작은 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들, 애통해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긍휼히 여기는 자들, 마음이 청결한 자들, 화평케 하는 자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을 판단할 자격을 상실한 자들이다. 새천년왕국에서는 그들이 멸시하고 얕보고 비난했던 자들로부터 오히려 비난을 받고,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마 8:12). 이것이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마 24:51)이라고 말씀하셨다.

들보와 티는 집을 지을 때 쓰이는 큰 나무와 거기서 나온 톱밥 정도의 차이, 즉 하루살이와 낙타(마 23:24) 또는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 정도의 차이로 이해될 수 있다. 진실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과장법이다.

예수님은 종종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어리석은 맹인으로 질타하셨는데, 5절에서처럼, 들보 때문에 영적인 것을 밝히 볼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눈에 낀 들보부터 빼내야 했다. 그들의 들보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거짓과 외식일 수 있고, 그들을 족쇄에 채워 깊은 동굴에 가둠으로써 진실을 밝히 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일 수 있고,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욕망일 수도 있다. 그 같은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영원하고 신령한 하늘의 가치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어리석은 맹인들에게 값진 것을 주지 말라는 말씀이 6절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그러나 하늘의 신령한 가치를 아는 자들에게는, 7-11절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새천년시대에 입문할 자격

십계명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하셨던 예수님은 12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웃들의 사소한 잘못들을 비판하기보다는 먼저 대접하고,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좁은 문 즉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3-14절에서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다.

톨스토이는 <대자>에서 의식주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남의 마음을 깨끗하게 닦을 수 있는 청결한 걸레가 되는 사람을 수행자로 보았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않고(마 6:25),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를(마 6:33)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참 제자로 보셨다. 또 톨스토이는 생사문제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든든한 버팀목처럼 자신을 단단히 고정하는 자를 수행자로 보았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를(마 16:24) 좁은 문 또는 영생의 문으로 들어가는 참 제자로 보셨다. 또 톨스토이는 물에 젖은 생솔가지조차 활활 태워버리는 강한 밑불처럼 뜨거운 사랑을 가진 자를 수행자로 보았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또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를(마 5:44)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참 제자로 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을 판단할 때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들의 열매를 보라고 당부하셨다. 16절과 20절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셨다.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이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17절). 그러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찍혀 불쏘시개가 되고 말 것이다(19절). 좋은 옷을 입고 거룩한 체 하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겉모습이 화려하고 멋있고 순한 양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하셨다. 그런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15절).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은 다가올 세상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새천년시대에 입문할 수 있는 자격은,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하셨다. 22-23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새천년시대가 임할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고”(24절), 마치 노아의 여덟 식구처럼 지혜로워서, 마지막 심판을 견디고 구원을 받지만(25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행치 아니한 목이 뻣뻣한 자들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26절)고 말씀하셨다. 이런 자들은, 마치 노아의 때에 홍수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한 사람들처럼, 마지막 날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라고 암시하셨다(27절). 우리 모두 새천년시대에 합당한 인물이 되어 그 세계에 입문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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