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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3]새천년시대를 여는 믿음 1(마 8: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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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998 2012.02.1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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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3]새천년시대를 여는 믿음 1(마 8:1-34)

마태의 복음서 기록방식

예수님의 제자였던 마태가 복음서 기록에 뜻을 품게 된 것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겠다는 목적에서보다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동포들에게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하겠다는 목적에서였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신뢰하는 믿음은 새천년시대를 개방하는 능력이다.

마태는 주후 30년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되고 난지 15년 정도 지난 주후 45년경에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아람어로 복음서를 기록하였는데, 책을 보았다는 교부들의 증언만 있지, 아람어 복음서는 남아 있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그 내용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공통으로 들어 있는 예수님의 어록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은 현재의 헬라어 복음서가 두 가지의 역사적 사건들 즉 주후 64년 로마에서 있었던 네로의 기독교 박해와 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그곳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당한 직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태복음은, 식민지 속주민의 권리마저 잃고 예루살렘 성지에서조차 추방되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린 처참한 상황에 처한 떠돌이 유대인들에게, 특히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왜 예수님이 메시아이신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고 시내 산기슭에서 확약된 가나안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영적으로 이뤄졌고, 또 문자적으로 완성될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선포, 능력 행함, 죽음, 부활, 승천과 선교명령을 모세와 그의 사역들에 비교하면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제2차 대구원사건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취되었고, 또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인지를 설명하였다.

제1차 대구원사건의 메시아였던 모세와 그의 사역들은 제2차 대구원사건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예표요, 그림자요, 모형이었다는 것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확고한 인식이었다.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이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고자 함이었다. 따라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기적을 베푸셨던 행적들을 회상하고 선별하여 암기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편집하였다. 반복된 내용들과 유사한 내용들을 중심축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교차시키고 대칭이 되게 편집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글쓰기 방식이었다.

마태복음에 20개의 기적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서 10개가 8장과 9장에 각각 5개씩 모아져 있다. 이 10개의 기적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모세보다 더 뛰어나시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님의 주옥같은 산상수훈과 10가지 기적 행하심은 모세가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히브리인들을 구출할 때 바로 왕 앞에서 펼쳐 보인 10가지 재앙과 시내산 율법을 생각나게 하며 비교하게 만든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과 선지자로 믿고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고 한 모세의 예언에 근거하여 장차 나타날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마태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나와 같은 선지자” 즉 제2의 모세였다고 증언하는 것은 당연한 사명이었다.

믿음이 만든 기적들(1)

2-4절은 나병환자를 고치신 기적이다. 레위기 13장에 제사장이 나병의 발병여부를 진단하고 처치하는 규례가 적혀있다. 제사장은 환부를 세밀하게 진찰하여 정(淨)한 지, 부정(不淨)한 지를 판단하였다. 만일 나병으로 판명되면, 환자는 부정한 자가 되며, 제사장 앞에서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다. 그 후 사람이 없는 외딴 곳에 떨어져 살아야 했다(레 13:45-46). 또 레위기 14장에 완치여부를 진찰하고 처치하는 규례가 적혀있다. 제사장은 나환자가 거처하는 곳으로 직접 가서 완치여부를 결정하였다. 만일 완치로 판명되면,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해 규례에 따라 정결예식을 치렀다. 그 후 완치판결을 받은 자 또한 규례에 따라 속건 제물을 바쳐야 했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말씀만으로 나병환자를 고치셨다. 그리고 레위기 14장의 규례대로 제사장에게 가서 완치여부를 판정받고 속건 제물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규례를 인정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나병을 고침 받은 사람이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여기서 나병환자는 영적으로 부정한 죄로 인해서 버림받았던 사람이며,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백성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5-13절은 백부장의 집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신 기적이다. 백부장은 로마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중풍으로 쓰러진 하인을 긍휼히 여기는 착한 마음과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에 놀라시며, 유대인들한테서는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새천년시대에는 백부장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차별 없이 천국백성이 되지만, 목이 뻣뻣한 바리새인 같은 불신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중풍병을 고친 능력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14-17절은 베드로의 장모가 앓던 열병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신 기적이다. 마태는 모세오경을 최고의 경전으로 믿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가 더 월등함을 강조하였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각종 질병과 귀신을 몰아내는 능력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18-27절은 갈릴리 호수에서 광풍을 진압하신 기적이다. 능력 많으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일지라도 광풍을 맞아 요동칠 때가 있다 그때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예수님이 위기에 몰린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믿음뿐이었다. 우리가 인생의 항해에서 광풍을 만나 자초위기에 놓인다할지라도, 믿음만 있다면, 광풍은 제압될 것이고, 기회로 바뀔 것이다.

28-34절은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들린 자 두 명을 고치신 기적이다. 귀신들이 무덤 사이에서 나온 것은 그 무덤들이 동굴이기 때문이었다. 귀신에 붙잡혀 무덤에서 거주했던 것이다. 이 처참한 무덤에 갇힌 상황, 그것이 종종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일일 수 있다. 예수님은 돼지 떼의 물적 가치보다 귀신에 붙잡힌 영혼들을 더욱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약속받고 새천년왕국에 입문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길

마태복음 8장의 다섯 개의 기적은 단순히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중요성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18-27절에 소개된 갈릴리 호수에 불어 닥친 광풍을 진압하신 예수님의 기적은 제자의 길이 고난과 죽음을 각오해야하는 험난한 길임을 강조한 것이다. 제자의 길을 걷다보면, 험난한 사막 길이 나타날 때가 있고, 위험한 바닷길이 나타날 때도 있지만,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다면, 전혀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광풍진압의 기적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재물을 포기할 각오와 가난해질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 둘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선순위를 알고 즉시 결단해야 한다는 것, 셋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광풍진압의 기적을 제자의 길에 관한 교훈으로 이해하려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건너편으로 가자는 말씀 때문이다. 갈릴리 호수는 늘 요동치는 험난한 세상의 대표이며 흑암과 죽음의 상징이다. 고대 그리스-로마세계는 큰물 즉 바다와 호수와 강을 죽음의 세계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사람이 죽어 음부의 세계로 가려면 비통의 강, 시름의 강, 불의 강, 망각의 강을 차례대로 건너야 했다. 망각의 강을 건넌 후에는 낙원인 엘뤼시온(Elusion)으로 갈 사람과 지옥인 탈타로스(Tartaros)로 가야할 사람이 나눠졌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 갈릴리 호수의 이편은 언제나 현세요, 저편은 내세 또는 새천년세계의 상징이다.

둘째,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가자는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따르라”와 “따랐다”와 같은 말들은 제자의 길을 암시한 것이다.

셋째,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 결단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도 없이 명예와 권세와 재물을 얻기 위해서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해 달라”는 제자의 부탁을 결단을 미루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를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즉시 결단하는 참 제자가 되라는 명령으로 이해하였다.

넷째, 20절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과 24절의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고” 그래서 25절의 죽게 되었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제자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섯째,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으며, 또 예수님께 도움을 간청할 의사가 있다면,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실 능력의 주님께서 저편 새천년시대에로 무사히 인도하여 들이실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서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배는 종종 바람과 폭풍을 만나 고초를 많이 겪지만, 결코 좌초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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