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강23]새천년시대를 앞당기는 신분노출 1(마 1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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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23]새천년시대를 앞당기는 신분노출 1(마 14:1-36)
새천년시대를 앞당기는 신분노출의 위험
마태복음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예수님이 제2모세, 즉 제2출애굽사건을 성취하실 메시아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11-12장에서 예수님이 유대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셨다면, 그것에 대칭이 되는 14-16장에서는 메시아신분을 노출시키셨고 제자들로부터 메시아로 인정도 받으셨다. 그러나 신분노출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예수님의 메시아신분노출에서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개적인 신앙고백은 배척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교회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1-12절에서 세례 요한은 모세의 형 아론에 비교될 수 있다. 아론이 모세의 형이었던 것과 같이 세례 요한도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친척이었다. 아론이 제사장의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세례 요한도 제사장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으로서 제비뽑기에서 영예롭게도 성전에 들어가 분향했던 레위 가문의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도 아론 족속의 여인이었다(눅 1:5). 또 아론이 모세를 히브리인들의 메시아로 안내한 것처럼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인류의 메시아로 안내하였다. 세례 요한의 역할은 집회에서 주 강사의 등단을 소개하는 MC와 같았다.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고, 그의 길을 예비하는 매니저와도 같았다. 따라서 그의 등장은 예수님사역의 출범을 알리는 시점이었고, 그의 퇴장, 즉 죽음은 예수님의 메시아신분노출의 시점이었다.
세례 요한의 죽음과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민중에게 노출시킨 결정적인 시점이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사역의 성공적인 정점이었으며, 골고다의 죽음을 향한 내리막길의 시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메시아신분노출은 그분의 죽음의 때를 노출하는 시점이었다. 여기에 기막힌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숨어있었다. 모세가 느보산 정상에서 죽고 나서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의 새천년시대를 개방시킨 것처럼 예수님이 예루살렘 시온산 골고다 정상에서 죽고 나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새천년시대를 개방시킨 것과 같다. 이뿐 아니라, 세례 요한의 죽음은 그가 오실 자 메시아가 아니라, 선구자였을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시점이었다. 그가 죽기 전에는 누가 메시아인지가 확실치 않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기 전에는 그 사실이 아직 감춰져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신 후에는 꼭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막 8:30, 눅 8:56). 세례 요한이 죽기 전에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그분이 오실 자 메시아인지 혹은 아닌지를 묻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 사실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아진다. 한 가지는, 그가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이 파견한 정보원들에게 자신은 메시아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듯이, 세례 요한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란 점을 명확히 한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세례 요한 자신도 예수님이 메시아인지를 확신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세례 요한이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추측을 차단하는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예수님의 메시아신분노출의 시점은 세례 요한의 죽음과 오병이어의 표적과 함께 시작되었고, 이때이후로는 예수님의 본래적인 사명 즉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순례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새천년시대를 앞당긴 세례 요한의 순교
선지자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이미지는 선포한 내용의 성격, 단순하고 소박한 삶 그리고 외모와 복장(왕하 1:8)에서 비슷한 면들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마 11:14)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말 4:5)는 말씀의 성취를 세례 요한으로 보셨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두 군데서 발견된다. 한 곳은 복음서이고, 다른 곳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고대사>이다. 사복음서들과 <고대사>는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되었다. 요세푸스는 유대전쟁당시에 군인으로 참전하였다. 그는 갈릴리전투에서 로마군에 포위를 당하자, 로마군에 항복한 후 협력하여 그 공로로 궁중역사가가 되었다. 요세푸스는 짧지만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에 따르면, 세례 요한의 죽음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여 관찰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메시아라면, 폭동을 주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헤롯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감금하였다가 살해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을 예언자적 언행 때문으로 보았다. 헤롯 안티파스가 자기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둘째 부인으로 취했는데, 세례 요한이 안티파스의 이런 행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 복음서는 세례 요한이 헤로디아의 증오 때문에 참수된 것으로 기록하였다.
세례 요한이 압송되어 갇혀있다 참수된 곳은 ‘마케루스’라 불린 사해바다 동편 해발 700미터 산위에 세워진 헤롯의 여름 궁전이자 요새였다. 이 요새는 주후 70년 유대전쟁의 패배로 로마군에 의해서 폐허가 되었다. 세례 요한의 목은 오늘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에 안치되어있다. 그 이유는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의 시리아총독지배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형집행권이 없었고,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이유로 세례 요한을 참수했다는 보고서와 함께 그의 목을 시리아총독 앞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훌륭한 인물들이었다. 난세에 이스라엘을 구출한 선지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들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서에서는 엘리야를 세례 요한에, 모세를 예수님에 예표와 모형으로 설정하고 있다. 원래는 엘리야를 모세와 다윗과 마찬가지로 메시아의 표상으로 취급하려하였을 것이다. 그 증거가 말라기 4장 5절의 예언이고, 헤롯 안티파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지금도 이라크 남부와 이란 남서부에는 수천 명에 이르는 만다야교(Mandaeism)를 믿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로 믿고 있다. 만다(manda)란 고대 아람어로 영지(靈知)란 뜻으로 그들의 뿌리가 영지주의 유대교에 있음을 짐작케 하는 이름이다. 교리는 지극히 절충적 혼합적이지만 침례와 성만찬을 엄격히 시행한다. 특히 침례는 흐르는 물에서만 행한다고 한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풀었다. 요한의 침례는 사람들을 회개시켜 오실 자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기독교의 침례와는 그 목적부터 달랐다.
새천년시대의 메시아신분을 노출시킨 표적들 1
오병이어의 표적은 광야사막에서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게 한 사건을, 바다 위를 걸으신 표적은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사건에 비교가 된다. 모세는 예수님의 예표와 모형이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행한 표적들에 비견될만한 이들 표적들을 행하여 보이심으로써 자신이 오실 자 메시아이심을 입증해 보이셨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으므로 자신의 메시아신분을 노출시키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끊임없이 위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임박했으므로 위로부터 내리는 표적들을 보일 때가 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메시아가 죽는다는 것, 그것도 처참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경전인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계획이었다.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메시아인 것을 입증했으면 곧바로 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한 군사작전에 돌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가진 자들과 지배자들은 원치 않았겠지만 말이다.
13, 15절의 “빈들”은 히브리인들의 광야사막을 생각나게 하는 장소이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사막에서 히브리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게 한 것처럼, 빈들에서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큰 무리를 먹이셨다.
19절의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라는 말씀은 교회에서 행하는 주의 만찬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다. 더욱이 이것이 저녁식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대인들의 저녁식사는 보통의 식사보다는 더욱 종교적이므로, 더더욱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 저녁식사 때 기념을 부탁하셨던 주의 만찬과 연결된다.
17절에서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란 말씀과 20-21절의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는 말씀은 13장의 천국비유들, 즉 한 알의 씨앗이 30배, 60배, 100배로 불어나는 현상,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작은 누룩이 온 가루를 부풀리는 현상처럼, 비록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진 것은 작고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할 것을 보여주시는 표적이다.
22절에서처럼,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행위는 세상이란 바다를 교회라는 방주를 타고 새천년왕국을 향해서 순례하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뿐만 아니라,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떠나서 홍해를 건넌 것과도 같고, 광야사막을 지나 가나안 땅에로 향한 순례와도 같다.
어떠한 항해도, 비록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항해라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설사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항해라도 거친 파도와 강한 폭풍과 같은 시련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은 결코 없다. 믿음만 있다면, 물위도 걸을 수 있고, 강풍과 거친 파도도 잠잠케 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병을 고치겠다는 믿음만 있으면, 믿음대로 병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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