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강25]새천년시대를 앞당기는 신분노출 3(마 15:29-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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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25]새천년시대를 앞당기는 신분노출 3(마 15:29-16:28)
새천년시대에서의 이방인문제 2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들 가운데 한 가지는 막힌 담을 헐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유대교의 담을 헐지 않고서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담보할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의 배타적 선민사상과 영토 지상주의로 인해서 생긴 이방인들의 구원을 가로막는 담을 제거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한 가지 이유였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하였다. 또 히브리서 10장 19-20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하였다. 공관복음서 저자들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마 27:51, 막 15:38, 눅 23:45)고 전하였다. 여기서 성소의 휘장은 막힌 담의 상징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막힌 담이 허물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에 대해서 히브리서 4장 16절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다.”고 하였다.
예수님 당시 성전은 네 개의 뜰과 두 개의 성소가 다섯 개의 담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크고 넓은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 담 안쪽에 ‘유대인 여성의 뜰,’ 담 안쪽에 ‘유대인 남성의 뜰,’ 담 안쪽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인 ‘제사장의 뜰’ 또 성소로 들어가는 문 안쪽에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놓인 ‘성소,’ 다시 휘장 안쪽에 법궤가 놓인 ‘지성소’가 있었다. 이 유대교 성전에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인종의 담’이 있었고, 유대인 여성들과 남성들 사이에 ‘남녀의 담’이 있었으며, 유대인 남성들과 제사장들 사이에 ‘신분의 담’이 있었고, 제사장들과 대제사장 사이에 ‘계급의 담’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담은 하나님의 영역인 성막 안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뜰의 담들은 다 유대교가 만들어낸 인위적이고 권위적인 담들이다. 이 모든 담, 심지어 신성의 상징인 성막휘장까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 육신을 깨뜨리심으로 다 허물어졌다. 따라서 이제는 민족, 남녀, 신분, 계급의 차별 없이 누구나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 법궤 앞 시은소 앞으로 나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방인들인 우리조차도 아무런 거리낌이나 방해물 없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 지성소 은혜의 보좌 앞으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의 법궤 즉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었고, 그것도 일 년에 단 하루 대속죄일 때뿐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고전 4:1, 엡 1:9, 3:1-12, 5:32, 6:19, 골 1:26-27, 2:2) 또는 “그리스도의 비밀”(골 4:3-4)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서 비밀이란 로마서에서 밝힌 대로,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배타적 유대인들이 그들의 담 때문에 깨닫지 못했던 진실, 즉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과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데는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차별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새천년시대의 메시아신분을 노출시킨 표적들 2
마가복음 4장부터 8장까지를 보면, 두 개의 바다기적과 두 개의 급식기적 그리고 두 개의 장애자 치유기적이 나온다. 그러고 난 다음 8장 29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온다. 두 개의 바다 기적들 가운데,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야기(4:35-41)는 5천 명을 먹이신 기적(6:35-44)을 향해서 진행이 되고, 그 사이에 귀먹고 어눌한 벙어리(7:31-37)가 고침을 받고 말이 분명해진다. 풍랑만난 제자들을 향해서 물위를 걸으셨던 이야기(6:45-51)는 4천 명을 먹이신 기적(8:1-10)을 향해서 진행이 되고, 그 사이에 벳새다 장님(8:22-26)이 고침을 받고 만물을 밝히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두 개의 바다기적과 두 개의 급식기적은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향해서 진행이 된다. 여기서 두 개의 급식기적과 두 개의 바다기적은 모세와 함께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넌 것과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빵문제, 즉 세상의 일 또는 사람의 일과 관련이 있고, 두 개의 장애자 치유는 영의 눈이 열리고 영의 귀와 혀가 풀려 빵문제를 뛰어넘어 예수님이 제2모세이신 것과 그분이 세우실 제2가나안 땅이 하늘 가나안 땅 또는 교회천국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한편 마태는 마가복음의 기록들과 대체로 비슷하게 기술하면서도 마가처럼 두 개씩 짝을 맞춰 소개하지 않고 두 개의 급식기적에 포커스를 맞춰서 예수님의 빵문제 해결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빵문제해결을 반복해서 강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예언된 제2모세 즉 메시아이신 것을 노출시킨다. 따라서 빵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 명을 먹이신 표적도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신 표적과 동일한 형식으로 기술하였다. 이들 두 개의 급식기적은 유대인들이 주전 586년 바벨론에 유배된 이후 6백여 년간 보기를 원했던 메시아신분을 확인시켜주는 표적들이었다.
33절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란 물음에서 “광야”와 “빵”은 예수님께서 13세 이상의 남성 4천명 이상을 먹이신 표적이 모세가 광야에서 베푼 만나와 메추라기의 표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36절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는 교회에서 행하는 주의 만찬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다. 마태복음 26장 26절의 말씀대로 “떡을 가지사(봉헌), 축사하시고(성만찬 기도), 떼어(분병례), 주시며(성찬배수/聖餐拜受), 가라사대(교훈)”는 2천년의 전통을 지닌 성만찬 예배예전 그대로다.
34절의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는 말씀과 37-38절의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는 13장의 천국비유들, 즉 한 알의 씨앗이 30배, 60배, 100배로 불어나는 현상,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작은 누룩이 온 가루를 부풀리는 현상처럼, 교회의 나중이 창대하게 발전할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다.
39절에서처럼 배를 타고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는 행위는 세상이란 바다를 교회라는 방주를 타고 새천년왕국을 향해서 순례하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떠나서 홍해를 건넌 것과 같고, 광야사막을 떠나서 요단강을 건넌 것과도 같다.
예수님의 신분과 새 왕국 교회의 노출
마태복음 16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고, 16절에서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18절에서 예수님이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인간의 오랜 희망을 실현시켜줄 메시아탄생의 선포로 시작된 마태복음의 이야기들은 16장 13-28절에서 예수님이 오실 자 메시아시오, 그분이 출범시킬 새천년시대인 천국이 교회라는 것을 밝히는 데까지 진전되고 있다.
마태복음 16장 1-4절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였다”는 말씀과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는 말씀은 16장과 대칭의 짝을 이루는 12장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것이다(38-39절). 추가된 것은 “시험하여”란 말과 “하늘로부터 오는”이란 말이다. 이 두 말은 4장에 나온 마귀의 세 가지 시험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이는 유대인들의 요구가 세속적이고 마귀적인 욕망에 의한 것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이 요구에 대한 거절은 “요나의 표적”이란 말이 암시하듯이, 예수님의 목숨을 요구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6절에서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제자들이 빵 챙겨가는 것을 잊은 채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갔고, 빵이 없음을 걱정하였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제자들의 무지를 책망하셨다. 이 부분에서 마가는 빵문제를 초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사실을 입으로 고백하고 헌신하게 된다고 하였다. 마태는 마가와 달리 적대세력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경고하였다. 여기서 누룩은 죽음의 그물을 쳐놓고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에로 몰아가는 여론몰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메시아신분노출은 절정에 달하였다. 21절의 예수님의 수난예고에서 보듯이 아이러니하게도 메시아신분노출은 곧바로 죽음에로 이어진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민중들이 간절히 기대하고 희망했던 메시아와 다른 형태의 메시아였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메시아출현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가진 자들의 음모 때문이었다. 20절에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죽음의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신앙고백이 신약(新約) 즉 새 언약의 압축내용이다. 이 내용의 확대가 신약성경 즉 사도들의 가르침과 실천내용이다. 히브리인들은 시내산에서 언약식을 갖고 언약의 내용인 구약(舊約) 즉 옛 언약인 토라를 받아 지켰다. 사도전통이 실린 신약성경은 18절의 말씀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교회가 세워진 반석이며, 19절처럼 천국의 문을 여닫는 열쇠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스승의 사명에 대해서 충분히 깨닫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여타의 유대인들의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린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들도 24절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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