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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26]새천년시대를 앞당기는 신분노출 4(마 1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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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96 2012.04.05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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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26]새천년시대를 앞당기는 신분노출 4(마 17:1-27)

메시아의 자격: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삼국시대이후 우리민족에게 거짓 미륵의 출현이 종종 있었던 것처럼, 바벨론유배이후 유대민족에도 거짓 메시아의 출현이 종종 있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누가 참 메시아인가를 판가름하는 잣대 혹은 메시아가 되는 조건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었다(마 16:1). 여기서 “하늘로부터”는 거짓에의 반대, 곧 ‘참’이나 ‘옳음’을 뜻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마 21:25)는 물음이 있고, “위로부터 오시는 이” 또는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란 표현이 있다(요 3:31), 이들 표현들에서 보듯이, 하늘로부터 온 사람이면, 참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고, 하늘로부터 온 표적이면, 참 하나님의 사람이 일으킨 표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온 사람, 하늘로부터 온 침례, 하늘로부터 온 표적들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능력 행하심을 뜻하는 ‘기적’이란 말 대신에 그 큰 능력이 일어난 목적을 뜻하는 ‘표적’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오병이어나 칠병이어와 같은 큰 능력 행하심은 그것들을 행하신 예수님이 오실 자 메시아인 사실을 노출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하늘로부터”란 표현이 생긴 이유는 주전 586년에 나라를 빼앗기고 바벨론에 유배된 이후 제2모세와 제2가나안땅을 희망한데서 비롯되었다. 제2모세는 메시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가나안땅이전시대에 히브리인들은 짧게는 215년 길게는 430년간이나 이집트에서 떠돌이노예로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가나안땅을 빼앗기고 노예로 끌려감으로써 다시금 예전의 그 땅 없던 떠돌이노예의 신세로 돌아갔다. 이 떠돌이노예의 유대인들에게 제2가나안땅의 시대를 열어줄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일 것이라고 믿어졌다(신 18:15). 모세는 광야에서 표적을 일으켜 매일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먹게 하였으므로 오실 자 메시아는 당연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할 수 있는 자라야했다(요 6:30-31).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예수님이전에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한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그들이 모세와 엘리야였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모세는 광야사막생활 40년 동안 매일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게”하여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게”하였다. 또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3년 동안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도록”하였다. 그렇지만 햇수나 양이나 수혜자의 숫자로 볼 때 두 사람사이에는 분명히 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모세는 그토록 소중하여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나안땅을 갖게 해준 해방자였지만, 엘리야는 그 땅에서 빼앗긴 야훼신앙을 되찾게 해준 해방자였으므로 경중에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성경에서는 모세를 예수님의 예표로, 엘리야를 세례 요한의 예표로 보았고, 마태복음 17장에서 거듭 강조되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의 자격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표적을 본 유대인들은 놀라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하였고,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였다”(요 6:14-15).

메시아의 자격: “하늘로부터 소리”

마태복음 14장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메시아신분노출은 17장에서 최고점에 도달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원하는 문자적이고 세속적인 메시아 곧 정치군사적인 해방자가 되기를 거부하셨다. 예수님께서 민중에게 주시기를 원했던 양식은 육신의 배를 불리는 물질적인 빵이 아니라, 영생을 위한 하늘생명의 양식이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단지 예수님이 오실 자 메시아란 사실과 영생을 위한 하늘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뿐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육신의 배를 불리는 물질적인 빵과 영생을 위한 하늘생명의 양식의 질적인 차이를 언급하셨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다음 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찾아와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했을 때에 그들에게 메시아로서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셨다. 새천년시대를 개방할 메시아는 “썩는 양식”을 주는 자가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주는 자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표적을 언급하면서 만일 당신이 오실 자 메시아라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으로 빵을 먹게 해줘야 할 것이 아니냐고 했을 때,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빵을 준 자는 모세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하늘로부터 참 빵을 주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이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빵은 하늘로부터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자기 자신이라고 밝히셨다. 그러고 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6:35,58).

예수님의 이 주장을 인정한 것이 “하늘로부터 소리”였다. 이 “하늘로부터 소리”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보다 질적인 우위를 보였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소리를 두 번 들으셨는데, 한번은 침례를 받으실 때였고, 또 한 번은 높은 산에서 체험하신 신령한 변형 때였다.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예수님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신에게 임하시는 것을 보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로부터 소리를 들으셨다(마 3:16-17). 또 높은 산에 올라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말할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늘로부터 소리를 들으셨다(마 17:5). 누가는 이런 신령한 체험들이 모두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이뤄졌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하늘로부터 소리” 때문에 마태복음 17장은 세례 요한이 등장한 3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침례와 높은 산에서 체험하신 신령한 변형은 모두가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상징한다. 침수는 죽음을 침례의 물은 무덤을 상징하며, 물에서 올라오는 행위는 부활과 승천을 의미한다. 이 침례가 높은 산에서 체험하신 신령한 변형과 관련된 것은 “하늘로부터 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높은 산에서 체험하신 신령한 변형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장사된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시여 승천하시고 영광 받으실 것을 상징한다.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의 시점을 “내 때”(마 26:18, 요 2:4, 7:6,8) 또는 “영광을 얻을 때”(요 12:23)로 적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시아의 자격: 하늘로부터 증인(證人)

메시아의 자격 가운데 한 가지는 승천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모두 하늘로 승천하신 분들이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죽었지만, 그 시신이 하늘로 들림을 받았다는 믿음이 유대인들에게 퍼져 있었다. 이를 모세의 몽소승천이라고 일컫는다. 또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우리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시여 승천하셨다. 모세처럼 죽어서 시신으로 승천한 것이나 엘리야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승천한 것보다는 죽었지만, 부활하여 승천한 것은 모세와 엘리야의 표적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써 새천년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17장에는 높은 산에서의 신령한 변형체험,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상관성, 귀신들린 간질환자치유와 믿음의 상관성, 세상나라와 하늘나라의 상관성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선지자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이미지는 선포한 내용의 성격, 단순하고 소박한 삶 그리고 외모와 복장(왕하 1:8)에서 비슷한 면들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마 11:14)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말 4:5)는 말씀의 성취를 세례 요한으로 보셨다. 이 부분을 17장 10-13절에서 재차 강조함으로써 세례 요한의 역할을 메시아선구자의 역할로 제한시키고 있고, 메시아가 등장하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사상이 이미 유대교에 퍼져있었던 사상이었음을 환기시켰다.

출애굽기 19장 이후, 특히 24장은 마태복음 17장의 예표와 모형적 사건이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를 데리고 시내산에서 엿새 동안 구름에 쌓여 있었다(출 24:1, 9, 15-16; 34:29-35). 또 34장 29-35절을 보면, 하나님을 뵌 모세의 얼굴에는 수건으로 가려야할 만큼 광채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엿새 후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른 것이나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던” 것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던 사건은 예수님과 그분이 개방하실 나라가, 모세와 그의 실패한 왕국처럼 유한한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17장에서 귀신들려 간질을 앓았던 자를 고치신 사건은 8-9장에서처럼 이 영원한 하늘의 것을 개방하는 열쇠가 믿음이란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귀신들려 간질병을 앓고 있는 세상 곧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에 마침표를 찍고, 새천년시대를 개방할 능력이 믿음이요, 그 믿음으로 구원받는 새 시대가 밝았음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이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난” 직후가 될 것을 예고하셨다. 이 예고를 듣고서 제자들이 근심한 이유는 그들이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며, 죽음을 당하는 때가 곧 영광을 얻는 때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나라는 유한한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저 하늘의 것이기 때문에 굳이 노동자의 이틀 치 품삯에 해당되는 성전세(출 30:13)나 로마가 걷는 인두세를 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다. 그러나 육신의 몸을 의탁하고 있는 한,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땅의 법도 지킬 것을 친히 모범으로 가르치셨다. 성도들은 비록 몸을 세상에 의탁하고 있으나 영혼과 정신만큼은 저 영원한 나라에 두고 사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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