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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3]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3(마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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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774 2012.05.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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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3]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3(마 22:1-14)

새천년시대를 거부한 실족

마태복음 22장 1-14절의 비유는 천국잔치초대에 마땅히 응했어야할 유대인들이 그들의 세속적인 관심과 희망 때문에 초대에 응하지 않았음을 밝혀준다. 유대인들은 유한하고 잠정적인 세속적이고 물적인 가치에 심하게 꽂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한테도 차별 없이 미친다는 것을 모르고 천국잔치의 무한 가치를 무시해 버렸다.

2절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에서 임금은 하나님이시고, 천국은 교회이며, 아들은 예수님이시고, 혼인잔치는 교회에서 펼치는 복음잔치를 말한다. 따라서 이 비유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새천년시대인 교회로의 초청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부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혼인잔치에 손님의 자격이 아니라 신부의 자격으로 참여한다. 비유의 성격상 그리 설명되지 못하였을 뿐이다. 천국의 성격을 좀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하늘 가나안땅이 천국이다. 교회는, 가나안땅의 맞은편이 광야인 것처럼, 하늘 가나안땅의 입문을 앞둔 광야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천국잔치는 하늘 가나안땅에서의 잔치일수도 있고, 광야에서 미리 맛보는 잔치일수도 있지만, 마태복음 22장의 천국잔치는 광야에서 미리 맛보는 잔치, 즉 교회에서의 복음잔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의 종들은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아니라 교회시대의 일군들이다. 이 일군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영원한 하늘 가나안땅을 약정 받고 보증(선수금) 받고 인침(도장) 받아 하늘의 만나와 반석의 샘물을 미리 먹고 마시는 복음잔치에로 민족성별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누구든지 믿는 자들을 초대하려고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천국잔치에 참여해야할 일순위자들은 유대인들이다. 바울이 선교지에서 힘썼던 전도대상의 일순위도 항상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초대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군들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유대인들이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가? 유대교에서 복의 개념은 땅의 것이지, 하늘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장차올 세상이란 문자적인 가나안땅이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사업성공(5절)과 같은 세속적인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하였고, 열방민족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한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본문의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유대인들의 실족(거부)이 이방인들의 개종에 유익(기회)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들이 실족한 이유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엡 3:9)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이방인)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고전 2:7)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엡 3:8)이 영적이고 신령한 것임을 깨닫지 못했고 문자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오해하였다. 바울은, 만일 유대인들이 이 비밀한 지혜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다”(고전 2:8)고 하였다. 유대인들이 성령님이 계시하신(고전 2:10, 엡 3:3) 이 비밀한 지혜를 깨닫지 못한 것은 그들이 육에 속했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다”(고전 2:14)고 하였다.

새천년시대를 거부한 물적 대가

7-8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다”는 말씀은 주후 66년부터 73년까지 치러진 유대전쟁에 관한 말씀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유대전쟁은 천국잔치에의 초대를 거부한 결과 또는 그 응보로 이해되어진다.

유대인들은 주전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식민지가 되었고, 주후 70년 로마와의 전쟁에 패하여 656년간 속주민으로 살아온 조국에서조차 쫓겨나 1948년 건국 때까지 1878년간 남의 나라들에 흩어져 살았으며, 그 기간에 1200만 명이 학살당하는 끔직한 비극을 겪었다.

전쟁의 발단은 주후 66년 유대총독 플로루스가 체납된 속주세 대신에 성전의 보물창고에서 17달란트의 금화를 몰수한 데서 비롯되었다(노동자 20만5천명의 하루 일당에 해당). 이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기해 반란을 일으켰다. 과격파인 열심당원들의 습격을 받아 로마 수비대원들, 온건파인 대제사장 등이 학살당하였다. 그해 6월에 열심당원들은 로마군 수비대가 주둔해 있던 마사다 요새도 습격하여 장악하였다. 그러나 70년에 예루살렘은 5개월의 격전 끝에 함락되었다. 8월 10일 성전에 불이 붙었고, 9월 20일에 저항이 끝났다. 그리고 철옹성 마사다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936명의 남녀유대인들이 73년 유월절 밤에 자결함으로써 유대전쟁의 막이 내렸다. 전쟁에 참전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포로로 잡힌 자가 9만 7천명, 사망자가 110만 명이나 되었다. 대부분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5개월 동안 포위되는 바람에 희생된 유대인들이었다.

주후 66-73년의 유대전쟁은 기독교가 유대인들의 탄압에서 벗어나 세계종교로 발전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배타적 유대주의 틀에 갇혔던 유대인들의 통제아래 있던 예루살렘교회의 붕괴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기독교는 유대주의로부터 해방을 맞게 되었고, 이방인복음주의교회들이 천국복음잔치의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주후 30년 베드로가 세운 예루살렘교회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수장으로 한 유대주의 기독교였다. 유대주의 기독교란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을 그대로 지키면서 예수님을 오실 자로 예언된 메시아로 믿는 유대교적 기독교(Messianic Jews)를 말한다. 이 기독교는 신약성경의 기독교라고 말하기 어려운 유대교에 속한 나사렛파(Notzrim) 정도였다. 그러나 신약성경 기독교로써는 퍽 다행하게도 이 예루살렘교회가 40년 만에 문을 닫게 됨으로써 더 이상의 권위를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유대전쟁으로 인해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끝나고부터 바나바와 바울이 세웠던 안디옥교회는 물론이고 로마제국 전역에 세워진 수많은 선교교회들이 더 이상 유대교적 율법주의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고, 그들의 폐쇄적 가치관과 세계관의 틀에서 벗어나 복음주의 신약성경기독교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왕국멸망이후부터 6백년간이나 기다려서 만난 진짜 메시아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와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의 희망이 기독교의 주장처럼 영적이고 내세적이며 천국중심의 안식과 평강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토지중심의 안식과 평강을 구하기 때문이다.

새천년시대를 거부한 영적 대가

9-10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는 새천년시대의 천국복음이 민족성별 남녀노소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유대인은 물론이요, 죄인과 이방인에게까지 활짝 열려있음을 말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 새천년시대가 열렸음을 말한다. 바울은 이 시대를 로마서 10장 12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는” 시대,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는” 시대,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시는” 시대라고 정의하였다. 요한복음 3장 16절도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고 하였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민족성별 빈부귀천에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영생이 주어지는 시대를 선포한 것이다.

11-14절,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에서 예복은 하객을 위해 미리 준비된 혼인예복을 말한다(왕하 10:22). 혼인잔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급히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혼인예복을 갖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자들이었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졸업식 때 받아 입는 가운처럼, 준비된 예복을 받아서 입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만일 본문에서 말한 천국이 교회천국을 의미한 것이라면,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은 교회입문에 합당치 아니한 사람이 될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거짓 교인이거나 사업목적이나 이단사상으로 미혹하기 위해 침투한 자들일 것이다. 초기 교회들에는 거짓 사도, 거짓 교사 또는 거짓 선지자로 언급된 이단자들이 있었으며, 교회 내부에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과 방탕한 영지주의 이단자들이 침투해 있었다. 이런 이들은 하늘 가나안땅에 합당치 아니한 자들이었다. 마치 광야사막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거역하다가 심판을 받아 죽어 사막에 묻힌 자들과 같다. “바깥 어두운” 곳은 지옥 타르타로스(Tartaros)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대 속죄일에 흰옷을 입는다. 흰옷은 죄 사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예복은 신실한 믿음을 말한다. 계시록 19장 7-8절은 흰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적고 있는데, 이는 성도들의 행위공덕을 말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신의를 지킨 신실한 믿음을 말한다. 흰옷을 받은 순교자들(계 6:10절)과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선 큰 무리(계 7:9)는 모두가 “이기는 자”(계 3:5) 즉 끝까지 신의를 지킨 신실한 자들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14절의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말씀은 초청은 누구나 차별 없이 받지만, 초청에 응하지 않고 있는 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신실히 믿음을 지킨 자들은 차별 없이 천국백성이 되지만, 목이 뻣뻣한 바리새인 같은 불신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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