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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4]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4(마 22: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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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18 2012.05.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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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4]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4(마 22:15-46)

유대인들의 인두세 올무

마태복음 22장 15-46절은 12절의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에서처럼 적대자들을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15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였고,” 34-35절을 보면,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고 적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 결과에 대해서 22절에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갔고,” 33절에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으며,” 46절에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었다”고 적고 있다.

마태복음 22장 15-46절에 나오는 세 가지 질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싶지 아니한 기득권자들이 토끼몰이 하듯이 예수님을 죽음의 언덕 골고다로 몰아가는 정치적 도구였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정치적 신학적 종교적 질문들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헤롯 당원들이 한통속이 되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펼친 정치마당놀이였다. 그런 그들의 속셈을 꿰뚫어 본 예수님은 명쾌한 대답으로 질문자들의 악한 의도를 부끄럽게 만드셨다.

15-22절에는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이 연합전선을 펴서 예수님을 정치문제로 몰아가는 장면이다. 속주민으로서 로마황제에게 인두세를 바치는 문제는 배타적 민족주의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이슈였다. 그들에게 인두세를 내는 행위는 이방인들에게 맹종한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수치스런 일이었다. 주후 66년에 시작되어 73년에 비극적 패망으로 끝난 유대-로마전쟁도 결국 인두세가 발단이었다. 이 전쟁의 패배로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이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에 기존의 성전세(유대인세)를 로마의 유피테르 신전에 바쳐야 했다. 또 전쟁포로가 된 자들은 대부분 노예로 살았거나 검투사와 맹수의 먹이가 되었다.

한편 헤롯 당원들은 헤롯가문을 부흥시키려는 목적으로 로마에 협력하면서 납세도 적극 권장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인두세를 반대한 바리새인들과 이를 찬성한 헤롯 당원들이 연합전선을 펴서 17절에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고 물은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올무였다.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면, 바리새인들과 열심당원들과 같은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면치 못할 것이고,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당국에 반기를 든 정치범이 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21절에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으로 인두세와 성전세 모두를 인정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빌라도법정에서 예수님이 황제에게 인두세를 바치지 말라고 선동했다고 모함하였다(눅 23:2).

성도들은 성(聖)과 속(俗), 즉 하나님의 나라(교회)와 세상의 나라 모두에 속한 시민들이다. 이 두 나라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별되며, 일치될 수 없지만, 각각이 성도들의 영적 육적 삶에 필요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각각의 영역 속에서 감당해야할 의무들에 충실해야한다. 국가와 교회의 의무 모두에 충실해야 한다.

유대인들의 수혼법 올무

23-33절은 신학적 논쟁으로써 이생과 내생에 관한 이슈였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신앙의 모순성을 지적하기 위해 신명기 25장 5-6절에 나타난 수혼(嫂婚, Levirate marriage)법을 들고 나왔다. 수혼법은 자식이 없어서 가문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써 과부가 고인의 형제와 결혼하는 관습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맏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물려받고 족보에 올라 그의 상속자가 되었다.

사두개인들은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 당시 집권 여당세력으로써 진보 헬라주의를 표방한 유물론자들이었다. 구전전승의 구속력과 권위를 부정하여 토라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고, 그것들을 바리새인들보다 더 문자적으로 해석하였다. 레위인의 정결의식과 제사의식,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반면, 모세오경에 없다는 이유로 내세, 부활, 천사, 마귀 등의 영적 세계를 믿지 않았다. 이 당시 대제사장들, 성전치안 맡은 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사두개인들이었고,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진 영향력 있는 정치집단이었던 공회원(Sanhedrin)들의 상당수가 사두개인들이었다. 이들이 자기들이 죽인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는 사도들의 설교를 싫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보수 유대주의자들로서 주전 2세기경 하시딤에서 유래하였다. 하시딤(Hasidim)은 ‘경건한 자들’이란 뜻으로써 시리아지역을 통치했던 에피파네스 안디옥쿠스 4세(Antiochus Epiphanes, 175-164 BC)가 펼친 유대교에 적대적인 헬라화정책에 대항한 그룹이었다. 당시 안디옥쿠스 4세는 유대교 말살정책을 펼쳐 성경을 금하고, 성전에 제우스신상을 세우는 등 유대인들에게 혹심한 종교적 박해를 가했다.

바리새인들은 토라이외도 각종 구전전승을 정경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구전전통의 구속력을 인정하였다. 예정과 자유의지를 주장하였고, 영혼불멸, 몸의 부활, 영혼의 존재, 천사와 마귀의 존재, 사후상벌, 성경의 영감설, 죽은 자의 미래, 인간의 평등을 믿었으며, 주로 원리적인 가르침에 치중하여 민중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바울도 바리새인들의 일원이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질문에서 두 가지 잘못, 즉 그들이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들의 질문이 부적절하고 타당하지 못한 이유는 이생의 유한한 삶을 영원한 내세의 삶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30절에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함으로써 현세와 내세의 연속성을 부정하셨다. 부활의 몸의 가장 큰 특징은 육신의 몸에 가장 필요했던 본능이 없다는 점이다. 본능은 영적 삶을 사는 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육신의 연약함은 이 본능을 두고 한 말이다.

예수님은 출애굽기 3장 6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살아서 현존하신 분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그들의 영혼이 잠자거나 죽거나 하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부활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은 31-32절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는 말씀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란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며, 이는 곧 죽은 자의 부활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의 큰 계명 올무

바리새인 율법사가 36절에서 예수님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라고 물은 이유는 그들이 613개의 계명들과 그것들의 보호막으로 만든 울타리 법들 가운데 어느 계명이 으뜸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기 때문일 수 있지만, 율법사가 시험하여 물었다는 점과 예수님께서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 불렀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질문으로 보아 메시아의 신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 믿어진다.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한 목적은 공소장에 쓸 내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작성된 그들의 공소장에는 성전모독, 인두세거부, 자칭 왕, 자칭 메시아, 신성참칭(僭稱) 등이 포함되었다.

예수님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답변하셨다. 여기서 마음, 뜻, 힘은 관련 어휘를 모두 열거하여 강조하는 헤브라이즘(Hebraism) 표현으로써 온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다. 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두 번째로 큰 계명이라고 답변하셨다. 이 두 계명,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613개 계명들(Mitzvot)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율법사가 하나님 사랑을 가장 큰 계명으로 알고 물었다면, (신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예수님께는 하나님 사랑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유대인들은 계명의 문자적인 적용에 집착한 나머지 계명의 정신과 본질을 놓쳐왔고, 쓸데없는 울타리 법들을 많이 만들어 계명의 내용들을 왜곡시켜왔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사랑을 빙자하여 이웃 사랑 특히 죄인과 이방인 사랑을 카샤룻 음식법과 같은 울타리 법들로 차단시켜왔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하나님 사랑이 없다고 말하려는 율법사에게 정작 있어야할 이웃 사랑이 없음을 알리기 위해서 묻지 아니한 두 번째 큰 계명까지 말씀해 주셨다.

유대인들의 악한 의도를 아신 예수님은 그들이 문제 삼는 메시아의 신성문제를 들고 나오셨다.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내 주(主)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고 한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시면서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일컬은 사실을 환기시켰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지만,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음”(롬 1:3-4)과 다윗과 만민의 주님이 되심을 알리고자 하셨다. 예수님께서 45절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主)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46절을 보면,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메시아관(觀)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죄를 사하는 구세주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삼위일체의 신(神)도 아니었다. 병을 고치고 죄를 사하는 신성(神性)도 아니었다. 메시아는 가나안땅을 되찾아줄 정치적 군사적 영웅으로서 따름과 실천의 대상이었지, 예배와 섬김과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명쾌한 답변들은 유대인들의 올무를 피하고 잠시 그들의 입에 빗장을 걸게 할 수는 있었지만, 음모까지 꺾지는 못하였다. 예수님이 그들의 음모에 의해서 골고다언덕에까지 내몰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었다.

<22장은 천국잔치에의 초대에서 거부했거나 초대에 응했지만, 예복을 입지 아니한 자 즉 적대자들에 관한 말씀이다. 적대자들이 가져온 세 가지 질문(정치, 신학, 종교)은 메시아관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 유대교지도자들(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율법사들 또는 서기관들)의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사단의 세 가지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처럼, 유대지도자들의 사악한 입을 봉쇄시키셨다는 내용이다. 이는 초기기독교가 유대교의 반발과 박해를 물리쳤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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