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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6]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6(마 23: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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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999 2012.05.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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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6]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6(마 23:13-39)

새천년시대를 가로막는 선교 왜곡

예수님은 우월감에 빠져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13-36절에서 “화 있을진저!”를 일곱 번이나 반복하셨다. 그 가운데 첫 번째가 13절의 천국 문을 가로막고 훼방하는 것에 쓰였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천국은 유대민족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을 위한, 모든 민족에 의한, 모든 민족의 영적인 세상이 될 것과 그 세상이 ‘이미’ 2천 년 전에 시작된 교회를 포함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천국사상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천국은 유대인들이 ‘희망’(Ha-Tikvah)하는 ‘다가올 세상’(Olam Ha-Ba)과는 다르다.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다가올 세상은 팔레스타인 땅에 성전이 재건되고 제사예배가 회복된 유대교 중심의 신정국가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다가올 세상이 유대인들을 위한, 유대인들에 의한, 유대인들의 문자적인 세상이 될 것을 믿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방인 선교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유대인들은 거주 지역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눠불렸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는 유대인은 히브리파로 불렸고, 헬라어를 사용하고 헬라어 성경을 읽는 해외거주 유대인은 헬라파로 불렸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이방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가로막는 카샤룻(Kashrut) 음식법을 엄격히 지켰다. 그들이 이방인 선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독점의식인 ‘조상의 하나님’과 선민사상 때문에 이방인들의 구원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만일 본문에서의 천국이 2개월 이내에 예루살렘에 세워질 교회를 의미했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교회를 탄압하게 될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미래의 시점에서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 ‘제4편 문명의 쇠퇴’에서 유대인들이 뼈아프게 겪었던 역사적 비극이 기독교를 탄압하고 배척한 때문이며,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의 강림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제공한 한층 더 큰 보물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피력하였다.

15절,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는 말씀은 헬라파 유대인들을 연상시킨다. 해외에 거주했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방인 선교에 적극적이었다. 남의 나라에 얹혀사는 만큼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문화를 보호해주고 지지해줄 이방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이방인 선교에 적극적이었고, 완전 개종을 꺼리는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개종침례 및 엄격한 율법준수를 면제시켜줌으로써 ‘하나님 경외 자들’이 되게 하였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문(門)의 개종자‘(Ger Ha-Shaar) 또는 '노아의 자녀들'(B'nai Noah)이라 불렀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바울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이로 인해서 헬라파 유대인들은 공모하여 바울을 죽이려하였고, 수없이 감옥에 가두고 39대의 매를 다섯 번 때렸으며, 심지어 돌로 쳐서 거의 죽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방인들을 전도한 후에는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는 말씀은 이방인들이 기독교에로 개종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뜻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새천년시대를 가로막는 계명 왜곡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제3계명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 혹은 경박한 맹세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에 준해서 예수님은 5장 33-37절에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늘로도 말라. 땅으로도 말라. 머리로도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랍비들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거짓 맹세할 수 있는 울타리 법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켜야한다”거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면 지켜야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예수님이 16절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눈먼 지도자라고 비난하신 이유이다.

본문에서 성전의 금은 성전기물들에 씌워진 금이 아니라 성전에 드려진 ‘고르반’ 즉 예물을 뜻한다. 이 고르반이 점차 하나님의 계명들을 합법적으로 어기는 일에 쓰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지적하여 ‘고르반’이라고 선포하면 그 물건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간주되어 즉시 성전에 속한 물건이 되지만, 그 물건은 서원한 사람의 소유로 그냥 남게 된다. 그래서 15장 5절,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는 말씀처럼 부모님께 공양하기 싫은 재물을 고르반으로 지정만하면,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울타리 법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폐하는 사악한 장치였다.

같은 맥락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맹세의 문제에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지킬 필요가 없지만, 성전의 금 곧 고르반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17절에서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고 물으셨다. 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제단으로 맹세하면 지킬 필요가 없지만, 제단의 예물 곧 고르반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19-22절에서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다”고 말씀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들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울타리 법들을 지키는 자들의 눈을 멀게 함으로써 지도자들인 자신들은 물론이고 추종자들까지 함께 수렁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범하였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성전보다는 성전에 바치는 고르반에, 제단보다 제단에 바치는 고르반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제3계명,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와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어기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7장 13절에서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마 15:3,6).

새천년시대를 가로막는 본질 왜곡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 무거운 짐을 사람의 어깨에 지우는 자, 높은 자리와 섬김 받기를 좋아하는 자, 천국 문을 가로막고 선 자, 교인을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 자, 화를 당할 자, 외식하는 자,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린 자, 맹인 된 인도자,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자, 회칠한 무덤 같은 자,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지만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자, 지옥의 판결을 면치 못할 뱀과 독사의 새끼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터무니없는 비난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들과 각종 울타리 법들을 철저히 지키는 종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기에 이런 엄청난 독설을 들어야했을까?

첫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와 같은 하찮은 양념재료까지 십일조 항목에 넣어 철두철미하게 율법을 지켰지만, 정작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기” 때문이다.

둘째, 하루살이와 낙타는 모두 다 먹지 말아야할 부정한 식재료(treyf)였다. 두 가지 다 걸러내야 했지만, 하찮은 하루살이는 애써 걸려내면서도 덩치가 수천 배나 더 큰 낙타는 삼키는 방식의 오류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그릇을 씻을 때 그릇의 겉보다는 속을 더 깨끗하게 씻어야 잘 씻는 것일 텐데, 그들은 겉은 깨끗이 씻고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방치하는 방식의 잘못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 씻기 법만 보아도 그들의 문제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은 손 씻기 법을 매우 엄격하게 지키지만, 손을 위생적으로 씻지 않고 그냥 손목부터 손톱 속까지 물을 붓고 기도문(Berachot)을 암송하는 의식으로 지킬 뿐이다.

유대교인들은 그릇 씻기 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들은 카샤룻(Kashrut) 음식법에 따라 유제품과 고기제품을 함께 먹지 않는다. 유제품을 먹은 다음 고기제품을 먹거나 그 반대의 경우 적어도 3-6시간 이상 지나야 먹는다. 음식을 조리하거나 담는 기구와 그릇들도 유제품에 쓰는 것들과 고기제품에 쓰는 것들을 구별하여 사용한다. 또 그릇 씻기 법에 따라 철저히 구별하여 씻고 말린다. 랍비들이 출애굽기 23장 19절의 “너는 염소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라”는 계명을 고기제품과 우유제품을 함께 먹지 말라는 계명으로 해석하여 그릇 씻기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넷째, 동굴무덤 외부를 회로 칠하고, 입구를 대리석으로 장식한 것처럼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듯이,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29-39절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하나님을 독점하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이방인들을 죄인 취급하여 멸시하며, 그들의 선교에 소극적일뿐 아니라, 외식과 자만과 우월감에 빠져,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탄압하고 배척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천국복음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며, 장차는 교회를 탄압할 자들이므로 그 응보로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40년이 지난 주후 70년에 예수님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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