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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8]새천년시대의 임박한 개방 2(마 24: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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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948 2012.05.2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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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8]새천년시대의 임박한 개방 2(마 24:29-51)

새천년시대: 재림의 지연

마태복음 24-25장의 새천년시대의 임박한 임재에 관한 감람산 설교와 5-7장의 새천년시대의 입문에 관한 산상설교는 중심축인 13장의 천국비유설교 좌우에 배치된 대칭의 짝인 것이 분명하지만, 24장의 설교는 5-7장의 산상설교보다는 오히려 10장의 파송설교와 겹치는 부분이 더 많다.

마태는 주후 26-30년에 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반세기가 지난 70-80년대에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야기를 예수님 당대에 국한시키지 않고, 반세기가 지난 초기 교회시대와 더 먼 미래시대에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민중에게 들려주신 말씀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들이 된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예수님 당대에 국한시키려 들면 안 된다. 마태뿐 아니라 다른 복음서 저자들 역시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사건들과 말씀들을 가지고 반세기가 지난 초기 교회시대의 성도들에게 더 나아가 전 교회시대의 성도들에게 교훈하려고 했던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복음서에는 예수님 시대의 이야기들과 정황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들의 시대의 이야기들과 정황도 겹쳐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 교회가 없었던 때이지만, 복음서가 기록되던 때에는 교회들이 많았고 또 그 교회들을 위해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야기들 속에 저자시대의 교회들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그것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들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검토되어야할 부분이다.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기에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주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동안에 교회들은 박해와 이단의 침투에 직면해 있었고, 그로인해서 배교자들이 속출하였으며,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육과 교직제도와 치리와 권징의 문제들이 부상되었다. 신약성경은 모두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할 필요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복음서조차도 이런 필요성에 때문에 기록되었다고 봐야한다.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처럼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은 기록당시의 필요성 때문에 기록된 것이므로 기록당시의 정황 한 가지만 존재하지만, 복음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후대의 발전하고 있는 교회들을 위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 시대와 정황들이 병존하게 된다.

지연된 재림에 대한 신약성경의 설명은 주의 재림이 있기까지 교회시대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자마자 곧바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40년간 광야교회시대를 거쳤던 것처럼, 주의 재림과 세상 끝이 있기까지 장기간의 성령시대, 은혜시대, 선교시대, 교회시대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장기간에 교회들은 자주 환난들에 직면할 것이므로 예수님이 특정시기의 환난을 못 박아 예언하셨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박해가 아무리 극심하고 환난이 커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을 받지 말고 인내로써 믿음을 신실하게 지켜야할 이유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과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이 성도들을 불러 모울 그날이 멀지 않기 때문이며, 또 그때까지는 아직 종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천년시대: 재림의 시기

29절 “그 날 환난 후에”의 “그 날”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그 날들의”란 복수 소유격이며 앞에서 언급된 날들의 환난을 뜻한다. 이 환난을 역사의 어느 특정시기로 볼 수 없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밝힌바 있다. 참고로 계시록 20장 1-6절을 근거로 역사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주님의 지상 재림직전에 칠년간 대환난이 있을 것과 주님의 지상 재림직후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문자적으로 천년간 새 하늘과 새 땅이 출현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 또 인류역사를 일곱시대로 구분하는 신학자들은 교회시대직후에 주님의 공중재림과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고, 곧 바로 칠년간 대환난이 시작되며, 대환난직후에 주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시어 천년간 왕국을 여시는데, 이 왕국이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희망했던 다윗왕국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 전천년설 주장자들은 “그 날 환난 후에”를 칠년대환난후로 해석한다. 그러나 칠년대환난은 성경이 명시하지 아니한 자의적 해석일 뿐이다. 24장은 칠년대환난이 아니라 66-73년의 유대-로마전쟁과 64-68년의 네로박해에 대한 암시에 더 가깝고, 그조차도 인자의 재림이나 세상의 끝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 날 환난”을 역사의 어느 특정한 시기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긴 역사 또는 교회시대에서 일어날 환난들로 볼 필요가 있다.

그 날들의 환난들은 재림이 지연되고 교회시대가 길어지면서 겪게 되는 것들이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되다가 재림의 때에 끝나는 것들이다. 또 주님의 임재가 역사의 어느 특정한 시기 또 그 시기를 살던 사람들에게만 임하는 사건이 아니다. 비록 성도들은 이 땅에서 많은 환난을 겪고 또 죽지만, 영으로 부활하여 낙원천국에서 주님의 임재를 맞게 될 것이고, 또 주님의 지상재림의 때에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의 재림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파멸과 통곡의 날이 되지만, 성도들에게는 영광과 감격의 날이 된다(30절). 재림 때에 나타날 네 가지 징조들인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것”(29절)과 큰 나팔 소리를 내며 천사들이 와서 구원받은 자들을 사방에서 모우는 것(31절)은 유대묵시문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들로써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그들의 세계에 대한 최후심판과 성도들이 받을 구원과 보상에 대한 표현들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종말과 심판에 관한 8개의 비유들 가운데 첫 번째 비유이며, 시대의 징조들을 읽을 줄 알라는 교훈이다. 여기서 33절의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에서 “인자”는 헬라어로 ‘그가’ 또는 ‘그것’의 의역이다. 따라서 33절의 “인자”는 예수님일 수도 있고,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통칭하는 ‘그것’ 곧 새천년시대일 수도 있다. 만일 후자인 새천년시대가 옳다면, 34절의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주후 30년 오순절 날 성령님의 강림과 교회의 출범으로 이미 성취된 것이 된다. 그러나 전자가 옳다면, 33절의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와 34절의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주의 재림과 세상 끝이 임박했다는 것을 뜻한다.

새천년시대: 재림의 임박

34절의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10장 23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의 반복이다.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도 10장 22절,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의 반복이다.

마태복음이 기록된 것은 예수님이 이들 말씀을 하신지 반세기가 지난 다음이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에서 “이 세대”는 예수님시대로 추정된다. 그런데 마태복음이 기록될 당시에는 예수님의 “이 세대”가 과거 세대가 되어버렸으니까, 34절의 말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말씀대로 앞에서 언급하신 일들이 수십 년 전에 벌써 성취됐어야 한다. 만약 그랬더라면 또 그렇게 이해되었더라면, 인자의 재림과 세상 끝이 벌써 도래했을 것이므로 마태복음을 비롯한 다른 복음서들이 기록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세대”는 지속되었고, 마태와 다른 복음서 저자들도 복음서들의 기록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인자의 재림은 지연되고 있었고, 아직 세상 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마태는 왜 34절의 말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는 재림의 임박과 세상 끝에 대해 오해할법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소개하였는가? “이 세대”란 과연 무엇인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직면하고 있는 세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여 있는 지속적인 역사적 현재 세대를 말하고자한 것은 아닌가? 주의 재림이전까지의 교회시대를 말하고자한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복음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제한되지 않고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민중에게 들려주신 말씀들은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들이 된다. 그렇더라도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마태는 24-25장에서 8개의 종말과 심판에 관한 비유로 재림의 임박을 경고하였다. 이들 비유에서 예수님이 주신 중요한 팁은 36절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이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섣불리 종말의 시기를 지정해서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예수님은 이미 23절에서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와 26절에서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한부종말론의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징조를 파악하라는 무화과나무비유에 이어서 노아 홍수 때의 사람들(37-39절), 밭 메는 자들(40절), 맷돌 가는 자들(41절), 주인의 청지기들(45-51절), 신랑을 맞으러간 열 처녀들(25:1-13), 주인의 달란트를 맡는 세 청지기들(25:14-30), 양과 염소무리(25:31-46)까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도적같이 임할 마지막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근신하며 날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함이었다(계 3:3). 예수님은 42-44절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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