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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42]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최후승리 3(마 26:3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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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478 2012.06.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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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42]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최후승리 3(마 26:31-75)

새천년시대: 공개적인 신앙고백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심문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신 대 수난은 유월절 날 하루에 다 벌어졌다. 이날은 금요일이었다. 예수님은 체포되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잡수셨다. 유대인의 유월절 식사는 18단계의 식사일 뿐 아니라, 찬양과 권면과 문답이 있고, 식사를 겸한 경건한 예식이어서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만찬이다. 만찬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까운 겟세마네 동산으로 이동하셨는데, 이 날은 춘분이 지난 첫 보름날 밤이고 달이 휘영청 밝게 뜬 날이어서 횃불이나 등불이 없어도 이동에 지장이 없는 밤이었다. 예수님은 이곳 동산에서 세 번에 걸쳐서 힘겨운 기도를 하셨고, 자기와의 싸움에 돌입하셨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번민과 괴로움을 눈치 채지 못했고, 피곤한 육신을 가누지 못해서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은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기까지 박해자들 앞에서 담대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이 기도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체포되신 즉시 밤새도록 여섯 차례, 곧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각각 한 번, 공회원들 앞에서 한번, 헤롯 안디바에게 한번 그리고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심문받으시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동요되지 않으시고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지키시며 심문자들이 오히려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게 하셨다. 베드로 역시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에 대제사장들의 하속들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세 번 심문을 받고 세 번 모두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신한 것은 졸음에 빠져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여섯 차례의 심문은 베드로보다 두 배인 여섯 차례 하나님의 뜻을 배신할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삶의 미련들을 모두 극복하신 반면, 베드로는 세 번 모두 굴복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공적생애출범을 앞두고 금식기도 후 마귀로부터 세 가지 시험(심문)을 받으신 것,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 기도하신 후 심문받으신 것, 베드로가 세 번 심문받고 세 번 다 배신한 것에는 당대의 삼심제도(三審制度)라는 관행이 숨겨 있다. 베드로가 세 차례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박해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금의 터키 지역인 비두니아(Bithynia)에 111년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플리니(Pliny the Younger)는 체포된 기독교인들에게 세 차례 배교할 기회를 준 후에 그래도 계속해서 신앙을 고집하면 처형토록 하였다.

초기 기독교시대에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침례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세 번의 신앙고백과 세 번의 침례를 주었다. 이 당시 침례는 물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졌고 박해시대여서 위험한 일이었다. 믿음이야 발설치 않으면 남이 알 수 없지만, 침례는 그 믿음을 공개하는 것이므로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었다. 침례를 받는 자들은 먼저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첫 번째 침수를, “나는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두 번째 침수를,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 세 번째 침수를 받았다. 이 세 차례의 신앙선언과 침수세례는 박해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자주 직면했던 세 차례의 배교선언과 무관하지 않았다.

새천년시대: 닭이 울다

74절을 보면,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 “곧 닭이 울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닭이 울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심문을 당하신지가 벌써 네다섯 시간이나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새벽이 되고서야 비로소 대제사장들이 공회원들을 소집할 수 있었고, 예수님의 문제가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로마제국 당시 고관대작의 집들은 대개가 이층집이고, 집 가운데에 뜰이 있었다.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는 뜰에 있었고 예수님은 이층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는데, 마가복음 14장 66절에 보면,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 22장 61절을 보면,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로 되어 있다. 이것은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여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래 뜰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다 지켜볼 수 있도록 이층 난간 쪽에 세워놓고 심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들의 다그침에 담대하게 답변하시던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교행위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아래 뜰에 있는 베드로를 연민의 눈빛으로 잠시 내려다보셨을 때에 때마침 닭이 울었고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미대 김병종 교수는 자신이 그린 <닭이 울다>(1988)란 그림에 다음과 같이 해설을 붙었다. “닭이 우는 시간은 통회와 고통 그리고 환희의 시간이다.” 배교와 수탉의 울음과 동녘에 밝아오는 여명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는데, 일본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다. 여기에 “멀리서 닭이 울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본부 유물전시관에는 다 닳은 성모상이 새겨진 작은 성화판이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1637년 일본 큐슈우 시마바라(島原)에서 농민들이 과중한 세금과 기독교금지에 반항하여, 16세의 소년 아마쿠사 시로오(天草四郞)를 대장삼아 난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때는 에도(도쿄)시대 3대 막부인 도쿠가와 이에미쯔 시대였는데, 시마바라 난을 진압한 후,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하여 이 성화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색출된 기독교인들을 ‘구멍 매달기’란 방법의 고문을 통해서 신앙을 포기토록 유도하였다. <침묵>에서 포르투갈 신부는 자기 때문에 농민신도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할 수 없어서 그들을 위해서 배교의 길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맑고 깨끗하며 인간의 이상과 꿈이라고 믿어온 자기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성화판에 발을 올려놓는다. 그때 멀리서 닭이 울었다.

수탉의 울음은 새천년시대의 전령의 외침이다. 그 외침에 눈을 뜨고 통회하는 자는 새 날을 맞게 된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신 이유이다. 수탉의 외침에 눈을 뜨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자만이, 온몸과 마음으로 침례를 받는 자만이 새천년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시점까지 어둠에 묻혀 있었다. 사랑하는 주님을 세 번씩이나 하찮은 사람들 앞에서 부인했던 졸장부였다. 그러나 그가 닭의 울음을 듣고 통회했을 때, 환희에 찬 새 날을 맞이할 수가 있었다.

새천년시대: 세상 죄를 지고

새천년시대를 앞둔 지난 2000년 12월 28일자 동아일보에 유대인들의 예수님의 처형이 과연 공정했는가를 오늘날의 형법체계로 살펴본 이정은 기자의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주후 30년 4월 7일 새벽, 메시아일 것으로 추정되는 30대중반의 젊은 예수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먼저 피고인 예수님에 대한 인정신문이 진행됐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갈릴리 사람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고, 나이는 30대중반이었다. 그는 가룟 유다의 고발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월절 밤에 체포되었다. 체포영장 제시도, 진술거부권 등을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 고지도 없었다.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는 신성모독, 민중선동, 성전모독, 조세(租稅)거부, 자칭 메시아, 신성 참칭(僭稱)이었다. 검사석에는 70여명의 공회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변호인석은 비어 있었다. 국선 변호인도 선임되지 않았다.

공소장의 혐의는 대부분 오해와 거짓증인들의 거짓주장에서 비롯되었다. 빌라도 총독은 고민에 빠졌다. 예수님의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께 호의적인 의사를 표명했을 때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로마에 보고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실제로 빌라도는 6년 후인 주후 36년에 로마황제로부터 유배를 당했다.

증인들 몇 사람이 법정에 섰다. 이들은 “예수가 가이사(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못하도록 했다”고 거짓으로 증언하였다. 공회원들은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혐의는 종교국가가 아닌 로마에서는 중죄(重罪)에 해당되지 않았다. 빌라도는 “채찍 몇 대의 형을 선고 하겠다”며 일어섰다. 대제사장들이 발끈하며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였다.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사칭한 혐의를 추가하겠다는 것이었다. 로마에서 왕을 사칭한 죄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죄였다. 재판장이 선고를 망설이자 유대 방청객들이 난폭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라”며 아우성쳤다. 이성을 잃은 방청객들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던 빌라도는 결국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처형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과연 예수님은 유죄였는가?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게 된 것은 그분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메시아의 등장을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권력욕심과 민중의 세속욕망 때문이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억지혐의 적용, 법적절차를 무시한 재판진행은 이들 민관합동 마녀사냥에 휘둘린 빌라도 총독의 무리한 판결 때문이었다. 뒤늦게 이를 바로잡아보려는 노력이 한 차례 시도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후 신학자들이 이스라엘 대법원에 예수님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던 것이다. 그들은 “유대민족이 그동안 주권적인 사법기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재판을 따져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잘못된 재판을 다시 심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법원은 “소송기록이 없고 신약에 단편적인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라는 이유로 재심청구를 각하하였다.

예수님이 죄도 없이 권력욕에 찬 기득권층과 우매한 민중에 휘둘러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은 인류를 죄에서 해방하기 위해서 유월절 희생양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되었다. 예수님은 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기꺼이 십자가의 가시밭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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