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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9]바울의 반천련(롬 1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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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923 2011.08.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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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9]바울의 반천련(롬 16:1-27)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사비에르가 1549년 8월 15일 일본에 입국한지 50년이 지난 박해 당시에는 기독교인이 5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당시 일본인들은 기독교인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신부들을 반천련(伴天連)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천국까지 동행하는 무리’란 뜻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7월에 반천련들은 20일 이내에 일본을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린바 있다. 로마서 16장은 바울에게 천국까지 동행하는 동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보여주는 로마서 마지막 장이다. 그들 중에는 남성도 있었고, 여성도 있었으며, 친척도 있었고, 공무원도 있었다. 특별히 가죽세공업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있었다.

바울을 말하지 않고서는 기독교를 말할 수 없으리만큼 그의 선교사역과 가르침은 일세기 중엽 지중해 연안의 전 유럽을 발칵 뒤집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바울은 시리아, 키프로스,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전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였고,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옥같은 13편의 서신들을 남겼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적인 섬김과 사역이 없었다면,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이 과연 가능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들 부부 이외에도 디모데, 디도, 실라, 마가, 누가, 에바브로와 같은 많은 동역자들이 바울을 도와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해서 사역하였지만, 성경에 나타난 가장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 부부는 아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이상의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 종교개혁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인 1549년에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사비에르가 오다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일본에 입국하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불교의 힘을 꺾기 위해서 20년 후인 1569년에 기독교 포교를 공인했다. 후계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기독교에 호의적이었으나, 1587년에 돌연 선교사들의 추방령을 내렸다. 히데요시는 선교사 추방령을 선포한지 5년만인 1592년,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 올해처럼 임진년에 7년간의 조일전쟁을 일으켰다. 임진왜란이 실패로 끝내자, 히데요시는 그 분풀이로 죽기 1년 전인 1597년에 기독교를 탄압하였다. 이후 에도막부정권이 들어섰지만, 기독교 박해는 그 후로도 4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기독교인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신부들을 반천련(伴天連)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천국을 동행하는 동무’란 뜻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천국을 동행하는 동무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무리들이다. 로마서 16장은 바울에게 천국까지 동행하는 동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보여준다. 그들 중에는 남성도 있었고, 여성도 있었으며, 친척도 있었고, 공무원도 있었다. 가죽세공업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있었다. 인종이나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었다. 바울의 선교사역의 성공은 전적으로 이들 동무들의 협동과 섬김이 있어서 가능하였다. >>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처음 만난 곳은 제2차 선교여행 중이었던 주후 51년 경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아가야 지역의 대도시 고린도에서였다(행 18:1-2, 26).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 중에 터키지역에서 박해와 고난을 무릅쓰고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딤후 3:10-11, 행 14장, 갈 4:13-15). 바울이 고백한대로, 성도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만큼 심각한 신체적 결함이 있었는데, 그의 신체적 장애가 바로 이곳 터키에서 받은 박해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이 지방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로 몰매를 맞고 죽었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이 도시가 바로 디모데의 고향이자 남 갈라디아에 있었다. 이 지방에 사는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 4:13-14). 이 말씀은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이 바울에게 육체적인 시험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눈물겹도록 사랑했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방에서 바울은 결코 정착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의 박해가 겉으로 나타난 이유였지만,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 제2차 유럽선교 때부터는 큰 어려움 없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그 지방에서 유력한 동역자를 찾지 못한 것이 바울 일행이 터키 지방에 정착하지 못한 숨겨진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천막을 만드는 가죽 세공업자였다(행 18:3). 바울의 직업도 천막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곧바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바울 일행은 이들 부부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고린도에서 18개월간 장기 체류하게 되었다. 경제적인 안정기반과 신체적인 보호는 바울 일행으로 하여금 고린도 전체에 힘써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동역자가 되는 것은 결코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성령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개입되어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로마에서 살다가 주후 49년경에 고린도로 추방되어 온 사람들이다. 아굴라는 흑해에 가까운 터키 북부 본도지역 출신의 유대인이었지만,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상류계층의 귀부인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브리스길라의 영향력이다. 가부장제도의 전통을 깨고 여성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성인 아굴라의 이름보다 앞에 나오는 경우가 총 여섯 번 가운데 네 번이나 된다. 성경에 보면, 동생의 이름이 형들의 이름보다 언제나 앞에 놓여서 형과 동생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셈과 함과 야벳,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 이삭과 이스마엘, 모세와 아론이다. 셈은 함과 야벳의 동생이고, 아브라함은 나홀과 하란의 동생이며, 이삭은 이스마엘의 동생이고, 모세는 아론의 동생이지만, 이 동생들의 영향력 때문에 형들보다도 그들의 이름이 언제나 앞에 온다. 마찬가지로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남편인 아굴라보다 앞에 쓰인 경우가 많은 것은 브리스길라의 영향력이 아굴라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기 때문이다. 이때쯤에 바울 일행은 터키 동북부지역인 흑해남단의 비두니아(Bithynia)지역에서 제2차 선교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성령님께서 이를 허락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밤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는 환상을 보여 줌으로써 유럽선교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해주셨고, 그들과 함께 18개월 동안 사역하게 하셨으며, 그 후로도 계속해서 협동사역자로 동역하게 하여주셨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서 18개월의 제2차 선교사역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 다음 선교지역을 터키해안지방에 위치한 종교도시 에베소로 결정하고 선교단 전원이 고린도를 떠났다. 이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로 이주했고, 바울과 다른 동역자들은 바울의 파송교회인 안디옥교회와 사도들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차례대로 방문하였다. 그러고 나서 에베소로 가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합류하였다. 고린도를 떠나서 에베소에 도착하는데 2년은 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서 2년 남직한 이 기간에 선교기반을 닦고 있었고, 바울 일행이 도착하면 언제라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수년 전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 일행보다 2년 남직 먼저 고린도에 이주해서 정착하고 있었다. 바울이 가는 곳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먼저 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적인 선교사역의 배후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 체류한 것은 2년 3개월 동안이었다. 이 기간 동안 제3차 선교를 성공리에 마친 바울은 이제 로마와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행 18:18이하; 고전 16:19). 그런데 로마서 16장 3-4절을 보면, 바울의 다음 선교지인 로마에 이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먼저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린도에서도 그랬고, 에베소에서도 그랬고, 로마에서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보다 먼저 다음 선교지에 가 있는 것을 본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업가로서(행 18:3), 전도자로서(행 18:26), 바울의 동역자로서(3절), 혹은 주의 종 바울을 목숨 바쳐 섬긴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4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 봉사하였으며, 그들의 집을 사업장으로, 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로, 교회로(4절, 고전 16:19), 혹은 선교사들의 합숙소로 제공하였고, 바울의 말년에는 이들 부부가 에베소교회를 직접 맡아 사역하기도 했다(딤후 4:19). 또 로마서 16장 4절에 기록된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한다.”는 바울의 고백으로 보아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헌신적으로 바울을 도운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의 배후에는 헌신적인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었고, 디모데와 디도와 같은 동역자들이 많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혼자의 힘만으로 또는 몇 사람의 힘만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는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봉사와 헌금으로 이루어진다. 목사의 설교만으로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휘자의 노력만으로 성가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도사의 힘만으로 주일학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는 많은 일꾼들의 기도와 참여와 봉사와 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두가 협동 사역하는 동역자라는 마음으로 각자가 맡은 직분과 부서에서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봉사자가 되어야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훌륭했던 것은 그들이 스타 같은 바울, 영웅 같은 바울을 우상처럼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는 보잘것없지만,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주의 종 바울을 도왔기 때문이다. 바울은 흔히 생각되어지는 것처럼 마술사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문벌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많이 배웠다는 것 말고는 인간적으로 남 앞에 내놓을게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바울에게는 “사탄의 사자”라고도 하고, “육체의 가시”라고도 하는 신체적 장애가 있었는데, 이는 그의 선교사역에 아주 치명적인 장애요인이었다. 바울의 외모 또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못생긴 인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체구는 작았고, 양미간은 맞닿았으며, 약간 매부리코와 대머리에다 다리까지 오자로 휜 사람이었다. 바울은 언변도 그리 좋지 못했다. 바울은 지혜가 충만하고 말씀의 능력은 살아있었지만, 결코 능변가가 아니었다.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의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괴롭게 하는 대적자들이 있었다. 그들에 비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대다수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처럼, 헌신적으로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에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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