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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03]새천년시대를 향한 출발(마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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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003 2012.01.1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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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03]새천년시대를 향한 출발(마 2:1-23)

‘메시아의 별’의 출현

유대인들은 주전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주전 605년에 다니엘이, 주전 597년에는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갔고, 주전 586년에는 유다왕국이 완전히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600년이 지난 2000여 년 전 유대인들이 그토록 희망하고 기다렸던 메시아가 출현할 징조가 하늘에 보였다. “그의 별,” 즉 다윗의 별이 하늘에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펼쳐진 그 징조를 알아챈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근동지방에 흩여져 살았던 유대인들의 후손들로서 천문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출현한 별의 특이사항을 연구하였고, 그 별이 바로 유대인들이 자자손손 기다렸던 메시아출현의 전조란 것을 알았으며, 즉시 태어난 메시아를 뵈려고 긴 여행길에 나선 자들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먼저 헤롯궁을 찾은 것은 태어날 아기가 왕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마태는 여기서 유대인들의 예상과 하나님의 계획사이에 큰 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현한 메시아가 유대인들이 예상했고 희망했던 메시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유대 땅을 통치하는 왕이 이미 있는데, 자기 씨가 아닌 다른 씨의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래서 헤롯궁전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유대인 학자들이 소환되고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에 답해야 했다.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예루살렘 헤롯궁전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베들레헴이란 것이 밝혀졌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불러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아기를 찾거든 돌아와 보고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동방박사들은 아기를 발견했고, 엎드려 경배하였으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다. 하나님의 천사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꿈에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도록 지시했고, 요셉에게도 나타나 급히 이집트로 피신하도록 지시했어야했다. 아기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는 헤롯이 죽은 주전 4년 봄까지 1-2년 정도 이집트에 머물러야했으며, 그 후에 갈릴리지방 나사렛에 가서 정착하였다. 아마 동방박사들이 선물로 바친 예물들이 비용충당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헤롯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내버려두면 장차 자신과 가문의 왕위를 위협하게 될 싹을 미리 제거해야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불러 즉시 동방박사들을 뒤따르게 하였고, 한 두 살 된 사내아기들이 있는 집들을 파악하게 하였을 것이다. 상황의 위급함을 깨닫고 동방박사들과 예수님의 가족이 민첩하게 피신한 반면, 그들의 행적을 놓친 헤롯은 분노하며 두 살 아래의 사내아기들을 모두 살해토록 하였다.

마태는 모세가 바로왕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한 후에 첫 번 유월절 때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제1차 대구원사건을 그림자로 이해하면서 헤롯의 칼날을 피한 예수님이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킬 제2차 대구원사건을 예측하도록 하였다. 예수님이 출생한 시기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주전 5년 3-4월 유월절 시기로 봐야한다는 것이 천문학자 마크 키저(Mark Kidger)의 주장이며, 다른 천문학자들도 역시 유월절 시기로 본다. 예수님의 탄생목적과 사명이 인류구원에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메시아의 별’을 따른 사막여행

마태복음 2장은 ‘메시아의 별’을 찾아서 혹은 새천년시대를 향한 희망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연상해 볼 수도 있다.

마태복음 2장에서 네 종류의 사람들이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길을 떠난 이는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오랜 계획에 따라서 예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길 떠날 채비를 하셨고, 높고 높은 하늘나라에서 낮고 낮은 이 땅에로, 그것도 가장 낮고 천한 외양간에로 떠나오신 것이다. 두 번째로 길을 떠난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이다. 그들은 지금의 이라크나 이란에서 출발한 학자들이다. 그들이 먼 길을 떠난 목적은 새천년시대의 희망인 메시아를 찾아 뵈옵기 위한 것이었다. 세 번째로 길을 떠난 이들은 바로 요셉과 마리아이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황명에 따라 호적에 등기하려고 북쪽 갈릴리를 떠나 남쪽 베들레헴까지 여행한 갓 결혼한 부부였고, 마리아는 이미 만삭의 몸이었다. 네 번째는 헤롯이 보낸 군인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에로 여행하였다. 그들은 가장 늦게 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떠나온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베들레헴을 찾은 목적은 갓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였을 때 예수님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헤롯의 군인들은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었다. 이렇듯 이들 네 종류의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떠나온 곳은 달랐어도 도착한 곳은 동일하였다. 바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계신 베들레헴이었다. 예수님을 모셔 받들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그 얼굴의 광채를 보았으며, 새천년시대의 희망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해서는 안 될 못쓸 살인을 저질렀다. 예수님을 찾는 목적에 따라서 그 결과가 하늘과 땅이 먼 것처럼 격차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이토록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출발지점과 시간은 각기 달라도 언젠가는 다 같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심대한 격차를 보게 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격차는 우리가 길을 떠난 후 가까운 미래에 맞닥뜨려야할 운명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2장은 우리들에게 동방박사들처럼 옳은 목적과 출발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헤롯과 그의 군인들처럼 잘못된 목적과 출발을 해야 할 것인지를 숙고하도록 촉구한다.

희망을 찾던 동방의 박사들은 특이한 별을 발견하였고, 그 별이 희망의 표지란 것을 직감하였다. 그들은 희망의 별을 따라나설 준비를 갖췄다. 비용을 마련하고, 여러 주일 먹을 식량과 마실 물을 준비하였다. 선물도 마련하고, 낙타도 구입하였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긴 여행에 따른 위험도 각오하였다. 바보들이나 하는 무모한 짓이란 비난도 감수하였다. 단호한 결단과 노력이 있었기에 그들은 새천년시대를 활짝 여실 아기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행적은 성경에 기록되어 2천년 넘게 칭송되고 있다. 매년 성탄절이면 카드에 어김없이 그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메시아의 별’을 따른 바다여행

작고한 이윤기의 작품, <그리스 로마 신화: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이 2010년 10월 15일 유고(遺稿) 작으로 출판되어 서점에 나왔다. 이 책의 내용은 영웅 ‘이아손’(제이슨)이 콜키스 땅에 있는 금양모피(황금양의 가죽)를 찾는 과정에서 겪는 모험담이다. 콜키스는 일찍이 헬라인으로서는 누구도 가본 적이 없고,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머나먼 땅이었다. 그런데도 이아손은 이곳 미지의 땅으로 가기위해서 아르고 원정대를 꾸려서 험한 바다에 배를 띄웠다. 마태복음 2장으로 말하자면, 콜키스는 베들레헴이요, 금양모피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어린양 예수님이시다.

지중해에 배를 띄운 지 얼마 못되어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를 실은 배는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을 동서로 갈라놓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스탄불의 서쪽은 유럽, 동쪽은 아시아이다. 이 보스포루스 해협은 지중해에서 흑해로 혹은 흑해에서 지중해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신화에 의하면, 보스포루스 해협 입구에 두 개의 바위섬이 있었고, 이곳을 지나는 배는 반드시 이 두 개의 섬 사이를 통과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곳은 통과하는 배들을 십중팔구 싸늘한 역풍과 물보라로 휘감아 산산조각을 내고 마는 악명 높은 해협이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입구 좌우에 자리 잡은 이 두 개의 섬들은 배가 됐든, 새가 됐든, 무엇이었든 간에 그 사이에 들어온 것들을 향해서 양쪽, 즉 동과 서에서 부딪쳐 오는 쉼플레가데스, 일명 충돌하는 바위섬들이었다. 인간들이 그들의 힘과 용기와 지혜로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바닷길로 나가지 못하고 연자 맷돌에 들어간 낱알처럼 뭉개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아손이 영웅인 까닭은 그가 그의 원정대를 이끌고 이 협로를 무사히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와 그의 원정대는 흑해를 지나 금양모피가 있다는 콜키스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충돌하는 바위섬들을 지나 콜키스 땅에 도착한 이아손은 또 다시 세 가지 큰 난관에 부딪쳤지만, 그것들을 모두 극복하고 결국 금양모피를 손에 넣었다. 이 과정에서 이아손은 풍랑도 만났고 암초도 만났다. 높은 산도 넘고 물도 건넜다. 금양모피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했던 과제들에 직면하기도 했었다. 그가 맞닥뜨렸던 이 모든 장애물들은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들일는지도 모른다. 우리 앞을 흑해가 가로막고 있고, 충돌하는 바위섬인 쉼플레가데스가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들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험난한 검은 바다 흑해와 역풍과 물보라를 내품는 쉼플레가데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쉼플레가데스를 통과해야하고, 우리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 출발도 하지 않고, 모험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금양모피라는 희망을 손에 넣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넘어야할 산과 바다는 험악할 수 있고, 우리가 건너야할 강은 거센 물살일 수 있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을 좇아 길을 떠났던 동방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별을 보고 원정대를 꾸려 먼 길을 떠났던 그들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맞서야 했고, 강도들의 위협과 맞서야 했으며, 임시 텐트에서 추운 밤을 보내야 했고, 수주나 걸리는 머나 먼 이국땅을 향하는 길을 낙타 등에 의지해야 했다. 그 결과 그들은 별이 가리킨 갓 태어난 희망, 곧 인류의 희망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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