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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04]새천년시대의 선구자(마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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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207 2012.01.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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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04]새천년시대의 선구자(마 3:1-17)

“이미”와 “아직”의 긴장 조절

오늘의 현실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까지도 온통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한 상황들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벼랑 끝 위기를 벗어나게 할 날개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이카루스의 날개이야기가 나온다. 이카루스의 아버지 데이달루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영감을 받은 대단한 발명가이자 건축가였다. 그러던 그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톱을 발명하여 자기보다 더 유명해진 조카를 신전위에서 밀어뜨려 죽었다. 그 죗값으로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크레타 섬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날개였다. 이카루스가 유명해진 것은 그가 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게 되자, 목적지를 향해 날기보다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한 채, 건방지게 태양을 향해 날다가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기 때문이었다. 데이달루스와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벨레로폰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신(神)에 대한 믿음과 오만에 대한 응보를 다룬 신화이다. 벨레로폰도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도움으로 하늘을 나는 말 페가수스를 얻어 타고 유럽의 용인 키마이라를 물리쳤지만, 오만 때문에 하늘에서 추락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벼랑 끝 위기에 몰릴 때 필요한 것은 지혜의 신(神)께, 즉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여 날개를 얻는 것이지만, 날개를 얻어 하늘을 날게 된 다음에도 날개를 구하던 “처음처럼” 경건한 믿음을 변치 말아야 한다는 그리스-로마식 교훈이다.

아무튼 우리는 몸에 날개를 달아야 벼랑 끝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와 마태 사도는 그 날개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고 선포하였다. 하나님이 임재(파루시아)하여 머무시는 땅(여호와삼마)이 새천년왕국이요, 하나님이 임재(파루시아)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임마누엘) 시대가 새천년시대이다. 임마누엘의 날개를 우리가 몸에 달고 날아가야 할 곳이 바로 이 새천년왕국시대이다.

유대인들은 이 새천년왕국시대를 “올람 하바”라고 부르는데,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들이 원하는 제2의 모세, 즉 모쉬아크(Moshiach)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그가 출현해야만 제2의 가나안 땅의 시대가 개방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시대가 문자적으로 개방된다고 믿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의 재림 직후 전개될 천년왕국이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올람 하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아로 믿는다. 그러나 새천년왕국시대가 무엇인지, 그 때인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눠져 있다. 예수님의 왕국인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의 임시 거처인 낙원이 새천년왕국시대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교회시대인 현시대가 새천년왕국시대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야만 새천년왕국시대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현실세계에 실망했거나 좌절한 사람들, 그리고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면서 현실세계를 뜯어고치거나 탈바꿈시키기를 원하는 개혁가나 혁명가들은 대개가 이 주장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미” 도래했다와 “아직” 오지 않았다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고,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현실과 이상(理想)사이의 긴장이다. 이 긴장의 조절이 새천년왕국시대를 앞당기는 열쇠이다.

새천년시대를 얻기 위한 SOS

예수님이 태어나신 2천 년 전 지중해 세계는 로마제국이 호령하던 때였고, 예루살렘의 멸망이 코앞에 있던 때였다. 로마에서는 공화정이 몰락하고, 초대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던 때였다. 정치적으로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처럼, 이해득실에 따라 '합종연행'(合縱連橫)과 줄 갈아타기가 성행했고, 속임수와 중상과 모략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유포하는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를 보던 때였다. 당대에는 신문이나 방송이 없었으므로 벽에 그리는 그림낙서를 통해서 비방선전이 이뤄졌고, 정적을 제거하는 청부암살도 많았다. 성적인 타락 또한 극에 달했다. 근친상간, 동성애, 매춘이 성행했고, 여성들도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라면 남편이나 연인 갈아타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끊임없는 전쟁으로 서민들의 삶이 피폐했다. 민중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으로 인해서 생긴 수많은 노예들이 시중에서 짐승처럼 매매되었으며, 주인들에게 학대를 받았고, 투기장에 끌려 나가 많은 사람들의 오락꺼리가 되기도 하였다.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던 때였다. 종교적으로는 신화에 바탕을 두고 3만이 넘는 잡신들을 섬겼다. 사실 이들 신(神)들은 모두가 사물의 이름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액면 그대로 벼랑 끝 삶이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유대 땅은 이미 600년 가까이 강대국들에 유린을 당하고 있었다. 헬라로부터 독립하여 100년간 유대인 하스몬왕가가 통치했었지만, 그마저도 주전 64년에 로마제국의 손에 넘어가 로마가 임명한 왕이나 총독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가난한 유대인들은 성전세와 인두세가 버거운 짐이었고, 세리들의 착취와 부패도 심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고 했듯이 서민들의 삶은 심히 고단하였다. 비록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율법(토라)을 소유한 심히 종교적인 민족이었다 할지라도, 그들 상당수는 율법의 본질에서 벗어나 외식에 치우쳤고, 그들의 지나친 선민의식과 민족주의가 그들의 종말을 재촉하던 때였다. 그 결과가 주후 70년에 현실로 나타났다. 액면 그대로 벼랑 끝 삶이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하듯이,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이 절박한 시기에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그늘에 앉은 백성에게 날개가 되시기 위해서 또 그들을 벼랑 끝에서 구원하여 새천년시대로 옮기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시려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오셨다. 이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빼앗긴 것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보상을 받게 될 것이며,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였다(사 61:1-7). 예수님께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조난신호 SOS (Save Our Souls)를 보내는 자들은 구원의 날개를 얻고 활짝 열린 새천년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새천년시대의 선구자

구원의 필요성을 아는 자만이 조난신호를 보낼 수 있다. 시대를 읽는 선각자만이 새천년시대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 마태복음 3장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은 새천년시대의 선구자였다. 새천년시대를 개방하실 예수님의 등장을 예견하고, 스스로 유대광야에 나아가 외치는 자가 되었다. 새천년시대를 활짝 여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외쳤다. 날개를 얻어 새천년시대에 안착하려면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이 오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길을 닦으라고 외쳤다. 회개하라고 외쳤다. 밤을 깨우기 위해서 닭이 울듯이, 통회하는 고통의 시간이 없다면, 환희의 기쁨도, 동녘의 붉은 태양도 없다고 외쳤다. 지금은 결단의 시간이니, 벼랑 끝에서 추락하든지, 날개를 얻어 날든지 한 가지를 택하라고 외쳤다. 심판의 도끼가 이미 손에 들렸고, 쭉정이를 까불 키가 이미 손에 들렸다고 외쳤다. 이 외침이 바로 새천년시대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외침이었다.

새천년시대의 선구자들은 대개가 세례 요한처럼 메시아가 오셔서 개방할 새 시대를 희망하였다. 새 시대와 세계를 희망하는 자들은 대개가 그랬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한국의 민주화운동처럼 성공한 운동도 있었고, 태평천국난이나 동학혁명처럼 실패한 운동도 있었다. 19세기 초에 미국 동부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은 성공적인 새천년왕국시대의 운동들 가운데 하나로 역사에 자리매김이 되었다.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과 발톤 스톤(Barton W. Stone)은 임박한 그리스도의 교회 시대의 개방을 바라보면서 새천년시대의 선구자(millennial harbinger) 또는 그리스도인 메신저(Christian messenger)를 자처하였다. 그들은 신약성경교회로 온전히 회복된 그리스도의 교회들의 시대를 새천년시대로 보았으며, 그들의 선교목표는 그리스도의 교회 시대의 개방을 알리고 앞당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천년왕국시대에는 비성경적인 관행들, 즉 교회를 분열시키는 당파심과 인간을 착취하는 노예제도와 교회에 군림하는 교권제도와 같은 범죄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발톤 스톤은 “의로운 심판의 날은 가까웠다. -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흠과 점이 없이 발견될 수 있도록, 육체와 영혼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너희 자신들을 깨끗이 씻음으로써 그날을 준비하라.”고 외쳤다.

캠벨과 스톤과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을 펼쳤던 선구자들은 기독교를 그것 본래의 순수함과 능력에로 회복시키는 것이 새천년왕국시대를 개방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례 요한처럼 선구자들로 택하시고 부르셨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이 확신 속에서 개혁운동, 곧 신약성경교회(사도전통)회복운동을 펼쳤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거룩한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새천년왕국시대는 이미 이 땅에 출범했을 수도 있고,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미 출범했더라도 그것은 영적인 의미일 뿐, 완전하고 문자적인 출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영적인 출범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완전하고 문자적인 새천년왕국시대의 개방을 위한 선구자적 삶을 살게 하기위한 힘(momentum)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새천년왕국시대를 개방하기 위한 선구자의 삶을 세례 요한처럼 살아야 한다.

<선구자는 새끼 새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어 날갯짓을 유도하는 어미 새와 같다. 높은 벼랑 끝에 선 자는 떨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날수만 있다면, 건너편에 펼쳐진 너른 벌판에 안착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높은 벼랑에 서본 자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떨어져 본 자만이 자기가 가진 믿음의 날개를 활짝 펼칠 수가 있다. 어미 새가 다 자란 새끼 새를 둥지 밖으로 밀쳐내는 것이나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고 둥지 밖 큰 나뭇가지로 부르는 이유는 제 새끼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종종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이유나 심지어 벼랑 끝으로 밀어내시는 까닭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임마누엘의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자들은 날개를 활짝 펼쳐야 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힘차게 날아야 한다.>

종종 저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주님,
당신을 향한 신뢰를 굳건하게 하옵소서.
어미 새가 부를 때 둥지 밖으로 나오는 새끼 새처럼
신뢰를 굳건하게 하옵소서.
임마누엘의 날개를 신뢰하게 하옵소서.

종종 저희를 벼랑 아래로 밀어내시는 하나님,
당신을 향한 믿음을 굳건하게 하옵소서.
어미 새를 믿고 둥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새끼 새처럼,
믿음을 굳건하게 하옵소서.
임마누엘의 날개를 믿게 하옵소서.

벼랑에 섰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보였고,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쳤을 때 보이지 않던 날개가 펴졌으며,
날개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확신을 굳건하게 하옵소서.
임마누엘의 날개를 확신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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