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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05]새천년시대 입문시험(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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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693 2012.01.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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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05]새천년시대 입문시험(마 4:1-11)

떠돌이 유대인(the Wandering Jew)

이문열의 소설 중에 <사람의 아들>이 있다. 이 소설에 유대인 아하스 페르츠가 등장한다. 아하스 페르츠에서 ‘아하스’는 17세기경 유럽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주전 5세기 중후반에 바사제국을 통치했던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Ahasuerus)에서 유래하였다. ‘페르츠’는 야곱의 아들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낳은 아들 베레스(창 38:29)와 동일한 이름이다. 아하스 페르츠에 얽힌 전설은 13세기 유럽에서 처음 나왔으며, 십자가를 진 예수님이 골고다로 향하던 중에 지쳐 쓰러진 곳이 아하스 페르츠의 집 앞이었는데, 잠시 쉬어가게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저주를 받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죽지 못하고 세상을 떠돈다는 인물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떠돌이 유대민족을 의인화한 것으로써,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떠돌이 유대인”(the Wandering Jew)이라 해야 알아듣는다.

마태복음 4장 1-11절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를 이문열은 그의 소설 <사람의 아들>에서 아하스 페르츠로 의인화하였다. 예수님과 문답을 나눈 자는 마귀가 아니라, 독립을 염원하는 유대인들이었다는 암시를 담았다. 따라서 마귀가 시험한 내용도 유대인들의 염원으로 이해하였다.

마태복음 4장 1-11절에서 마귀는 예수님께 세 가지를 요구하였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렇다면, 이 돌들로 빵이 되게 하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렇다면,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라. 그리고 전혀 다치지 않는 기적을 보여라.” “천하만국을 갖고 싶은가? 나에게 절해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 이 부분을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에서 아하스 페르츠의 입을 빌어 이렇게 바꿨다. “당신이 지금 배가 고프듯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 당신은 그들에게 빵을 줄 수 있는가?”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라면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라. 만일 당신이 다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당신을 메시아로 인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인 독립이다. 세상을 가지고 싶은가? 나에게는 남과 다른 식견이 있으니,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당신을 보좌하겠다. 그러면 우리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 다수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 세 가지, 즉 빵문제 해결, 메시아인 것을 입증할 위로부터 내리는 표적, 그리고 이스라엘국가의 회복이었다. 빵문제 해결은 곧바로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위로부터 내리는 표적이었다. 제1 대구원사건의 메시아였던 모세가 광야사막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게 하고, 반석의 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게 한 것을 생각하면 된다. 예수님께서 빈들 즉 광야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 유대인들이 흥분하여 예수님을 붙잡아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는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빵문제를 해결해줄 제2 대구원사건의 메시아인 제2의 모세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바라는 정치경제적인 메시아가 될 것을 거부했던 것처럼, 마태복음 4장에서도 예수님은 단호히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복음서들은 기독교인들이 희망하는 종교적인 영적인 새천년왕국이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정치경제적인 문자적인 새천년왕국과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하스 페르츠의 환멸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 나오는 문답내용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아하스 페르츠가 발 앞에 있는 돌덩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빵이오. 당신은 돌덩이를 빵으로 만들 수 있겠소? 다시는 저들이 빵이 모자라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으시오?"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은 빵으로 족하겠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소. 하나님의 은혜를 물질의 가치로 평가하려 하지 마시오."

"저들이 겪어 온 그 오랜 배고픔과 목마름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이오? 결핍과 갈구만이 저들 육신의 숙명이란 뜻이오?"

"영혼의 삶이 더 크기 때문이오. 당신이 아무리 그 귀중함을 과장한들 바람 앞의 겨와 같고 풀잎 위의 이슬 같은 육신의 삶이 저 영원한 참 생명에 비교될 수 있겠소? 게다가 약속하신 날이 가까이 왔소. 머지않아 주린 자는 채우게 될 것이고 목마른 자는 적시게 될 것이오."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경이 당신의 권능을 두고 한 말씀을 믿고 여기서 뛰어내려 보시오."

"성경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소. 당신이 네게 요구한 것은 곡예사나 술사(術士)들이 할 짓이요.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얕은 안목으로 저울질하지 마시오."

아하스 페르츠가 다시 탄식처럼 말했다. "그렇지만 증거 없이는 믿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고, 백번의 거룩한 말씀보다 단 한 번의 어쭙잖은 기적에 더 쏠리는 것이 인간이며, 미망과 방황의 세월을 울고 신음하며 더듬어 가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소?"

"물질과 기적에 의한 믿음과 순종은 참이 아니요. 오직 말씀과 사랑 속에서 불신과 회의를 이겨낸 사람만이 하늘나라로 인도될 것이오."

"하늘에 계신 그 분의 뜻을 이제 알 만하오. 그렇지만 지금 이 땅의 민중이 가장 고대하는 것은 정신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요. 가서 저들을 조직하고 무장시켜 옛 다윗의 영광을 재현토록 합시다. 나의 지혜와 당신의 권능을 합치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요. 먼저 저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내고, 이 땅의 권세부터 손에 넣읍시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소. 아니 그래야만 당신은 세상의 권세를 통해서 보다 쉽고 힘 있게 하늘에 계신 그분의 뜻을 저들에게 전할 수 있고 또 보다 확실하게 그 실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오."

"그분에게서 비롯되지 않으면 땅 위의 권세는 헛되지 않음이 없고, 그분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그 영화 또한 죄 되지 않음이 없소. 나는 이 세상을 구하러 온 것이지 다스리고 억누르러 온 것이 아니며, 저들의 죄와 고통을 덜어 주러 온 것이지 나 스스로 즐거움을 누리려고 온 것이 아니요. 지상의 권세와 쾌락은 순간이지만, 천상의 권능과 복락은 영원하오. 결국 당신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 그리고 땅 위의 어리석은 위세와 자랑으로 나를 유혹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 듯하오. 더는 나를 방해하지 말고 이만 물러나시오. 지금 당신을 부추기고 있는 그 악마의 가르침을 따라 사특한 지혜의 길이나 가시오. 이 순간도 진노의 철장(鐵杖)이 당신을 내려쳐 질그릇처럼 부수어 놓을까 두렵소."

가룟 유다의 환멸

예수님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아가 되기를 거부한 것은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부르기 때문이었다. 피를 흘리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해도 일시적일 뿐이지, 궁극적이고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을 채워줄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사랑의 메시아가 되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강력한 통치자가 아니라 민중의 영원한 반려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민중은 처음부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갖고 싶은 것만 갖고자 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현실문제에 어두운 무력하고 무능한 인간으로 비춰졌다. 예수님께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어설픈 혁명가였을 바라바를 놓으라고 외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제자들 가운데는 가룟 유다만이 예수님이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치기 위해서 민중의 기대를 저버린 채 분노의 불길 속에 몸을 던지려한다는 것을 알고 고뇌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마음은 정을 줬던 여인에게 환멸을 느껴 헤어지려 해도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사내의 마음과도 같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배신은 예수님께 환멸을 느낀 자들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하스 페르츠처럼 말했을 것이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가혹한 현실에 사랑의 하나님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랍비여, 당신은 사랑보다 큰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보다 지금 당장 효과가 있는 것을 원합니다. 현실에 쓸모 있는 것밖에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고통을 아셨다. 그분은 불의와 절망에 깊은 상처를 입은 민중과 함께 계셨고, 영원한 동반자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욕망의 신을 섬겼던 민중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이해하셨고, 용서하셨으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에 부디 사랑의 하나님이 좌정하시게 되기를 기도한다. 세속적인 메시아를 고대했던 민중이나 스승을 배신했던 제자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얻기를 원하는 것이 세속적인 욕망의 채움인지, 아니면 그분의 모성적인 사랑인지를 깊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인지, 아니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인지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현실에 필요한 표적만을 구하지만, 정작 그들이 겪는 가장 큰 불행은 표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을 베풀자가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밝힌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지 표적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당하셨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셨으며, 최후에는 그들의 대속(代贖)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여 드리기를 원하시는 나라는 일시적이고 허망하며 요동치고 흔들리는 세상왕국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과 평화의 나라 곧 하나님의 새천년왕국이다.

<사랑이 베풀어지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기적이 일어난다. 사람이 정말로 허기를 느끼는 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사랑의 굶주림이다. 사랑이 베풀어지는 곳에 배고픔은 사라진다. 사랑은 빈말과 빈손으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자기희생으로 베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본문 중에서

…… 잠시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아하스 페르츠가 문득 그들의 발 앞에 놓여 있는 돌덩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먼저 하나 묻겠소. 지금 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빵이오. 당신은 이 돌덩이를 빵으로 만들 수 있소? 다시는 저들이 빵이 모자라 고통 받는 일은 없도록 해줄 수 있으시오?」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소. 성서의 오랜 기록이니, 흙에서 빚어져 필경 흙으로 돌아갈 육신은 한 덩이 빵으로 기를 수 있지만, 내 아버지의 입김으로 불어 넣어져 그 분과 함께 영원할 영혼은 오직 그 분의 말씀으로만 살 것이기 때문이오. 내 아버지의 크고도 깊은 사랑을 단순한 물질적인 은혜로 끌어내리려 하지 마시오.」

「그렇소? 여전히 그 분의 뜻은 그러하오? 저들이 겪어온 그 오랜 배고픔과 목마름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이오? 결핍과 갈구만이 저들 육신의 영원한 숙명이란 뜻인가요? 그 육신이야말로 저들 존재의 가장 뚜렷한 증거이며, 영혼을 헛되이 떠도는 망령의 신세에서 구해주는 것, 하나하나로서는 덧없는 생사의 반복에서 헤어날 길이 없지만 전체로서는 저처럼 면면한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언만……」

「영혼의 삶이 더 크기 때문이오. 당신이 아무리 그 귀중함을 과장한들 바람 앞의 겨와 같고 풀입 위의 일슬 같은 육신의 삶이 저 영원한 참 생명에 비해 무엇이겠소? 거기다가 이제 약속의 날도 가까웠소. 머지않아 주린 자는 채우게 될 것이고 목마른 자는 적시게 될 것이오. 어찌 그들의 결핍과 그로 인한 고통이 영원일 수야 있겠소.」

「아, 그 가혹한 심판의 날 말인가요? 그날에 웃을 몇 안 되는 그 <의인(義人)들> 말인가요? 하나를 위해 아흔아홉이 불에 던져져야하는 그 재앙의 날에……」

탄식처럼 시작한 아하스 페르츠의 대꾸가 차츰 빈정거림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도 그 예사 아닌 만남이 시작부터 격렬한 논쟁으로 끝을 보기는 원하지 않았다. 아직 그에게는 그 육화한 신에게서 확인해야 할 일이 몇 가지 더 있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말다툼보다는 차라리 다음으로 넘어가겠소.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저들이 바라는 것을 가지고 왔는지 한 번 더 시험해 보고 싶소. 자, 나를 따라오시오」

무언가 반박하려는 예수를 그렇게 가로막은 아하스 페르츠는 그의 응낙을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아하스 페르츠가 예수를 인도해 간 곳은 그 바위산 한 기슭의 벼랑가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땅바닥까지는 아무리 가깝게 봐도 백 큐빗은 넘을 것 같았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 보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천사들을 시켜 너의 시중을 들게 하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이것은 성서가 당신의 권능을 두고 한 말이 아니오?」

「그러나 또한 성서에 기록되어 있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고. 당신이 내게 요구한 것은 세상의 곡예사며 잡된 귀신들의 재주를 보여주는 술사(術士)들이나 할 짓이오. 한 분이신 주(主) 하느님의 뜻을 사람의 얕은 안목으로 저울질하지 마시오.」

이번에도 예수는 미리 준비해 온 것처럼이나 한 번 망설이는 법도 없이 그렇게 대꾸했다. 아하스 페르츠가 다시 탄식처럼 말했다.

「내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당신의 답을 듣고 이번 물음의 답도 짐작은 했었소. 그렇지만 아아, 오관(五官)을 통한 증거 없이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너희들, 백(百)의 거룩한 말씀보다 단 한 번 어쭙잖은 기적에 더욱 기울어질 너희 인간의 맹목이여. 너희는 아직도 얼마나 긴 미망과 방황의 세월을 울고 신음하며 더듬어 가야 할 것인가……」

「물질적인 은혜로 산[買] 것과 마찬가지로 기적에 의해 강요된 것도 참된 믿음이나 순종이 아니기 때문이오. 오직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 속에서 인간적인 불신과 회의를 이겨낸 선택만이 저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할 수 있소.」

「하지만 그것은 의인 욥이나 선지자 요나에게서도 어렵지 않았소? 욥이 탄식과 불평을 멈춘 것은 하늘에 계신 그 분 스스로의 목소리를 폭풍 속에서 들은 뒤였고, 요나가 니느웨로 간 일도 큰 물고기 뱃속을 구경한 다음에야 겨우 이루어지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 하늘에 계신 그 분의 외아들인 당신이 와서도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의 선택에만 의지해야 된단 말이오? 그들의 온전치 못한 안목과 하찮은 지식 위에 그 무거운 선택의 짐을 아직도 그대로 얹어 두겠단 말인가요?」

예수의 냉담한 대답에 차츰 격렬해져 가던 아하스 페르츠가 다시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그 두 번의 문답으로 미루어 기대는 엷어질 대로 엷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예수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무언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던 아하스 페르츠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예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물음이라기보다는 간곡한 설득에 가까운 어조였다.

「하늘에 계신 그 분의 뜻은 이제 알 만하오. 그렇지만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제의할 게 있소. 당신이 진정으로 <사람의 아들>로서 일하고자 한다면 앞으로도 수없이 부딪치게 될 권유이니 깊이 생각해서 답해 주시오. 지금 이 땅의 민중들이 가장 열렬하게 고대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요. 가서 저들을 조직하고 무장시켜 옛 다윗의 영광을 재현하도록 합시다. 나의 지혜와 당신의 권능을 합치면 못 이룰 일은 아무것도 없소. 먼저 저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고 이 땅의 왕홀(王笏)과 권세부터 손에 넣읍시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그 다음이라도 늦지 않소. 아니, 그래야만 당신은 보다 쉽고 힘 있게 하늘에 계신 그 분의 말씀을 저들에게 전할 수 있고 또 보다 확실하게 그 실천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오. 거기다가 어디 그뿐이겠소? 당신이 타고난 사람의 몸은 이 세상의 영화를 흠뻑 누릴 수 있을 것이며, 그 마음도 남을 다스리고 부리는 즐거움을 실컷 맛볼 수 있을 것이오.」

「그 분에게서 비롯되지 않으면 땅 위의 권세는 헛되지 않음이 없고, 그 분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그 영화 또한 죄 되지 않음이 없소. 나는 이 세상을 구하러 온 것이지 다스리고 억누르러 온 것은 아니며, 저들의 죄와 고통을 덜어주러 온 것이지 나 스스로 즐거움을 누리려고 온 것은 아니요」

「그러나 검(劍)이 없었던 판관(判官)의 시대보다는 검을 가졌던 열왕(列王)의 시대에 사람들은 더 말씀에 충실하였소.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신은 언제나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졌던 종족이 권유하는 신이었소. …… 」

예수의 냉담한 거절에 아하스 페르츠가 다시 그렇게 덧붙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예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고개를 무겁게 저으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 얼핏 그럴 듯하지만, 우선 시간이란 객관적인 척도부터 빠져 있소. 지상의 권세와 쾌락은 순간이지만 천상의 권능과 복락은 영원하다는 걸 기억한다면 당신도 이내 그 세계가 허망함을 깨달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도 기억해야 할 것이오. 영원하다는 것은 결국 무의미와 별로 다른 바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은 순간이고 영원한 행복이란 영원한 불행처럼 존재하지 않소. ……」

「그것은 당신이 한 분이신 내 아버지를 믿지 않기 때문이오. 그 분은 못 하실 일이 없소. 약속하신 날이 오면 순간순간 새로워지는 행복을 영원을 채워 주실 것이오.」

「약속의 날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먼 앞날의 일이고, 또 우리로서는 그날이 꼭 올 것인지도 알 수가 없소. 그런 그날을 위해 한번뿐인 이승의 삶을 희생할 사람이 그 얼마이겠소? 누가 천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날을 위해 작지만 가능하고도 확실한 땅 위의 행복들을 포기하려 들겠소? 차라리 나와 함께 내려갑시다. 내 반드시 당신을 도와 이 땅의 왕홀을 손에 쥘 수 있게 하겠소. 설령 땅 위의 영화와 쾌락이 당신 말과 같더라도 그 왕홀만은 당신에게 여전히 필요할 것 같소. 왕자(王者)의 권세라면 빵이나 기적 없이도 이 백성을 말씀 아래 묶어둘 수 있다고 믿소. 인간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방식대로 따르는 게 가장 나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어떤 물건이든 그걸 만든 이가 가장 그걸 잘 아는 법이오. 인간은 내 아버지께서 만드셨으니 인간의 일은 그 분께서 가장 잘 아실 것이오. 그 분의 결정을 따르는 게 옳소. 그 분께서는 다윗의 자손들을 다른 족속의 손에 붙이셨을 때 이미 왕홀과 검에 대한 믿음을 거두셨소.」

예수는 그렇게 반박하다가 문득 입을 다물고 찬찬히 아하스 페르츠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았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윽고 엄숙하게 말했다.

「결국 당신은 육신의 정욕과 정신(또는 안목)의 허화(虛華), 그리고 땅 위의 어리석은 위세와 자랑으로 나를 유혹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 듯하오. 더는 나를 방해하지 말고 이만 물러나시오. 지금 당신을 부추기고 있는 그 악마의 가르침을 따라 사특한 지혜의 길이나 가시오. 이 순간도 진노의 철장(鐵杖)이 당신을 내려쳐 질그릇처럼 부수어 놓을까 두렵소.」

그런 그의 두 눈은 속 깊은 분노로 은은히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눈빛에서 아하스 페르츠는 그에게 걸었던 한 가닥 기대가 여지없이 허물어짐을 느꼈다.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윽고 가벼운 한숨과 더불어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나도 진작부터 당신을 짐작했었소. 참으로 완벽한 말씀의 육화요. 몸은 사람을 빌려도 마음은 말씀 그 자체구려. 나는 이만 물러나겠소. 그러나 모든 일이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당신은 지금 인간의 집을 짓던 끌과 대패로 신의 궁전을 지을 재목을 다듬고 있지만, 결코 그 궁전을 이 대지 위에는 세울 수 없을 것이오. 당신이 인간을 향해 쏜 독선의 화살이라면, 나는 그 방패가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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