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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21]새천년시대의 특징과 성격 2(마 1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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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01 2012.03.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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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21]새천년시대의 특징과 성격 2(마 13:44-46)

구도자의 가치매입

마태복음 13장 44-46절에서 말하는 보화나 진주는 감춰졌던 보기 드문 값진 것으로써 천국과 그 복음을 말한다. 또 천국은 죽은 성도들의 낙원과 2천 년 전에 ‘이미’ 이 땅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와 ‘아직’ 기대와 희망 속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모두를 말한다. 그러나 천국은 유대인들이 희망(Ha-Tikvah)하는 다가올 세상 ‘올람하바’(Olam Ha-Ba)와는 다르다. 유대인들은 다가올 세상이 유대인들을 위한, 유대인들에 의한, 유대인들의 문자적인 세상이 될 것과 그 세상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천국은 유대민족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을 위한, 모든 민족에 의한, 모든 민족의 영적인 세상이 될 것과 그 세상이 ‘이미’ 2천 년 전에 시작된 교회를 포함한다.

천국복음은 유대인들에게 감춰져 있었다. 그들은 유대민족주의와 가나안영토주의에 깊이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고 기뻐하며 재산을 팔아 그 밭을 매입하듯이 천국이 찾는 자에게 발견된다고 말한다. 또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재산을 팔아 그것을 구입하듯이, 천국이 구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7장 7절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고 말씀하셨고, 11장 12절에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말씀하셨다.

보화와 진주를 매입한 자들은 구도자들을 상징하며, 적어도 두 가지 덕목을 갖춘 자들이다. 한 가지는 가치파악이 가능한 눈을 가진 자들이고, 또 한 가지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것을 매입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들이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손에 넣겠다는 필사의 노력은 다름 아닌 목숨을 건 믿음, 순교를 각오한 믿음을 말한다. 천국의 가치는 목숨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처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고, 값진 진주를 땅에 짓밟는 돼지처럼 마음이 둔한 자들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의 보화와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그들 가운데 정약용 선생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16세 때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그를 대견하고 기특히 여긴 정조가 친히 불러 손목을 잡고 "네가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네게 벼슬을 주고 나라의 큰 소임을 맡기겠다."고 약속하였다. 부와 권세를 약속받은 이 천재소년은 정약종 선생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라며,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27세 때 의금부에 끌러가 능지처참 형을 받았다. 황사영이 무슨 값진 것을 기독교에서 발견했기에 목숨을 걸었는가? 무엇이 그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다가왔는가? 황사영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어 지키려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무지로 인해 감춰졌던 가치

13장에 소개된 8개의 비유들 가운데 네 개에서 “밭”이란 말이 쓰였다. 첫 번째 비유에서는 천국복음의 씨앗을 받는 네 종류의 마음 밭이 언급되었고, 두 번째 가라지 비유와 세 번째 겨자씨 비유에서는 “제 밭”과 “자기 밭”이란 말이 언급되었다. 이 “제 밭”과 “자기 밭”에 대해서 예수님은 38절에서 “밭은 세상이요”라고 설명하셨다. 따라서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갖다 심은 사람은 세상이란 밭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뜻한다. 같은 맥락에서 44절의 “밭에 감추인 보화”는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세상에 감춰놓으신 새천년시대 즉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감춰진 것인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감추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옛 선민인 유대인들이 유대민족주의와 가나안영토주의에 너무 깊숙이 매몰되어 있어서 예수님이 그것을 선포하시기 전까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추인”이란 ‘무지’ 또는 “예상치 못한”이란 뜻으로 쓰인 것이다.

주전 400여 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들려준 우화로써 플라톤이 <국가론> 7권에서 밝힌 동굴의 비유는 “밭에 감추인 보화”란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비유의 핵심은 지하 동굴 속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지’라는 족쇄에 묶인 채 벽면에 비취는 그림자들만 보고 살기 때문에 그들 배후에 있는 횃불이나 동굴밖에 존재하는 빛의 세계를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횃불이나 빛의 세계는 그들에게 감춰진 것이었다. 누가 감추려고 해서 감춰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것들의 존재를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횃불이나 빛의 세계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지혜자가 와서 그들에게 빛과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말해준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것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기 때문에 지혜자의 말을 믿기가 쉽지 않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과 지혜로 오셨다. 요한복음 1장 5절,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와 9-10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란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도 바로 이 무지, 즉 그들이 희망하던 메시아가 다른 모습으로 오실 수 있다는 것, 또 그들이 고대하던 ‘올람하바’가 기대하지 못했던 다른 형태로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태복음 13장 44-46절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보면, 무지의 족쇄를 풀고 동굴 밖으로 나와 빛의 세계를 발견 사람이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이다.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진리와 빛의 세계를 의식하지 못한 채 그림자와 어둠의 세계에 갇혀서 살았다는 것을 밝혔고, 사람들이 무지해서 알지 못했던 세계라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좋은 빛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듯이, 또 예수님께서 35절에서 친히 밝히셨듯이, 예수님은 천국비유를 통해서 “창세부터 감춰진 것들을” 밝히 드러내어 사람들이 알게 하려고 힘쓰셨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듣고 감춰진 비밀이었던 빛의 세계를 발견하고 소유한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계시로 밝혀진 가치

그리스도인들은 무지의 상징인 흑암의 세계에서 죄의 노예로 족쇄에 매어 살다가 무지의 족쇄를 벗고 빛의 세계로 탈출에 성공한 자들이다. 그것은 마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족쇄에 매어 살다가 억압의 족쇄를 벗어버리고 영광스럽게 탈출에 성공한 것과 같다.

바울만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밭이란 세상에 감춰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이 찾아낸 값진 진주가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이 없었다. 바울은 그것들이 빛의 세계로써 또는 예수님께서 직접 출범시킨 교회라는 새천년시대로써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무지 특히 하나님의 옛 선민인 유대인들의 무지로 인해서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며”(엡 3:9),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게 하신 것이고(엡 1:9, 3:3-4),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롬 16:25)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라”(롬 16:26)고 하였다. 바울 자신은 이 비밀을 예수님 다음으로 먼저 발견한 사람이고, 소유한 자이며, 목숨을 걸고 이 비밀의 가치를 전한 선교사였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이 비밀의 일군으로 삼으셨다(엡 3:7)는 소명의식과 사명의식을 갖고 있었다. 바울은 골로새서 4장 3-4절에서 자신이 이 일을 위해서 매임을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며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렇게 하면,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고 하였다.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자신을 이 비밀 곧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것과 이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곧 신실함이라고 하였다.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가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녔기에 바울은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는가? 바울은 보장된 장래를 헌신짝처럼 버렸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평생을 복음전도를 위해서 해외선교에 바쳤다. 이로 인해서 감옥에도 많이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유대인들에게 39대의 곤장을 다섯 번 이상 맞았고, 태장을 세 번 이상 맞고, 세 번 이상 파선 당하여 물귀신이 될 뻔했으며, 주리고 목마르고 굶주리고 춥고 헐벗었으며 결국엔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고후 11:23-27). 그러나 그는 그의 생애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딤후 4:7) 승리자의 삶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은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한 빛과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일생을 어둠 속 깊은 동굴에서 족쇄에 매어 살다가 족쇄를 벗어버리고 빛의 세계로 빠져나오는 자는 동굴입구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빛에 강한 통증과 일시적이나마 시력을 잃을 수가 있다. 그러나 바울의 두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시력을 되찾게 되었을 때 그는 분명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맛보았다. 이전까지는 기독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믿는 자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이 그 믿음 때문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가야하는, 그렇지만, 가장 행복한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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