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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2]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2(마 21: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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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907 2012.05.0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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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32]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투쟁 2(마 21:18-46)

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바른 지식

마태복음의 이해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대립각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보낸 생애마지막 한주간의 일들 가운데 위선이 가득하여 진실과 영성이 없던 유대지도자들과 유대교를 고발하고 징계한 상징적 사건들이 성전에서 이뤄진 부정한 상행위들을 몰아내신 것이었고(12절),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 하신 것이었다.

18-27절에서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는, 계명들(Mitzvot)을 인위적으로 해석하여 만든 장로들의 전통들(Gezeirot)을 열심히 지키지만, 열매가 없고 위선과 허례허식의 잎사귀들만 풍성한 유대지도자들과 그들의 유대교를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셨다”는 뜻은 다분히 상징성을 띤 표현이다. 요한복음 4장 34절을 보면, 예수님의 양식은, 육신의 배를 채우는 빵만이 아니라,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시장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일, 천국의 일. 살림의 일, 생명의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부터 유대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성에서 이런 하늘의 양식이 있는가하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와 함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특히 무화과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로 이해되었다. 이런 이해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엮어서 자신들의 수치를 가렸다는 것에서 근거한다(창 3:7). 그리고 그 나무의 열매는 토라율법에 관한 지식을 뜻한다. 토라율법은 선과 악 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해주기 때문이다.

<유대지도자들이 계명의 불순종으로 얻은 수치심을 계명들의 울타리 법들로 덮으려한 것은 마치 아담과 이브가 계명을 불순종하고 얻은 수치심을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로 덮으려했던 것과 같다. 열매가 없었던 유대지도자들이 울타리 법들로 자신들의 삶을 포장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유대지도자들이 열심을 보였던 울타리 법들은 계명을 상징한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잎사귀였던 것이고,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풍성했던 무화과나무는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유대지도자들과 유대교를 상징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식의 권위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근거한다. 예수님과 유대지도자들 사이에 권위논쟁이 벌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식한 민중의 눈들로 보아도 예수님에게 있는 권위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이 쌓아올린 지식 즉 열매는 민중을 억압하는 수단에 불과한 외식과 위선의 잎사귀들로써 민중을 먹일만한 열매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마 7:29)는 말씀의 뜻이 여기에 있다.

일찍이 예수님은 열매가 없는 나무는 찍혀 불쏘시개가 되고 만다고 하셨다(마 7:20). 열매가 없던 무화과나무가 죽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본장 31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둘째 아들로 설정된 세리와 창녀들이 저희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선포하신 것과 또 43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선포하신 뜻이 여기에 있다.

토라율법에 관한 지식을 한껏 자랑삼았던 자들에게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신 까닭의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그 속에서 예수님과 초기기독교인들이 발견한 올바른 메시아 상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과 그분을 통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 어떠한 것인가를 확고히 믿고 의심치 않는다면, 무화과나무에게 이뤄진 것처럼, 또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KO펀치를 날린 것처럼 탄압세력을 보기 좋게 물리칠 수 있음을 밝히셨다.

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바른 순종

예수님께서 시장기를 느끼셔서 무화과열매를 찾으셨던 때는 무화과를 수확하는 철이 아닌 주후 30년 4월 첫 주간의 월요일과 화요일이었다. 무화과의 첫 수확은 6월경에 시작된다. 3월경에 새잎사귀가 나올 때, 새잎사귀 밑에 열매가 생기지만, 체리 정도의 크기로 자란 후 대부분 떨어져 버린다. 이렇게 너무 이른 시기에 열렸다가 떨어지는 무화과를 '겨울무화과'라 부르는데, 이 열매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찾고자 했던 열매가 이 ‘겨울무화과’였을 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무를 저주하여 죽이신 것을 볼 때, 예수님의 시장기는 육신의 배고픔이었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배고픔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포도원을 가진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는 28-32절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맏아들은 율법과 의를 강조하면서도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부인한 유대지도자들을, 둘째 아들은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회개한 죄인과 세리와 이방인을 대표한다. 두 아들 가운데 어느 아들이 불순종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개역과 개정개역은 맏아들이 불순종한 아들로 되어있지만, 그밖에 번역들과 영어성경들은 둘째 아들이 불순종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 실린 돌아온 탕자비유로 보거나 신약성경의 내용으로 볼 때, 또 본문 31-32절에서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와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다”고 한 말씀을 종합해볼 때, 맏아들을 순종하는 시늉만 내고 끝내 불순종한 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러나 둘째 아들을 순종하는 시늉만 내고 끝내 불순종한 아들로 보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둘째 아들로 묘사된 세리와 창녀들이 믿고 회개하여 맏아들로 묘사된 자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과 맏아들로 묘사된 자들은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포도원 주인의 두 아들의 비유와 돌아온 탕자비유의 핵심은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의 뜻이다. 핵심은, 31절의 말씀대로,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였는가?”이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여 실천하였는가?”이다. 아버지의 뜻은 매우 분명하다. 타락한 죄인이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리와 창녀들이 믿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의 정신이 신실한 믿음과 정의와 사랑을 요구하는 것임을 모른 채 인위적으로 수많은 전통법들(Gezeirot)을 만들어 지키면서 외식과 위선과 선민의식에 빠져 하나님의 둘째 아들인 죄인과 세리와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외면하였고, 그들이 아버지께 돌아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곡해한 것일 뿐 아니라, 바른 순종이 아니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은 세상에 나가 선교하라는 명령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만을 구원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헌신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들을 일군(제사장 또는 선교사)으로 택한 것이었지, 구원에로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점을 오해하였다.

새천년시대 개방을 위한 바른 일군

33-46절의 악한 농부의 비유는 유대교에 맡겼던 역할을 빼앗아 기독교에 넘기겠다는 뜻이 담긴 말씀이다. 유대종교지도자들과 그들 종교의 실패를 더는 내버려두지 않고 기독교를 통해서 새천년시대를 개방하시겠다는 뜻이다. 41절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이다”한 말씀이 그 증거이다. 여기서 포도원은 세상 혹은 이스라엘이요,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농부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말한다. 그 열매를 받아오도록 보냄을 받은 종들은 예언자들이며, 그 주인의 아들은 메시아 예수님이시다.

농부들이 종들을 죽이고 심지어 아들까지 죽인 후에 “유산을 차지하자”(38절)한 말씀의 뜻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성전을 독점한 채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교제를 거부한 사실에서 드러났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이 타민족들의 신이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분밖에 없는 신을 독점해 버렸으니, 타민족들에게 참신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막기 위해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계명들 이외에 안식일법, 정결법, 음식법, 손씻기법과 같은 수많은 울타리법들과 관습법들을 만들어 방어막을 겹겹이 쳤다. 이 신(神)의 독점의식의 절정이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에는 단 한 개의 성전만 허락되었다. 그나마도 하나님을 지성소에 묶어뒀다. 그 하나님을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단 하루 법궤 앞에서 두서너 차례 독대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성전내부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일신 하나님이 성전지성소에서 해방되신 때는 외침들에 의해서였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능욕당하는 치욕이 있고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성전지성소에서 해방되셨다.

농부들이 포도원을 빼앗아 독차지하려고 했다는 말씀의 또 다른 뜻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메시아를 거부한 사실에서 드러났다. 기득권 세력은 새 세상을 원치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한 이유는 그들이 메시아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칼 한 자루 몸에 지니지 아니한 예수님을 반란자로 죽이려한 이유는 예수님이 메시아란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다가 메시아신분을 드러내신 후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일주일 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하고 기다렸던 메시아는 그 신분이 노출되자마자 아이러니하게도 곧바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 즉 기독교에 넘기셨다는 것이 초기기독교인들의 인식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봉사자로 세워 열방선교의 그릇으로 쓰시려 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여 하나님을 그들만의 하나님으로, 그들 조상만의 하나님으로, 그들 민족만의 하나님으로 독점해버렸고, 안식일법과 정결법과 같은 울타리법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행동, 즉 선교의 대상인 이방인들과의 접촉과 식탁교제를 차단시켜버렸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것을 폐하시고, 두 번째 것을 세우신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히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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