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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가시(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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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053 2010.05.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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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가시(고후 12:7-10)

꽃과 가시

5월은 장미와 아카시아의 계절이다. 아카시아 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향기가 천하제일이고, 장미꽃은 향기는 약하지만, 꽃이 화려해서 5월의 여왕이라 불린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래서 장미꽃만 보게 되고 장미꽃을 돋보이게 하는 가시달린 줄기를 외면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맡고 싶은 것만을 맡는다. 그래서 아카시아 꽃향기만 맡게 되고 아카시아 꽃향기를 돋보이게 하는 가시달린 줄기를 외면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드러난 현상에만 집중하지, 근원이나 배경에 접근하지 않는다.

한휘진의 시, “가시하나 없는 장미꽃 어디 있으랴?”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차디 찬 새벽이슬에 젖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시린 가슴에 가시하나 달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 붉은 장미꽃 어디 있으랴?” 만일 우리 자신에게 무언가 남에게 돋보일만한 화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것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의 우리가 있음은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천지의 큰 어버이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조선대학교 교수인 나희덕 시인은 어린 시절 그리스도의 교회 소속 시설인 연무대 에덴보육원에서 다른 고아들과 함께 자랐다. 부모님이 총무로 계셨기 때문이었다. 보육원 밖에서는 보육원 아이라고 왕따 당하고, 보육원 안에서는 총무의 딸이라고 따돌림을 당하며 자랐다. 이 보육원 밖과 보육원 안의 경계에서 보내야했던 긴장이 나희덕 교수를 시인으로 성공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이 긴장이 나희덕 교수 인생의 가시였다. 나희덕 교수의 산문 가운데 “내 인생의 가시”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나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시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잔을 얼마나 쉽게 마셔 버렸을 것인가.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 버렸을 것인가.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별과 어둠

햇볕이 있는 낮에는 사물을 분별할 수 있지만,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없다. 하늘에 별이 없어서가 아니다. 별을 볼 수 있는 어둠이 없기 때문이다. 어둠이 있을 때만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보기를 좋아한다. 별자리도 찾아보고 푸른 하늘 은하수를 노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래서 보고 싶어 하는 별만 보게 되고 별을 돋보이게 하는 어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드러난 현상만보지 근원이나 배경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별을 빛나게 하는 것이 어둠이듯이, 장미꽃의 화려함과 아카시아 꽃의 향기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가지에 매달린 가시들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는 <<어린 왕자>>에서 이런 말을 쓰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별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네 눈에 보이는 것은 인간의 껍질뿐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기별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고 조금 멀리 떨어진 곳곳에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아저씨별, 아줌마별, 할아버지별들이 보였다. 아기별은 수많은 별들 중에서 자기는 아직 이름도 없고 또 혼자란 사실에 너무 슬프고 외로워서 숨고 싶었다. 그래서 아기별은 어둠에게 말했다. "어둠아저씨, 저를 숨겨주세요, 외롭고 슬퍼서 어둠속에 숨고 싶어요." 어둠이 말했다. "아기별아, 나는 너를 위해 존재하는 거란다. 네가 빛을 더욱 발할 수 있도록 늘 이 검은 외투를 입고 있는데, 네가 내 안에 숨고자 한다면, 나의 의미는 무엇이 되겠니? 타인에게 의미가 되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란다.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지."

이번에는 반대로 태양이 아기별에게 말을 걸었다. "아기별아 여기서 뭣하니? 어서 자야지." "예, 집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아저씨는 집에 안 가세요?" "허허, 난 어젯밤 푸욱 자고 이제 출근하는 거란다. 난 밤에 자고 낮에 일하지." "아저씨는 좋겠네요. 무척 밝고 따뜻해서요. 저도 나중에 아저씨처럼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요." "하하 이기별아, 너와 나는 존재목적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단다. 나는 낮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밝은 빛을 비취지만, 너희 별들은 각자 맡은 사람에게 위로와 안식의 빛을 준단다. 내 빛과는 사뭇 다른 의미이지. 사람들이 외롭고 슬픔을 감당할 수 없을 때마다 너희별이 태어나는 거란다. 참, 너는 너를 태어나게 한 사람을 찾았니? 그 사람은 얼마나 외롭고 슬펐기에 너처럼 고운별을 태어나게 했을까? 너는 그 사람의 슬픔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삶의 의미와 안식이 되어줘야 한단다." "아, 그렇군요. 이제야 제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네요. 저는 제 자신이 외롭고 슬프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런 제가 그 누구를 위로해줄 수 있고 그 사람의 의미가 될 수 있다니 행복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을 찾지요?" "네가 밤에 따스한 빛을 발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너를 찾을 거란다. 찾기 쉽게 어둠이 너희별을 도와주고 있지.“ "예, 그런데 제 집은 어디에 있지요?" "네 집은 너를 태어나게 한 그 슬픈 사람의 마음속이란다. 밤엔 빛으로 그 사람을 위로하고, 낮엔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삶의 힘을 주는 거란다."

육체의 가시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의 회고담 <<내가 본 아버지>>에 부친 이상근 목사의 ‘가시’ 이야기가 나온다. 부친이 열여섯 살 때 발에 병이 도졌다. 그래서 대구 달성공원 느티나무 아래서 40일 작정기도를 했는데, 병은 낫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3년 동안 바깥출입을 못하게 되면서 학교엘 가지 못하고 집안에서만 갇혀 지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모친께서 발병부위에 붙인 탄방약이 독이 돼서 평생 낫지 못할 발을 만들고 말았다. 학생 이상근은 바깥출입을 못하는 대신 집에서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다. 그때 3년간 읽었던 성경지식이 훗날 그로 하여금 훌륭한 성서학자가 되게 하였다.

이상근 목사는 60년간이나 발병으로 고생하였다. 그러다가 1993년 은퇴 후에 외과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발뒤꿈치에서 1.5㎝의 머리카락 굵기의 철사가 나왔다고 한다. 어렸을 때 맨발로 다니다가 철사에 찔린 것이 속에 들어가서 평생 가시가 되었던 것이다. 이상근 목사는 발 수술 후 발견된 철사를 들고 "이 철사가 나의 가시가 되어 60년 동안 나를 찔렀으나 내가 성서학자가 되게 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였습니다."고 간증하셨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찌르는 가시가 있다. 가시 없는 사람은 없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고통을 주는 가시는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생 동안 몸에서 떠나지 않는 육체의 가시가 있다. 평생 괴롭히는 질병이 있다. 사람이 일평생 사는 동안 가시 없이 살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든지 가시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장미꽃처럼, 향기 짙은 아카시아 꽃처럼,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처럼 제 몸의 가시를 면류관으로 바꾸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화려한 장미꽃과 향기 짙은 아카시아 꽃과 빛나는 별빛에만 가치가 있고, 줄기의 가시와 밤하늘의 어둠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장미꽃과 아카시아 꽃은 가시가 있기 때문에 그 화려함과 향기를 자랑할 수 있고, 밤하늘의 별빛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시나 어둠도 화려함과 향기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꽃에 못지않게 나름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사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이 가시에 대해서 2세기말 교부 터툴리안은 바울이 앓았던 두통과 안질이었다고 보았고, 또 다른 신학자는 본문 7절, “나를 쳐서”를 근거로 간질병이었을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사적으로 한니발, 율리우스 시저,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영웅들이 간질 환자였다. 그래서 생긴 말이 “신(神)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간질병을 준다.”였다. 바울이 본문에서 고백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제 몸의 가시, 그것이 비록 선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고 믿었다. 첫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세운 파수꾼이라고 믿었고, 둘째는 세 번이나 제 몸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간곡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았을 때,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족하다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셋째는 자신의 능력이 바로 그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사실과 자신이 가장 약한 그 때가 바로 가장 강한 때란 사실에 기뻐한다고 하였다. 송명희 시인이 자신의 아픔이 너무나 큰 가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시조차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공평한 것이라고 노래한 것이나 박현지 양이 앓고 있는 희귀병이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축복이라고 쓴 것은 가시를 화려한 장미꽃과 향기 짙은 아카시아 꽃으로, 어둠을 반짝이는 별빛으로, 고통의 가시관을 승리의 면류관으로 바꾸는 바른 가치관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치 있는 삶의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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