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근본(시 111:10, 잠언 9:10)
본문
카리스마
예수님과 바울처럼 신념에 차 있고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한테는 어떤 강한 힘이 느껴지고,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이 근본에 서 있기 때문이고, 가치관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신념에 찬 사람들은 학벌과 권세와 재물이 없어도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다. 그들은 무엇에 혹은 어떤 것에 더 중한 가치가 있는가를 알뿐 아니라, 여하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바울이 죽음을 무릅쓰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교단에 어떤 여성 목사는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반드시 기도해 보고 결정할 뿐 아니라, 기도 후 내린 결정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기 때문에 대중의 의견을 좇아갈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바로 그 점에 그분의 카리스마가 있다. 또 그분은 사람의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아원 선교사역, 병원 선교사역, 교도소 선교사역, 노인정 선교사역, 해외 선교사역 등으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때로는 전기세, 수도세, 도시가스 사용료를 낼 돈이 없어서 한 겨울에도 냉골에서 지내야 할 때가 있지만, 그런 일에 전혀 당황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가족과 교인들을 대한다. 그렇다고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 때는 치맛바람 날리며 세속적으로 멋지게 살았던 날라리였지만, 삶의 근본 즉 뿌리를 하나님 안에 깊게 내리고부터는 삶에 있어서 남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붙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신본주의와 옳음과 그름에 대한 확고한 윤리의식이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왠지 존경스러워진다.
우리 대학에 입학한 사람 가운데 봉사연합단체를 섬기는 분이 있다. 그분이 타고 다니는 차는 마티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생활이 넉넉해 보이지 않는 중년이지만,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열정을 갖고 있다. 그도 한 때는 넉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종종 사회복지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땅 가진 분이나 사업하시는 분들로부터 받고 만나보고 있지만, 그는 그들의 제안 속에 세속적이고 물욕적인 속셈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근본 즉 뿌리를 하나님 안에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뿌리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기 때문에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는 윤리의식과 가치관이 뚜렷할 뿐 아니라, 사람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거기서 나온다.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의식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나온다. 시편 111편 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다.”고 하였고, 잠언 9장 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고 하였다. 실제로 삶의 근본 혹은 삶의 뿌리를 하나님 안에 깊게 내린 사람은 옳고 그름에 대한 확고한 지각과 명철을 갖고 있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거기서 생긴다.
근본에의 성찰
나이가 들수록 근본 혹은 뿌리의 중요성과 가치관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된다. 나는 누군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 삶, 내 인생이 추구해온 가치는 무엇인가, 바르게살긴 산건가, 세속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가, 지금 나의 삶은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일에 헌신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인가 등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에 가치가 있는가, 그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가치는 누가 정하는가, 그 가치의 근본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성찰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근본에로 돌아가자”(Back to Basic)는 구호가 있다. 이 구호를 줄여서 BTB라 부른다. '탱크주의'광고 전략으로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자 대우전자의 사장과 회장(91~97) 및 KAIST교수(72~74)를 역임했던 배순훈 박사의 평소의 지론이 BTB였다.
우리 그리스도 교회의 평소지론 역시 BTB이다. 기독교의 근본인 “단순한 신약성경에로 돌아가자”가 그것이다. 이는 인위적이고 잘못된 교회전통들을 고치고, 기독교의 근본이요 뿌리인 사도전통에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미국의 알렉산더 캠벨은 1800년대 초부터 기독교가 ‘옛 질서’(ancient order of things) 즉 기독교의 근본이요 뿌리인 신약성경의 가르침에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이 근본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성공과 성장에만 가치를 부여해왔고, 세속 인문주의적 성공주의, 결과주의, 공리주의, 실용주의에 매몰되어 근본에서 멀어져 갔다.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하고 감리교 전도사로 충청도 전의에 부임하였으나 6?25동란으로 고향에 피신하였다가 BTB운동 즉 신약성경교회로 돌아가자는 그리스도의 교회운동에 공감하여 1951년 봄에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와 방송선교활동을 하다가 1967년에 미국에 건너가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교에서 1971년 8월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신 박사는 종이에 무언가를 끌쩍일 때면 항상 “근본”이라는 단어를 먼저 적어놓고 시작했다고 한다. 이 근본은 우리가 서야할 기반이다.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는 <<영적강자의 조건>> 프롤로그에서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글을 적고 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골짜기를 헤매지 말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란 말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길이 보인다.... 방향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보듯이, 기본으로 돌아가면 길이 보인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본을 떠나는 경향이 있다. 자꾸 복잡해진다. 기본 상실로 인해 무력감에 빠지고 생명이 아닌 것에 마음이 나뉘어져서 약화되곤 하는 것이다. 이 때 기초로 돌아가는 집중과 단순화의 작업이 필요하다.... 종교개혁의 기본정신은 무엇인가? “ad fontes,” 즉 “근본으로 돌아가자”였다. 핵심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핵심이 회복되면 잃었던 능력이 회복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의 근본, 즉 근본들의 근본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가치의 근본이란 사실을 잊지 말자.
가치관에의 성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가치의 근본이란 사실의 깨달음은 가치관의 성찰을 통해서 이뤄진다. 이것은 가치를 판단하는 관점 즉 '사물을 보는 방법', '그 사물의 가치를 문제 삼는 방법', '가치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보고 그것의 가치를 문제 삼고 또 해결하는 관점(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과 성장 혹은 좋은 결과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추구해왔던 세속적 성공주의, 결과주의, 공리주의, 실용주의에 대한 가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훌륭한 이유는 대다수 유럽 백인들이 동물 취급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부자 백인들이 흑인 나사로들에게 저지른 야만적인 죄악을 속죄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슈바이처의 이 흑인을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그로 하여금 목사와 교수와 오르간 연주자의 삶을 포기하고, 삼십 세의 나이에 부인과 함께 의대에 입학하여 본인은 의사가 되고, 부인은 간호사가 되어 뇌염이 창궐하는 오고웨 강 유역 람바레네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하게 하였다.
이랜드의 박성수 사장은 하나님을 믿고 난 다음 세 가지 가치변화를 겪었다고 고백하였다. 첫째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 전에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믿고부터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가치중심이 자신에서 하나님에로 옮겨졌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큰 것은 좋고 작은 것은 나쁘며, 높은 것은 좋고 낮은 것은 나쁘며, 부자는 좋고 가난은 나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높아지고, 이기고, 크게 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난 다음부터는 부정직한 대통령보다 정직한 청소부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에는 재물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영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전에는 외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지금은 내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셋째는 전에는 목적도 방향도 없이 성공을 위해서 무조건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은 어디로 가야할 지, 몇 시까지 가야할 지, 어떻게 가야할 지를 알게 되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가치기준이 달라지면서 올바른 가치를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믿기 전에는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좋은 일을 하고 제법 성공하면 나 자신에 대하여 기분이 좋아지지만, 실패하면 우울해진다. 나이 들어 별 볼일 없어지면, 과거의 업적을 자랑거리로 들먹거린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믿기 전에는 ‘남들이 나에 대해서 하는 말이 곧 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좋게 말해주면 기분이 좋다가 나쁘게 말하면 슬퍼지며, 비방을 하면 상처를 입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믿기 전에는 ‘내가 가진 것이 곧 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명예와 재물과 권세가 있으면 우쭐대다가 그것들이 안개처럼 걷히면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치의 근본은 하나님이다. 하나님 안에 뿌리를 박으면 카리스마가 생기고, 지혜와 명철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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