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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요 19:28, 마 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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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351 2010.11.1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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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요 19:28, 마 25:31-46)

테레사의 소명체험

테레사는 1910년 8월 26일 마케도니아 수도인 스코페에서 알바니아계 가톨릭 집안의 셋째로 태어났다. 12살 때(1922년) 고향에서 처음으로 인도에서 활동하는 크로아티아 예수회 선교사들의 설교를 듣고 자기도 인도에서 선교를 하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18살(1928년)에 인도 선교를 위해 더블린의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했고, 그 다음해부터 인도 북부 다르질링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했다. 테레사는 해발 2천 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이곳 다르질링에서 수련 수녀로서 인도생활법과 벵골어와 힌두어를 배웠다. 그리고 27살(1937년)에 수녀로서 종신서원을 했다. 그리고 36살 때인 1946년 9월 10일 매해 받는 교육을 위해 기차를 타고 다르질링으로 가는 도중에 결정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형언할 수 없이 비참한 상황에 처한 빈자들을 미어질 듯 가득 실은 기차 안에서 그녀는 아주 분명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이다. “내가 목마르다”(I thirst). 테레사는 이 주님의 말씀, “목마르다”를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뭇 영혼들 즉 이웃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갈망하신 것으로 가슴 속 깊이 인식하였다. 이 체험 후 테레사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모시겠다고 결심하였다.

38살 때인 1948년 4월 2일 테레사는 수도원 밖에서 수도회 수녀로서 살아도 좋다는 교황 비오 12세의 허락을 받고 콜카타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노숙자와 병자와 쇠약한 자와 장애인과 기형아들에게 다가갔다. 콜카타의 도시환경이 어느 정도 나쁜가하면, 아침에 새 셔츠를 입고 신문을 사려고 잠깐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오면 셔츠의 옷깃이 새까매질 정도로 공기가 더럽다고 한다. 더위, 습기, 먼지, 자동차 매연 그리고 수많은 쓰레기 더미들이 타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끔찍할 정도라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봉사하는 수녀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숙제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씻기고 청소하는 것이며, 집에 돌아오면 곧장 입었던 옷을 벗어서 빠는 것이라고 한다.

테레사가 1997년 9월 5일 콜카타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는 극빈자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5개 지회에 592개의 분원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선교회를 남겼다. 지금은 이 분원들이 750개로 불어났고, 수녀들도 5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테레사는 생의 후반기 35년 동안 평균 삼일에 한 번꼴로 분원이나 국가나 심지어 대륙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10월 19일에는 로마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성인으로 시복을 받았다.

테레사는 1979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서 수많은 상을 받았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삶이 끝날 때 얼마나 학위를 받았는지,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혹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지에 따라 평가되지 않는다. 삶이 끝날 때 우리는 다음에 의해서 평가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는가?’”

내가 목마르다

테레사 수녀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모시고자 했던 것은 예수님이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또는 현현(계시)으로 보았다. 우리가 예수님을 극빈자들에게서 또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테레사의 확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행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께 행하는 것이 되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 그대로였다.

그러나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그들 속에 계신 예수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빵이나 치료보다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끔찍한 가난은 고독이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가장 심각한 질병은 나병이나 결핵이나 에이즈가 아니라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느낌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빵에 대한 허기보다 사랑과 가치 평가에 대한 허기가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돈이나 빵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저들의 이 깊은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달래 줄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거기에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는 천국이 어떨지 확실히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어서 심판을 받을 시간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얼마나 많이 좋은 일을 했는지 묻지 않으시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한번은 수행 신부에게 왜 양로원의 사람들이 입구 곁에 앉아서 모두 문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커다란 허기, 곧 사랑에의 허기를 느끼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비록 양로원이 물질적으로는 모두 갖춰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자녀들에게 잊혀진, 자녀들에게 버림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의 가족들안에도 이런 가난, 이런 허기를 느끼는 분들이 있지 않은지 자문해 보라고 했다.

테레사의 좌우명은 ‘행동하는 사랑’(love in action)이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테레사는 말했다. 또 “그대가 하는 일을 나는 하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그대는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라면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커다란 일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을 커다란 사랑으로 하기를 기대 하신다.”라고도 했다. 또 “하나님은 가난을 만들지 않았어요. 우리가 서로 나누지 않아서 가난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라고도 했다.

테레사는 극단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을 예수님에게 합치하고자 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기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완전히 신뢰하기로 결심했고 또 그대로 실천했다. 가난이 무엇인지,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녀가 일생동안 실천한 행동하는 사랑이었다.

테레사의 신앙과 삶

테레사는 수녀원 규칙대로 생활했다. 미사와 아침 기도 후에 청소를 했다. 우선 사리를 빨고, 다음에는 화장실과 바닥을 닦았다. 매일 그렇듯이 그녀는 모범을 보이며 함께 일했다. 대개의 경우 화장실 청소를 맡았다. “제가 이 분야는 전문가지요. 아마도 화장실 청소는 세계 최고일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한 수녀가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방문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 여행에 테레사를 수행했다. 그녀는 이상한 관찰을 했다. 테레사가 처음에는 비행기 앞쪽의 비즈니스 클래스의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오른쪽 화장실을, 그 다음에는 왼쪽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 다음에는 비행기 뒤쪽에 있는 다른 화장실들로 갔다. 이 수녀는 테레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화장실을 이곳저곳으로 다니십니까?” 테레사는 “액막이하는 거예요!”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테레사는 비행기 안의 화장실을 모두 청소했던 것이다. 마치 화장실 청소가 혹시 생길지모를 오만의 싹을 미리 꺾는 처치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고 했다.

테레사를 비롯해서 그녀의 수녀들은, 첫째 사랑하는 신뢰, 둘째 온전한 순종, 셋째 쾌활함을 신조로 삼았다. 주님이 무엇을 주시더라도 받아들이고, 주님이 무엇을 가져가시더라도 드리고, 이 두 경우에 있어 늘 활짝 웃으면서 행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속한다는 의미는 그분의 사용하심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뜻한다. 무엇을 위해서건, 어떤 방식이건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그분이 미리 상의하지 않더라도 사랑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며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성공하도록 사명을 내리시지 않고, 충성하도록 사명을 내렸다고 말한다.

테레사는 매일 아침마다 영성체(성찬)를 했다. 영성체 후에 즉 미사가 끝난 후에 모든 분원의 수녀들은 공동기도를 드리는데, 테레사는 뉴먼 추기경의 기도를 좋아했다고 한다.

좋으신 주님, 저희가 가는 곳마다 당신의 향기를 널리 퍼뜨릴 수 있도록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 영혼을 당신의 영과 생명으로 가득 채워 주소서. 저희의 전 존재를 온전히 소유하시고, 저희의 전 존재에 온전히 스며드시어, 저희의 삶이 당신 삶을 순수하게 비추게 하소서. 저희를 통해 빛나시고 저희 안에 머무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저희 영혼 안에서 당신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하소서. 저희를 보는 사람이 저희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을 보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저희의 모습을 통해서 열매 맺는 힘을 통해서, 우리 지성을 끌어당기는 힘을 통해서, 저희 가슴에 가득하게 살아 있는 당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아멘.

테레사는 하나님 없이 그들을 돕기에는 너무나 가난하지만, 기도할 때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테레사는 “침묵의 열매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봉사입니다. 봉사의 열매는 평화입니다.”라고 했다. 우리의 열매는 어디까지인가? 침묵의 열매까지인가, 기도의 열매까지인가, 믿음의 열매까지인가, 아니 더 나아가 사랑의 열매까지인가, 봉사의 열매까지인가? 과연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우리 자신이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 보이는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도록 하자. 그리하여 그들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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