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강28]하나님의 자기 백성(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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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28]하나님의 자기 백성(11:1-24)
남은 자들의 예표
로마서 11장 1절의 말씀대로 사랑의 하나님은 그 누구도 버리지 않으신다. 다만 돌아오기를 바라실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택하신 것은 구원에로 개개인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선교도구로 전체를 택하신 것이다. 구원은 개개인의 문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민이지만 자동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2절의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 하셨다”는 말씀은 언약백성이요 선민이었던 전체 이스라엘을 뜻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살아남은 자들을 뜻한다. 4절의 말씀대로 아합과 이세벨의 종교탄압이 최고조에 달했던 북 왕국 이스라엘에 엘리야를 비롯한 칠천여명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을 지켜냈다. 바울은 이들이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a remnant chosen by grace, 5절)라고 불렀다.
여기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는 최종 결과에 의한 산출이다. 끝까지 신앙을 지킨 자들이다. 6절에서는 이것이 행위로 된 것이 아니요, 은혜로 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남은 자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낼 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에 박해자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행운아들이었다. 신앙을 지켜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믿음을 지키려는 마음이 아무리 강해도, 일단 박해자에게 발각되어 체포되면, 고문을 견뎌내기 어렵기 때문에 신앙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와 칠천여명의 신앙인들이 살아남았으니,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하나님이 그들만을 유일하게 따로 뽑아 믿음을 지키도록 살려놓으셨으며, 나머지는 배교하거나 신앙을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도록 내버려두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이지만, 신앙을 지키려고 숨어 지낸 것은 그들의 신실한 믿음 때문이었다.
바울은 엘리야와 칠천여명의 남은 자들을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의 예표와 모형 또는 그림자로 보았다. 2절의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은 문자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 즉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요 선민이었다. 그런데도 엘리야와 남은 자 칠천여명을 일컬어 바울이 하나님의 “자기 백성”이라고 칭한 것은 그들을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7절의 말씀대로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요,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요 선민일지라도, 야훼신앙을 버리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우둔하여지고 버려진 자들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거나 선택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선택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상숭배에 빠짐으로써 스스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렸다. 따라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을 버리고 ‘남은 자들’에 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
유대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지 않았다는 로마서 11장 11절의 말씀은 그들 중에서도 구원받을 자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의 대다수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보다 빨리 이방인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유대인들의 대다수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수용했다면, 오늘날처럼 기독교가 이방인의 종교로 발전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대인들은 본래부터 하나님을 그들 조상의 하나님 또는 민족의 신(神)으로 믿어왔고, 바벨론 유배이후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제2모세 메시아도 유대인의(of), 유대인에 의한(by), 유대인을 위한(for)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으며, 아브라함이후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상속받을 자들이 전체 유대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이라는 기쁨의 소식, 즉 하나님의 신비요 그리스도의 비밀인 기독교 복음이 영영 사장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우선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문자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영적이고 신령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복음을 수용하지 못한 유대인들의 강퍅한 마음이 오히려 기독교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유대인들이,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이후, 그나마 6백여 년간 강대국들의 식민지형태로 유지되어온 조국에서조차 쫓겨나 1878년간 나라 없이 온 계에 흩어져 힘겹게 살게 된 그들의 비극이 오히려 기독교 발전에는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후 30년 교회창립이후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 중에도 기독교인들은 항상 있었다. 비록 그 수(數)가 매우 작고,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앙과는 차이가 좀 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유대인들 중에도 기독교인들은 있었다. 그들이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함께 궁극적인 구원에 도달할 남은 자들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것이 유대인들의 개종에 자극제가 된다고 보았다. 시샘으로 인해서 복음을 받아드릴 자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또 유대인들의 실족이 복음의 진보에 어떤 영향을 끼쳤든지 간에 바울이 에베소서 3장에서 밝힌 중요한 사실을 이쯤에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구원이 유대인들에게는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이었다는 점이다.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은 먼저 된 유대인들이 받기로 약속된 신령한 복들을 나중 된 이방인들이 상속자의 자격으로 유대인들과 함께 약속에 참여하도록 예정하셨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후발자인 이방인들이 겸손해야하고,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동족의 구원에 안타까운 심정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실족이 이방인들에게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이처럼 본래 자격이 없던 이방인들조차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면, 복음을 수용한 유대인들이 받을 복은 또 얼마나 풍성하겠는가(12절)고 바울은 말한다.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긴 하지만, 우선권이 유대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롬 1:16).
복음의 진보
바울은 유대인들의 실족이 이방인들의 개종에 유익이 되고, 또 역으로 이방인들의 개종이 유대인들의 개종에 유익이 된다고 보았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보완적으로 복음의 진보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유대인들이 실족한 이유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엡 3:9)과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고전 2:7)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엡 3:8)이 영적이고 신령한 것임을 깨닫지 못했고 문자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믿었다. 바울은, 만일 유대인들이 이 비밀한 지혜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다”(고전 2:8)고 하였다. 유대인들이 성령님이 계시하신(고전 2:10, 엡 3:3) 이 비밀한 지혜를 깨닫지 못한 것은 그들이 육에 속했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고 하였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깨달아 안 이 하나님의 비밀한 지혜를 다만 몇 사람의 유대인들이라도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 11:14)한 말씀을 보아 알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약속들과 계명들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것들은 마치 곡식가루가 거룩하면 그것으로 빚는 빵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거룩한 것처럼(16절) 기독교의 뿌리가 유대인들이 처음 시작한 야훼신앙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 야훼신앙은 물론 바울이 문제 삼고 있는 율법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이 야훼신앙에 접붙임을 받아 그 뿌리로부터 물과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고 하였다(17절).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다”(18절)고 하였다.
유대인의 실족이 이방인들에게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되고(11-12절, 엡 3:8), 이방인의 풍성함이 유대인들의 개종의 도구가 됨으로써(13-14절) 복음은 진보하였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예수님을 믿고 안 믿는 것, 이 하나의 원리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으면 서고, 안 믿으면 꺾인다(20-22절).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다시 꺾일 수 있으므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0절)고 경고하였다. 만일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엡 3:2)과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엡 3:9)에 따른 은혜의 복음을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리석게 여긴다면, 원가지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그들도 꺾어버리실 것이라고 경고하였다(21-22절). 또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을 유대교의 야훼신앙에 접붙여주셨듯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아온다면, 얼마나 더 자기나무에 접붙임을 받겠는가(23-24절)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받는 구원의 길이 민족성별신분의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음을 강조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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