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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4]국가권세가 실현해야 할 정의(롬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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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40 2011.08.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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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4]국가권세가 실현해야 할 정의(롬 13:2-7)

시민불복종

로마서 13장 2-7절은 시민불복종과 국가권세의 정의실현의무를 살펴볼 수 있는 말씀이다. 국가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도록 강요한다든지 불법을 자행할 때에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며, 정의와 평화실현을 위해서 적극적인 참여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단 3장, 6장, 행 5:29).

바울은 2-3절에서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국가권세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을 잘 수행하고 있을 때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만일 국가권세가 불의한 청지기가 되어 신성을 참칭(僭稱)하거나 우상숭배를 강요하거나 불의와 불법을 일삼거나 하면서 신성을 모독하고 평화와 창조질서를 해칠 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정의, 평화, 창조보전을 위해서 국가권세에 불복종할 수 있다. 순교자들의 시민불복종이 좋은 사례이다.

시민불복종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마하트마 간디, 디트리히 본회퍼,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이다. 간디는 인간의 목적이 “신(神)을 눈앞에 보기 위한” 것이며, 이 목적은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활동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보았다. 신(神)은 멀리 계시지 않고, 사람들 속에 계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갖게 하는 것이 신을 만나는 길이라고 믿었다. 또 신은 사랑(아힘사)이므로, 오직 비폭력을 통해서만 만나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비폭력저항운동으로 영국의 철권통치에서 인도를 해방시켰다.

독일인 목사 본회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근거를 둔 평화주의를 외치며, 히틀러정권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독일교회에 맞서 싸웠다. 그는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하였고, 폭탄이 터지지 않아 거사에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서 1943년 37세 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39세 때 교수형을 받았다. 목사가 어떻게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여할 수 있었느냐는 비난에 대해서 그는, “제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인도를 덮치려고 한다면, 나는 기다렸다가 차에 치인 병자를 병원에 데려가고 뒷수습하기보다는 제정신을 잃은 운전자를 차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그 차를 향해 뛰어 들것이다.”고 말하였다.

흑인목사 마르틴 루터 킹은 비폭력저항으로 흑인민권운동을 펼쳐 인종차별을 불법화시키고, 괄시와 천대를 받던 흑인들을 각성시켜 마침내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하였다. 그러나 킹 목사는 1968년 39세 때 암살당하였다.

하비 콕스는 출애굽사건을 정치권세의 신성화나 신성의 참칭(僭稱)에 대한 거부로 보았다. 엘리야와 칠천 명, 다니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등은 우상숭배를 지시한 왕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 과거 2천 년간 그리스도인들도 황제숭배나 불의와 불법을 강요하는 국가권세들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 하나님만이 절대 가치이고, 절대 권세이다. 하나님이외의 것은 다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참 가치와 영구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불의와 불법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보복정의

바울은 로마서 13장 4-5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국가권세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고 있으므로 국가의 정당한 요구에 그리스도인들은 국방과 납세와 교육과 근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권하였다. 대신에 국민은 국가로부터 기본권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국민의 기본권에는 인간의 존엄권, 행복권, 평등권, 자유권, 생존권, 청구권, 참정권, 사회(복지)보장권이 있고,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도 있다.

국가는 재외국민과 그들의 재산과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재해를 예방하며,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한다. 사회보장과 복지증진에 노력해야하고, 균형 있는 국민경제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며,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해야한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법 사법 행정의 의무를 진다. 법을 만들고 집행함으로써 범죄를 막고 약자를 보호하며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영화, ‘어퓨굿맨’(A Few Good Men)을 보면, ‘약자를 보호하지 않은 것이 유죄’였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는 양육강식이 판치는 동물의 세계이지, 이성을 가진 인간의 나라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보복정의실현은 사회질서를 위한 필요악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사생활보호권, 자율권,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면서 국가가 간섭을 대폭 줄일 것을 요구한다. 불의와 불평등 요소들을 줄이고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는 모든 수단을 배제한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내맡기라는 주장이다. 만일 국가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드린다면, 약자는 누가 보호할 것인가?

구약시대에는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란 것이 있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출 21:23-25)갚는다는 이 법은 피해자의 손해와 동일한 손해를 가해자에게 입힌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법처럼 보여도 이것이 엄격한 의미의 정의이다. 유전무죄란 말이 있듯이, 돈은 형량을 줄여주고, 감옥에서 몇 년 지내면 남에게 끼친 손실의 보상도 끝나버리는 불합리한 법보다는 훨씬 정의로운 법이다.

오늘날에는 나라마다 사형제도의 존치와 폐지를 놓고 열띤 공방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형제도는 존치하지만, 사형집행을 보류하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다. 사형제도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 죄를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신 19:13,20)가 있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국가가 어느 경우에도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흉악한 범죄는 안 된다는 것을 선포하는 교훈적 의미와 생명의 존엄성을 국가가 보장하고 있다는 중요한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개인에게는 사랑을 명하신 반면, 국가권세들에게는 공의를 명하시며(민 35:29-30), 긍휼히 여기지 말 것을 명령하신다(민 19:21).

분배정의

바울은 로마서 13장 6-7절에서,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하였다. 국민이 가진 납세의 의무를 강조한 말씀이다. 바울은 국민이 납세를 해야 하는 이유가 국가권세가 국민을 섬기는 하나님의 청지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권세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면,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을 위한 국가의 의무들 중에는 분배정의가 있다. 국가는 재외국민의 기본권 수호차원에서 사회보장과 복지증진에 힘써야한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며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개인의 이익을 공동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을 세워야 한다.

평등을 옹호한 전 하버드대 정치철학교수 존 롤스는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고....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롤스는 타고났거나 물려받은 재능은 운이 좋았을 뿐이지 자신의 공이 될 수 없으므로, 개인의 노력부분은 인정한다할지라도, 운동선수, 기업가, 주식중개인, 학자, 전문가 등에게 부여하는 포상과 명예를 우수한 미덕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존 롤스는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정책, 소외계층에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우대정책과 복지정책을 펼쳐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롭고 선하다는 윤리철학의 근거를 제공하였다.

애초에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출발하더라도 출발과 동시에 이내 그 평등은 깨진다는 것이 롤스의 주장이다. 능력의 차이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더라도 출발선이 다르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가족의 도움을 받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막대한 밑천을 가지고 시작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유리하다. 그래서 롤스는 차등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차등원칙이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부요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과 동일한 기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층이나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능력위주의 사회에서는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부의 분배가 결정되기 때문에 불평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차등원칙을 통해서 줄일 수는 있다고 보았다.

성경이 주는 교훈은 우주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롤스의 주장대로, 타고났거나 물려받은 재능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은, 개인이 노력한 부분을 인정한다할지라도,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지, 자신의 공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공동체주의에 입각하여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공헌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개인주의(정)와 공동체주의(반)의 변증법적 합이 복지의 관건이며, 국가권세가 고민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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