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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5]율법의 완성법(1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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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54 2011.08.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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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5]율법의 완성법(13:8-10)

모든 일은 사랑으로

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에서 구원의 원리를 설명한 후에 12-13장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교우들에게, 이웃에게, 국가에게 어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태도를 취해야할 것인지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13장 8-10절에서는 모든 일에 사랑으로 할 것을 강조하였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8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10절)고 하였다. 그러므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8절)고 충고하였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화목의 개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가로막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막는 담을 헐고 평화로 가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에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방법을 설명한 후에 교우들과 이웃과 국가권세와 화목 하는 방법을 ‘사랑’이란 두 글자로 설명하였다. 본질에는 일치하고, 비 본질에는 자유하며,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義)를 이루기 위하여” 613개의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마침표를 찍으신 것도(10:4) 사랑이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도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거의 죽게 된 채로 길거리에 버려졌다. 때마침 제사장 신분을 가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강도당한 자를 보았지만 돕지 않고 지나쳤고, 레위인 신분의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냥 지나쳤다. 그 후 사마리아인 신분의 한 사람이 강도당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상처 난 곳을 포도주로 소독하고 기름을 발라 헝겊으로 싸매고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가서 극진히 돌봐주었다. 이튿날 사마리아인은 여관주인에게 비용을 지불하며 당부하기를, “이 사람이 기동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 주시오. 만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겠소.”라고 말하고 여관을 떠났다(눅 10:25-37).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어떤 율법사의 질문을 받고 들려주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 물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가 대답했다.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마태복음 22장 40절에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핵심이요 으뜸이란 뜻이다.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선포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8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10절)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비결은 본질에서는 일치를 꾀하고, 비 본질에서는 견해의 차이를 인정하여 교우들 간에도 피차 다른 견해나 입장 또는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포용하며, 모든 일에서 헌신과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다.

사랑의 빚

예수님께서 율법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네 종류의 사람들이다. 첫 번째 인물은 강도이다. 강도는 율법을 무시하고 살인강도짓을 하는 비열하고 부도덕한 사람이다. 두 번째 인물은 강도당한 사람이다. 이 불행한 피해자는 가진 것을 다 빼앗긴 채 매를 맞아 거의 죽게 된 채로 길가에 버려졌다. 그가 당한 불행이 누구의 탓인가? 당대의 유대인들이라면, 그가 당한 불행이 그 자신의 죄나 그의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가 당한 불행이 누구의 탓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관심은 누가 그 불행한 자를 도왔는가에 있었다.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이 취할 태도는 사랑으로 돕는 것이다. 강도당한 자가 선한 사마리아인한테 사랑의 빚을 지게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악해서였다. 그가 한량이었거나 낭비벽이 심했거나 게을렀거나 못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남의 것을 약탈하려는 잔악무도한 강도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사랑의 빚을 졌어야했고, 누군가는 그를 반드시 도와야했다. 바울은 이런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한, 즉 사랑의 빚 말고는 어떤 빚도 지지 말고, 어떤 피해도 입히지 말며, 강도당한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 율법을 완성하라고 충고하였다.

세 번째 인물은 제사장과 레위인이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가장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강도당한 자들 돕지 않은 것은 율법을 어기지 아니하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레위기 21장 1절에 보면, 제사장들은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했고, 민수기 19장 11절에서는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 일을 부정하리라”고 하였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당한 자를 돕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그들이 강도당한 자의 불행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모든 불행을 그것을 겪고 있는 당사자나 그들 조상들의 죗값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인물은 사마리아인이다. 이 사람은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혼혈족이었다. 당대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해서 “이 사람들에게서 무슨 가치 있는 일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이런 식의 모욕과 경멸을 당하던 사마리아인이 오히려 자기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강도당한 유대인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것이었다. 경멸당하는 사마리아인이 강도당한 유대인 이웃에게 아름다운 사랑의 빚을 지운 것이었다.

이들 가운데서 누가 과연 율법을 가장 잘 지켰고, 누가 과연 더 윤리적이었는가? 강도당한 자를 돕지 않았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의 참 정신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잘 지켰는지는 모르지만,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율법을 어긴 자들이었다. 우리는 종종 남에게 사랑을 받은 적이 없거나 그럴 필요가 없음으로 사랑의 빚을 진 적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웃에게 베풀어야할 사랑의 빚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을 받아야할 자는 그것을 받기 때문에 사랑의 빚이 되지만, 사랑을 베풀어야할 자는 그것을 반드시 베풀어야하기 때문에 사랑의 빚이 된다.

사랑의 빚 갚기

톨스토이는 이 땅에 산재한 악을 제거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사람으로서 그 방법을 <대자>(代子)에 발표하였다. 대부(代父)로부터 대자는 자기 때문에 죽게 된 도둑의 죄를 대신 갚으라는 숙제를 받고 물었다. “도둑의 죄를 어떻게 갚을 수 있습니까?” 대부가 대답했다. “세상에 나가서 네가 지은 만큼의 죄를 지워 가면 된다.” 대자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죄를 지울 수 있습니까?” 대부가 말했다. “암자에 사는 은자(隱者)를 찾아가면 그가 방법을 일러줄 것이다. 그가 지시한 일을 완수하면 도둑이 지은 죄를 갚게 된다.”

은자는 대자에게 나무를 잘라 세 토막 낸 다음 불에 태우게 하였다. 그리고 불에 새까맣게 탄 나무토막들을 산언덕에 심게 한 다음, 매일 산 아래 흐르는 개울의 물을 입에 머금고 와서 뿌려주도록 했다. 만일 나무토막들이 살아나면 대자의 죗값이 청산될 것이라고 말해준 다음 은자는 죽었다.

대자의 수도생활은 성공적이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어떤 나무토막에서도 싹은 트지 않았다. 어느 때부턴가 잔악무도한 살인강도가 암자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그가 무서워서 발길을 뚝 끊었다.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생겼다. 신자들은 은자를 존경했지만, 강도는 먹고 살기위해서 기도하는 대자를 전혀 존경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은자의 설교를 오히려 비웃었다. 수행을 시작한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대자는 자신이 세상평판에 현혹될 뿐 아니라, 양식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암자를 버리고 숲속에 숨어버렸다. 대자는 먹고 사는 염려를 그치고 마음을 맑게 했던 것이다. 그제야 나무토막 하나에서 새싹이 돋았고, 강도의 마음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그 후 또 다른 10년의 수행 끝에 대자는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자는 죽음으로 자신의 죗값, 즉 사랑의 빚을 갚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때마침 살인강도가 돈 많은 장사꾼의 아들을 납치하여 그의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대자는 죽기를 각오하고 살인강도의 말고삐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죄 없는 젊은이를 놓아주라고 타일렀다. 어쩐 일인지 강도가 대자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수행 20년 만에 대자는 비로소 곧고 강직한 마음을 가져야 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튿날 대자는 두 번째 나무토막에 새싹이 움튼 것을 보았다.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대자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주셨는가!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살인강도가 시름에 찬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대자의 마음에 사랑의 밑불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살인강도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한걸음에 달려가 그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살인강도가 무릎을 꿇었다. 대자는 비로소 미움을 태울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을 갖지 못하면 죽은 영혼을 살려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머지 나무토막에 새싹이 움텄다. 강도는 회개했고, 죽은 대자를 대신해서 은자가 되었다. 그렇게 대자는 자기가 진 사랑의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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