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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6]지금은 자가가 깰 때(롬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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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833 2011.08.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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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36]지금은 자가가 깰 때(롬 13:11-14)

자다가 깰 때

로마서 13장 11절의 말씀,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에서 “이 시기,” “자가가 깰 때,” “구원이.... 가까웠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영광스럽게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승리의 함성을 외치며 광야사막에 성공리에 첫발을 디딘 이후 40년간 목적지 가나안 땅을 향하여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더니, 비로소 그들이 목적지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는 뜻이다.

12절의 말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는 목적지 점령을 눈앞에 두었으니, 이제는 자다가 깰 때요,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야할 때요, 갑옷을 차려입고 허리띠를 단단히 매어야할 때요, 전술을 익히고 전략을 세워야할 때요, 무기를 점검할 때라는 뜻이다. 그들이 걸어온 세월은 깊은 밤처럼 어둡고, 모래바람과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처럼 매서웠다. 그들이 지나온 길은 배고픔과 목마름과 토착주민들의 방해와 내부의 분열과 싸우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으니, 그들의 행군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니, 어느덧 목적지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13절의 말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는 깊은 밤처럼 흑암과 혼돈과 죽음의 날들이 지속되었으나 이제 머지않아 빛과 질서와 생명의 날들로 바뀔 것이니, 지난날 광야사막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믿음을 저버리며 분열을 획책한 자들처럼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자는 뜻이다. 광야사막에까지 성공적으로 들어왔으나, 고난을 견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며, 주의 종 모세를 모함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싸우며, 시기하고, 음란한 바알종교에 빠져 술 취하고, 방탕하였던 자들처럼 행동하지 말자는 뜻이다.

14절의 말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약속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강하고 담대하며, 육신의 안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했던 것처럼,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을 계획하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이곳 로마서 13장 11-14절에서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사막에서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을 연상하면서 그 같은 상황들을 신약시대의 예표와 그림자와 모형으로 보고, 우리 성도들에게 견고한 믿음, 신실한 믿음을 권면하였다. 우리 신앙인들은, 먼 옛날 가나안 땅의 정복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처럼,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교인이 되어 신앙의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어느덧 수년 혹은 수십 년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의 목적지인 하늘 가나안 땅이 멀지 않으므로 깨어 근신하며 더욱 힘써 준비하여 하늘 가나안에 입성할 준비를 갖추자는 것이다.

구원이 가까웠다

구원이 가까웠다는 뜻은 ‘장차올 좋은 것’이 눈앞에 있다는 뜻이다. ‘장차올 좋은 것’이란 초기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하늘 가나안의 개념이며, 유대교인들이 ‘희망’(Ha-Tikvah)하는 ‘올람하바’(Olam Ha-Ba)를 말한다. ‘올람하바’란 ‘다가올 세계’(World to Come)를 뜻한다. 유대교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이 기다리는 다가올 세계는 저 팔레스타인 땅에 문자적으로 이뤄질, 즉 성전이 재건되고, 제사예배가 회복된 다윗 때와 같은 왕정국가 또 유대교가 통치이념이 되는 신정국가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신약성경에 언급된 ‘장차올 좋은 것’은 유대인들의 ‘다가올 세계’와 크게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공통점은 기독교인이나 유대교인이나 그것을 간절히 사모하고 바란다는 점이다. 기독교인이나 유대교인이나 현 세계를 최종적인 세계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록 기독교인의 장차올 세계는 천국을 의미하고, 유대교인의 장차올 세계는 그들의 나라 팔레스타인 땅을 말하지만, 현 세계가 궁극적인 세계가 아니라고 믿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장차오기로 약속된 이 세계가 멀지 않다는 점이다. 그 세계가 가까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6장 9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더 좋은 것이 있다’는 말씀을 시작으로 ‘좋은 소망’(7:19), ‘더 좋은 언약’(7:22), ‘더 좋은 약속’(8:6), ‘장차올 좋은 일’(9:11), ‘장차 나타날 좋은 것’(10:1)을 연이어 말씀하였다. 그리고 11장에서는 역사를 수놓은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을 사모’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였다’고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시고, 미리 세워둔 ‘더 좋은 계획’에 따라(40절) 그들을 위한 ‘한 도시’ 곧 하나님의 나라를 마련해 주셨다(16절)고 밝히고 있다.

바울도 ‘장차올 좋은 일’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였다(엡 1:21). 고린도후서 5장 5절을 보면,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이 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영어성경에서는 이 말씀이 “장차올 것을 보장하는 보증금으로써”(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성령님은 ‘장차올 좋은 것’에 대한 ‘약속’의 ‘보증금’과 ‘인감’으로써 설명되었다. 광야사막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확실하게 인도한 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로마서 13장 11절은 이제 그날이 가까웠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의 희망이 성취될 구원의 그 날이 가까웠으므로, 바짝 긴장하여 구원을 쟁취하자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도 믿음의 사람들이 ‘장차올 좋은 것’ 즉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을 확실하게 받게 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다”(히 6:17절)고 말하면서, 이 영원한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순종하여 장래 받을 땅에 나갈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하였다(히 11장). 구원이 가까웠으니,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아 더욱 분발하자는 말씀이다.

참 안식

로마서 13장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이 땅은 참 안식을 주지 못함으로 참 안식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위해서 잠에서 깰 때임을 강조한 말씀이다.

유대교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테마가 안식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유배생활에 지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안식은 절대적이고, 신성하며, 지복의 상징이다. 수천 년간 유배생활에 골병들었던 유대인들에게 안식은 정말 특별한 개념이다. 그들이 그토록 안식일을 엄하게 지킨 이유, 상황에 따라서는 수백 가지가 넘는 상식을 초월한 안식일 법들을 만들어 지킨 이유가 그들의 오랜 유배생활과 무관치 않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민족보다도 더 절실하고 뼈저리게 안식이 필요하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고달픈 세상은 참 안식의 땅이 아니다. 로마서 13장 11-14절은 참 안식의 날이 멀지않았으니,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자는 권면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의 원형은 가나안 땅이다. 그래서 아람의 유목민이었던 히브리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유랑세월 끝에 안식의 상징인 가나안 땅에 진입하였다.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진입하였다. 그래서 기나긴 세월의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얻게 되는 가나안 땅, 나라 없이 떠돌던 설음을 한 순간에 씻어버릴 가나안 땅의 진입은 오랜 고난과 시련에 종지부를 찍고 얻게 되는 안식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 흩여져 사는 유대인들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다. 그들은 모두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가나안 땅은 이방인들의 눈으로 볼 때, 불모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유대인들이 볼 때는 젖과 꿀이 흐르는 희망의 땅이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요, 거룩한 땅이요, 영원한 안식처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월절 밤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고 희망을 노래한다. 그들은 또 가나안 땅 밖에서 사는 것을 유배생활로 간주하면서 언젠가는 그 땅에 들어가 살게 될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희망을 담은 이스라엘 애국가가 ‘하티크바’(Ha-Tikvah)이다. “유대인의 영혼이 마음속 깊이 갈망하고 있는 한, 동쪽에로 향한 눈으로 시온을 바라보고 있는 한, 우리의 희망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천년을 간직한 희망은 우리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 시온과 예루살렘 땅에서.”

이런 간절함 때문에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으로 거침없이 향한다. 이것을 ‘알리야’(aliyah)라 부르는데 ‘오름’이란 뜻이다. 이 오름이 다윗왕조회복, 성전예배재건, 세계통합이란 역대기 사가들의 이념과 연결이 되면 ‘시온에 오름’이 된다. 이 꿈이 이뤄질 때, 그곳에 진정한 안식이 주어진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오름’을 향한 희망은 유대인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가나안을 향한 오름으로 강하게 불타야 한다. ‘장차올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견디는 신실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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