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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0]새천년시대의 윤리기준2(마 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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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124 2012.02.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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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0]새천년시대의 윤리기준2(마 6:1-18)

새천년시대의 구제법

구제는 유대교인들의 행위에 관한 율법에 속한다. 613개의 계명들 가운데 51-52번째 계명이 ‘쩨다카’(Tzedakah) 즉 구제(charity, 자선)에 관한 것이다(신 15:7,11).

유대인들은 가난을 선대의 죄나 자기 죄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가난한 자들을 죄인취급하거나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구제나 자선을 베풀 때, 끌림 동기에 의해서 즉 마음이 끌렸거나 동정심 때문에 행하지 않고, 의무 동기에 의해서 즉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행하였을 것이다. 의무감에서 행한 그들의 구제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평가를 빌리자면, 마음이 끌려서 혹은 동정심 때문에 행한 것보다 더 높은 도덕을 실천한 것이 된다. 마음에 내키든지 내키지 않든지 구제가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구제를 문제 삼아 말씀하신 이유가 613개의 계명들 가운데 51-52번째인 ‘쩨다카’(Tzedakah) 즉 구제에 관한 계명들을 의무감에서 마지못해서 실행한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문제를 삼으신 것은 1-4절에서의 말씀대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또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과 거리에서 떠벌리고 자랑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회당과 거리란 5절의 말씀대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 11-12절에서 이런 행위자들을 일컬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사람이 많은 성전의 뜰에 서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하는 자들이었다.

유대인들은 세금을 제외한 수입의 10분의 1을 구제로 사용할 뿐 아니라, 집집마다 ‘푸쉬케’(pushke)라 불리는 상자를 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동전을 수집한다고 한다. 구제(Tzedakah)는 회개(teshuvah)와 기도(tefilah)와 함께 유대인의 3대 의무이기 때문이다. 구제금뿐 아니라, 회당과 교육기관에 내는 기부금도 ‘쩨다카’에 포함된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구제행위에는 8가지가 있다. 1)아까와 하면서 주는 것, 2)줄 수 있는 것보다 덜 주지만 즐겁게 주는 것, 3)달라고 해서 주는 것, 4)달라고 하기 전에 주는 것, 5)받는 자는 주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주는 것, 6)주는 자는 받는 자가 누구인지 알지만 받는 자는 모르게 주는 것, 7)쌍방이 서로 모르면서 주고받는 것, 8)받는 사람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가운데 처음 다섯 가지를 예수님께서 외식행위 또는 “상을 이미” 받은 행위로, 나중 세 가지를 상을 받게 될 옳은 행위로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행을 베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구제나 자선을 베풀 때, 외식하는 자 바리새인이 사람들한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분 것처럼 떠벌리지 말아야 한다. 구제나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만큼 은밀히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복을 주신다. 사람들에게 상을 받아버리면, 하나님께 받을 상이 사라져 버린다.

유대교인들의 기도법

기도는 유대교인들의 행위에 관한 율법에 속한다. 613개의 계명들 가운데 22번째 계명이 “하나님께 기도하라”이다. 여기서 “기도하라”는 “섬기라”(출 23:25, 신 6:13)는 계명에 대한 해석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섬기다”는 “기도하다”를 뜻한다.

유대인이 암송하는 대부분의 기도문은 “복 받으시옵소서!”로 시작되거나 끝나는 '베라카'(berakah)이다. 축복이란 뜻으로써 무릎(Bet-Resh-Kaf)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대인들이 ‘베라카’를 낭송할 때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굽히면서 절을 하기 때문이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100개 정도의 ‘베라카’를 매일 낭송한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쉐마’(Shema)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되는 성구를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낭송하며, 19개의 짧은 기도문이 담긴 ‘쉐모네 에스레이’(Shemoneh Esrei)를 오전 오후 저녁 매일 세 번 기도회를 통해서 낭송한다. 이 기도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치던 희생제물을 대신해서 바친다. 안식일과 특정 축일에는 별도의 기도나 기도회가 추가된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테필라’(tefilah)라 하는데, 성찰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것을 ‘카바나’(kavanah)라 부른다. 집중이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머리에 ‘키파’(kipa, 빵떡 모양의 모자)를 쓴다. 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 ‘탈리트’(Tallit, 상체를 감쌀 수 있는 크기의 기도용 보자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보통 노래로 기도하면서 몸을 전후로 흔든다. 기도용 보자기 네 귀퉁이에 술이 달려있는데, ‘찌찌트’(tzitzit)라 불린다. ‘찌찌트’는 613개의 계명들 가운데 18번째로써 민수기 15장 37-41절에 근거하여 기도용 보자기와 상의 하단에 부착하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일부 유대인들의 행위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마태복음 23장 5절을 보면,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란 비판적인 말씀이 있다. 여기서 경문의 띠란 613개의 계명들 가운데 19-20번째 계명들로써 이마와 팔에 매다는 ‘쉐마’ 성구를 넣은 작은 상자(Tefillin)를 말하고, 옷술은 ‘찌찌트’를 말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것들을 크게 만들어 달고 다닌다고 비판하셨다.

예수님 당시, 5절의 말씀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 사람들은 할 일없이 기도와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던 자들이었다. 생업에 매달리는 일반인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는 국민의 기본의무인 납세와 병역을 거부한 채, 일부다처에 다산(多産)까지 하면서 국가로부터 주급 900세겔(약 27만원)을 받아서 생활하는 정통파 유대교인들이 국민의 3분의 1이나 된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약 60만 명에 이르는 극단적 정통파(ultra-orthodox) '하레딤'(Haredim)은 세속국가 이스라엘의 해체까지 주장한다. 진실성이 없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기도는 하나님께서 철저히 외면하신다. 6절에서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충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

새천년시대의 모범기도

유대교의 613개의 계명들이 248개의 ‘~하라’와 365개의 ‘~하지 말라’로 이뤄진 것처럼, 예수님은 기도할 때 하지 말 것과 해야 할 것을 구별해서 가르치셨다.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표내지 말고, 중언부언하지 말며, 금식기도 때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고 하셨고, 해야 할 것으로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고, 주기도문처럼 기도하며, 먼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고, 금식기도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당부하셨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서 “우리 아버지여”는 쉐모네 에스레이 5,6,19번에도 있다. 그러나 “아빠”(abba)는 유대교 기도문에 없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감히 아빠로 부르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과 바울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다(막 14:36, 롬 8:15, 갈 4:6).

주기도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서 “이름이 거룩히”는 쉐모네 에스레이 3,18번에 비슷한 표현이 있고, 613개의 계명들 가운데 4,5번의 계명으로써 레위기 22장 32절에 근거한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그 이름’이란 뜻의 ‘하쉠’을 자주 사용하였다.

주기도문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쉐모네 에스레이 14,15번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다가올 문자적인 나라만 있을 뿐, 이미 임한 현재적인 영적인 나라가 없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한다.

주기도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쉐모네 에스레이 9번에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은 “우리가 필요로 한 것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란 뜻이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빵을 구하는 기도이다. 여기서 빵은 영혼과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 인간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대표한다.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이 매일 내리는 만나에 의지하며 살았듯이, 매일 매일 하나님의 손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는 겸손한 고백을 담고 있다.

주기도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는 쉐모네 에스레이 5,6번 기도에서 발견된다. 유대인들은 해마다 우리나라 음력 8월 또는 9월에 닿는 신년(로쉬 하샤나)이 되면, 열흘 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고, 또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동해보복법이란 피의 보복문화에 젖어 살던 2천 년 전 유대인들에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고 기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서를 가르치셨다.

주기도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쉐모네 에스레이의 결론 기도문, “나의 하나님이시여, 악으로부터 나의 혀와 또 거짓되게 말하는 입술로부터 보호하소서.”에서 발견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고 있었다. 늘 배교의 위협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신앙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가시밭길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길고 오랜 유대교의 쉐모네 에스레이보다 내용이 뛰어나면서 간략하여 암기하기 쉬운 모범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유대교의 기도문들을 대신하게 하셨다. 마태복음보다 20년 정도 늦게 같은 지역 시리아에서 기록된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 주기도문을 하루 세 번 하도록 지시한 것을 보아 주기도문이 하루 세 번하는 유대교의 쉐모네 에스레이의 대용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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