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마강16]새천년시대의 선포(마 9:35-10:3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0,747 2012.02.24 12:46

본문

[마강16]새천년시대의 선포(마 9:35-10:33)

천국복음운동의 지속성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에 대한 민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놀라기도 했고(9:33절), 두려워하기도 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9:8절), 그 소문을 전국에 퍼뜨렸다(9:26,31절).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면서 배척하였다(9:34절). 유대교 지도자들의 배척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곳곳을 다니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민중을 불쌍히 여기셨다(9:35-36절). 예수님은 이 불쌍한 민중을 구원하기에는 일군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며(9:37-38), 특별히 12제자들을 택하시어 파송하셨다. 새천년(천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천국은 일군들을 통해서 시작되고 발전된다. 예수님 한분의 능력이나 몇몇 사람의 능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수천 명에 달했다. 그중에 70문도와 열두 사도들이 있었다. 일의 진척에는 일군들이 필요하고, 그 일군들을 부릴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마태복음 10장은 이 지도자들을 뽑아 파송하시는 내용이다. 새천년시대를 알리는 출정식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은 마태가 예수님의 이 설교를, 마가나 누가가 했던 것처럼, 단순히 열두 사도들만의 선교훈련여행에 따른 말씀에 국한시키지 않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될 전 교회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지시로 확대시켰다는 데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일 따름이다. 그것은 마치 모세시대의 히브리인들이 자손대대로 모든 유대인들이 지켜야할 언약의 말씀을 후손들을 대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에서 받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0장은 단순히 열두 제자들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잠시 파송하시면서 행하신 설교로 제한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기간에 있었던 천국운동에서 뿐 아니라, 주후 30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출범되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지켜져야 할 지시들이다. 이점은 누가복음 9장 10절의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하였다”는 말씀과 마가복음 6장 30절의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였다”는 것과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에는 “내보내시며”(마 10:5)란 말만 있지,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보고했다는 말씀이 없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마태복음 10장의 기록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보다도 40절이나 더 길다. 긴 이유는 마태가 이 사건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즉 예수님의 공생애기간뿐만 아니라, 전 교회시대로 확대시키기 위해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없는 예수님의 긴 설교를 추가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복음서 저자들은 동일한 사건과 말씀일지라도 기록목적과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따라서 사건을 조금씩 다르게 보도하고 있다. 마가와 누가는 제자들의 선교활동을 일시적인 훈련으로써 또 그것을 세례 요한의 죽음과 연관시켜 소개하였지만, 마태는 열두 제자들의 선교활동을 일시적인 훈련이 아니라, 예수님 재림 때까지 지속돼야할 훈련으로 확대시켰다.

구약성경과 복음서의 차이

구약의 예언서는 예언자 자신과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벌어진 사건들(예: 외세침략과 망국)의 성찰을 통해서 자기시대의 사람들에게 회개와 회복에 관해 설교하였다. 이때 성찰의 표준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아 조상들에게 전달한 언약의 말씀이었다. 그 말씀의 핵심은 십계명의 1-2계명이다. 한편 복음서는 저자 자신과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벌어진 사건들(예: 신앙탄압과 이단침투)의 성찰을 통해서 자기시대의 사람들에게 신실한 믿음과 인내를 보상(회복)에 관한 내용으로 설교하였다. 이때 성찰의 표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선포하신 말씀과 행적이었다.

만일 모세오경이 계명의 전달자인 모세보다 후대에 기록된 글이라면, 기록의 목적이나 성격이 복음서와 같을 수 있다. 복음서는 저자시대의 상황만 알아도 되는 구약의 예언서들과는 달리, 예수님시대와 저자시대의 상황이 모두 파악돼야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세오경도 모세시대는 물론이고, 모세오경이 기록됐거나 편집된 시기의 정황이 모두 파악돼야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반면에 구약의 예언서들은 저자시대의 정황만 알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오늘날의 설교자들처럼,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본문에 상관없이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의 내용만 알면 되듯이, 예언서도 예언자가 전하는 내용만 알면 된다. 그렇지만, 모세오경이나 복음서는 모세시대나 예수님시대만 알아서는 충분치 않고, 저자들의 시대까지를 알고 저자들이 모세시대와 예수님시대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자기시대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려했는지를 알아야 충분히 이해한 것이 된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가 광개토왕이나 이순신 등에 관한 드라마를 시청할 때, 단순히 재미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자나 감독이 수백 또는 수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시대의 정치 군사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어떤 해답이나 길을 제시하려고 하는지를 잘 살피는 것이 드라마를 잘 시청하는 것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저자가 동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심지어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무엇을 교훈하려고 했는가를 파악해야만 마태복음을 잘 읽는 것이 된다.

역사에는 순수역사(historie)와 해석의 역사(geschichte)가 있다. 순수역사는 사건그대로의 보도 즉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조사탐구해서 보도한 사실적 기록을 말하고, 해석의 역사는 사건이 주는 교훈과 뜻, 또는 의미와 해석을 가미한 기록을 말한다. 연출의 유혹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는 보도자들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뉴스보도가 순수역사에 해당될 수 있다. 그리고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연구>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해석의 역사에 해당될 수 있다.

함석헌은 해석의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와 관련해서 골라진 사실들에 대한 뜻풀이라고 했고, 그 뜻풀이에 역사는 생명을 갖는다고 했으며, 역사가의 능력은 해석하는 힘에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잘된 역사책은 정신을 밝혀주는 글이요, 잘하는 역사독법(歷史讀法)도 정신을 읽어내는 해석에 있다고 하면서 “이 해석하는 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역사를 아는데 깊고 얕은 차이가 생긴다.”고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마태복음은 해석의 역사이다.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내용

마태복음 10장에 실린 지시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선교대상의 우선순위에 관한 지시이다. 제일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지시하셨다. 이것은 바울 일행이 심지어 이방인들의 거주지인 외국에서조차 선교대상의 제일 순위를 유대인들로 삼은 것과 같다. 마태복음 22장의 임금의 혼인잔치 비유에서도 우선적으로 초청을 받은 자들이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임금의 초청을 거절하였을 뿐 아니라, 임금의 보낸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임으로써 임금의 진노를 샀다. 임금은 준비된 잔치를 위해서 유대인들을 대신해서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게 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이방인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우선 배려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언급처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었다”(롬 11:12).

둘째는 선교내용에 관한 지시이다. 새천년왕국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되, 사회복지사역도 행하라고 지시하셨다.

셋째는 섬김의 방법에 관한 지시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와 새천년왕국을 위해 섬기라고 하셨다. 섬기는 자의 의식주는 섬김을 받는 자들이 공급하고, 섬기는 자는 그들을 위해서 평안을 빌라고 지시하셨다.

넷째는 장차 일어날 기독교 박해에 관한 지시이다. 늑대무리 가운데 들어간 양처럼 위태로울 것이므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지시하셨다. 누가 배교자가 될지, 누가 밀고자가 될지 모르니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셨고, 체포되어 고문당할 때에 이런 저런 말로 변명하려하거나 배교하지 말고, 믿음위에 굳게 서라고 지시하셨다. 그것이 오히려 박해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섯째는 박해의 잔악함에 관한 말씀이다. 고문의 잔인함은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만드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할 테지만,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을 포함해서 성경의 많은 부분이 박해시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은 성도들에게 신실한 믿음과 인내와 보상(궁극적인 회복)을 말씀하고 있다.

여섯째는 기죽지 말고, 복음을 담대히 외치되, 끝까지 인내하면서 박해를 요령껏 잘 피하라는 지시이다. 이것이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일곱째는 최후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지시이다. 박해자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고, 최후심판을 면하지 못할 자들이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지시이다. 두려워해야할 분은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32-33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복음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제한되지 않고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민중에게 들려주신 말씀들은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들이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