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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8]새천년시대를 여는 절박함(마 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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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080 2012.02.2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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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8]새천년시대를 여는 절박함(마 11:1-30)

절박함의 긍정성

여기서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도입된 배경은 새천년시대를 고대하는 민중의 절박함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새천년왕국시대를 개방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8-9장의 믿음과 10장의 당파성도 중요하지만, 11장의 절박함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과 절박함, 믿음과 당파성, 당파성과 절박함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믿음이 절박함을 키우기도 하고, 절박함이 믿음을 키우기도 하며, 당파성이 두 주인이 아닌 한 주인에, 두 장소가 아닌 한 장소에, 두 연인이 아닌 한 연인에, 중도가 아닌 한 집단에 몰입시키듯이, 믿음은 당파성을 키우기도 하고, 당파성이 믿음을 키우기도 하며, 절박함이 클수록 당파성이 커지고, 당파성이 클수록 절박함이 커진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는 하나이다.

5절에서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씀은 새천년시대의 개방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6절의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은 절박함만 있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신뢰하는 믿음도 예수님 편에 서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당파성도 없는 자는 새천년시대를 얻지 못하고 실족하지만, 절박함도 있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신뢰하는 믿음과 예수님 편에 서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당파성이 강한 자는 새천년시대를 얻게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모세를 불신한 히브리인들이 광야사막에서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나 하나님과 모세를 신뢰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은 것과 같다.

7-11절의 세례 요한에 관한 말씀은 메시아를 고대하는 민중의 절박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신 말씀이다. 민중의 절박함은 구원의 시기를 앞당기는 열쇠이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하신 말씀과 같다. 그들의 절박함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기억하셨다”(출 2:23-25)는 말씀과 같다. 히브리인들의 대 영광의 탈출, 곧 출애굽해방은 그들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였다.

국내 최고의 스타제조시스템을 갖춘 기획사들을 대표하는 SM의 보아, YG의 양현석, JYP의 박진영이 K팝 스타를 발굴하는 서바이벌에서 선택의 조건으로 삼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노래실력보다 무대에서의 절박함이나 간절함이다. 간절한 절박함이 바라는 것을 얻는 열쇠임을 심사위원들은 숨김없이 밝힌다. 정치인들 중에는 보수에 없는 절박함이 진보에 있다고 말한다. 우파에 없는 절박함이 좌파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절박함과 당파성이 2012년 대선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실제로 김대중 후보가 1998년에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전라도민들의 간절한 절박함과 좌파진보들의 당파성 때문이었다. 그들의 절박함이 또한 노무현 후보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16대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러나 지나친 절박함은 화를 부른다.

절박함의 부정성

예수님 시대의 가나안 땅의 상황에 대해서 신약성서는 몇 가지 암시적인 표현들을 쓰고 있다. 마태복음에서 그 땅을 “사망의 땅과 그늘”이라고 했고, 그 땅의 백성을 “흑암에 앉은 백성”(4:16),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백성(9:36)이라 하였으며, 그 시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 “표적을 구하는”(12:39) 세대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유대민중은 메시아를 기다렸고, 장차올 더 좋은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고통당하던 유대민중은 새천년시대를 열어줄 메시아를 절박함으로 기다렸다. 그 절박함이 때로는 화를 부른다. 바벨론에 멸망한 주전 586년 이후 유대 땅에서 세 번의 혁명전쟁이 있었다. 주전 167-164년의 마카베오혁명, 주후 66-73년의 제1차 유대전쟁과 132-135년의 제2차 유대전쟁이 그것들이다. 모두가 지배국의 탄압 때문에 일어난 혁명전쟁들이었다.

마카베오혁명은 성공한 혁명이었다. 하스모니안 가문의 유다 마카베오(Judah Maccabee)가 민족주의자 열심당원들과 바리새파의 전신인 경건한 자들(Chasidim)을 규합하여 탄압자인 셀류키드왕조의 안디옥쿠스4세에 대항하였다. 주전 167년에 시작된 혁명은 만 3년만인 주전 164년에 성공리에 끝났고, 유대교 금지령을 해제하는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예루살렘성전은 하나님께 재봉헌되었다. 이로써 유대인의 주권이 회복되었고, 주전 64년 로마제국에 망할 때까지 약 100년 동안 하스모니안 왕조가 국민을 통치하였는데,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망하고 1948년에 재건될 때까지 걸린 약 2,600년 동안에 이 100년이 유대인들이 누린 유일한 주권회복 기간이었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성공에 대한 향수와 절박함이 주후 66-73년의 제1차 유대전쟁과 132-135년의 제2차 유대전쟁을 촉발시켰고, 모두 실패로 끝났으며, 그들이 치른 대가는 지나치게 컸다. 그 후로부터 1948년 5월 14일 국가재건 때까지 무려 1878년간 유대인들은 본토에서 쫓겨나 세계를 떠도는 유민이 되었다. 혁명들이 실패한 다음 유대인들은 혁명가들을 모두 거짓 메시아로 단죄하였다. 그간에 출현한 유대인 거짓 메시아가 30명이 넘는다고 랍비들은 말한다. 예수님도 여기에 포함시킨다. 그리고 명성을 떨친 거짓 메시아에는 발 코크바와 샤베타이 제비가 있다.

민중이 광야에 나간 것은 세례 요한을 보려는 것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그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더욱 요동치게 할뿐이었다. 명품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명품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들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할뿐이었다. 위로를 구할 곳이 없던 민중이 보려고 했던 것은 메시아였다. 가진 자들과 통치자들은 메시아시대가 오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겠지만, 유대민중은 이미 600여 년간이나 그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가 예수님이 원했던 방식의 메시아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수님이 메시아 인자로서 민중에게 실현시켜 주고자 했던 ‘장차올 더 좋은 것’은 문자적이고 세속적이며 땅 중심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내세적이며 천국중심의 영원한 안식과 평강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의 이 차이가 갈등과 충돌의 원인이었다.

절박함의 보상성(補償性)

예수님은 실재했던 갈등과 충돌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피력하셨다. 이 갈등과 충돌을 잘 이해하려면 광야사막에서 있었던 모세와 히브리민족의 갈등과 충돌을 회상할 필요가 있다. 모세의 리더십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과 저항, 인간적인 욕구들의 분출들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고, 고통의 땅 광야사막에 묻히게 하였다. 피리소리에 춤추지 않는 자들, 슬피 울어도 가슴 치지 않는 자들,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일삼는 자들, 이렇게 해도 비판하고, 저렇게 해도 비판하는 자들, 이렇게 말해도 안 믿고, 저렇게 말해도 안 믿는 자들, 이런 자들이 광야사막시대에 모세를 불신하고 저항했던 자들과 동일한 패거리이다. 가나안 땅 정복대열에 끼지도 못하였고, 또 땅을 얻지도 못하였던 자들처럼 예수님을 불신하고 저항하는 자들도 새천년왕국을 얻지 못할 것이다. 18-19절에서 예수님이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뜻이 여기에 있다. 어리석은 그들이 심판 날에 소돔성처럼 무너질 것이란 말씀은 모세를 대항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했던 자들의 멸망과 같을 것임을 암시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 새천년왕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하셨고,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하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만이 안식처인 하늘 가나안 땅에서 새천년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암시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하늘 가나안 땅에서 참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러므로 28-30절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12절의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귀 있는 자가 들어야할 이 말씀의 심오성은 무엇인가? 히브리인들이 광야사막시대를 끝내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로 들어갈 때, 주인이 없어 비어있는 땅에 조용히 들어가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목숨 걸고 침노하여 치열하게 싸워서 쟁취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가나안 족속들은 정탐꾼들에게 메뚜기 콤플렉스를 갖게 할 만큼 강성하였다.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두 명의 족장들 가운데 갈렙과 여호수아를 뺀 열 명의 족장들은 자신들이 가나안 족속들에 비교해서 메뚜기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과 자신들을 비교하지 않았고 현실의 높은 벽에 짓눌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했다.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었다. 그 결과 갈렙과 여호수아는 소망하던 가나안 땅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한 시대를 풍미한 진정한 영웅의 대접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족장들은 그들을 추종했던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죽어 사막에 묻히고 말았다. 믿음과 절박함으로 무장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을 “우리의 밥”이라고 했다. 새천년시대의 정복자들은 총칼로 무장하지 않고, 예수님 편에 서는 신실한 믿음과 당파성과 절박함으로 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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