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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9]새천년시대에서의 새 질서(마 1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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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874 2012.02.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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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강19]새천년시대에서의 새 질서(마 12:1-50)

새 질서에서의 안식일 법

복음서에는 안식일 논쟁에 관한 기사가 많다. 예수님과 유대교인들 사이에 안식일 논쟁이 뜨거웠고, 기독교 안에서조차 이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안식일준수는 하나님의 명령으로써 제4계명에 근거한다(출 20:8-11).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계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첫째,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를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는 것을 말한다. 둘째, 이 날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출 20:10절). 셋째, 이 날에 하지 말아야할 일은 창조행위(Melacha)를 말한다. 천지창조 때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째 날에 안식하셨기 때문이다(창 2:2).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멈추셨던 것처럼 인간들도 안식일에는 모든 창조행위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창조행위의 범주를 39가지로 이해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이 침묵하기 때문에 랍비들이 출애굽기 31-35장에 언급된 성막(Mishkan)건축에 필요한 39가지 공정에 착안하여 만들었다. 성막구조는 우주의 축소판이고, 성막제조는 창조행위를 상징하므로 그 같은 창조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으로 본다.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은 안식일 법이 39개가 아니라, 39가지 범주라는 점이다. 따라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은 수백 수천 가지가 될 수 있다.

마태복음 12장 1-8절에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이 문제된 이유는 ‘자르기’나 ‘꺾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자르기’(Kotzair) 금지법은 안식일에는 땅에서 나서 자라는 것을 가지나 잎 하나도 뽑거나 잘라서는 안 된다는 법이다. 예수님께서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사건을 언급하신 것은 새천년시대의 새 질서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 랍비들이 만든 안식일 법보다 우선된다는 새로운 사상을 선포하신 것이다. 또 “성전보다 더 큰 이”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란 말씀은 메시아 인자가 새천년왕국에 필요한 새 질서를 선포하시는 분이란 뜻이다. 메시아시대에는 성전예배의 온전한 회복을 비롯해서 새로운 질서가 도입될 것을 믿는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또 9-13절에서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친 것이 문제된 이유는 예수님께서 ‘매듭풀기’(Matir) 금지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3장 10-17절을 보면,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고치시고 나서, 분을 내며 책망하는 회당장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안식일에 묶인 것을 푸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시아 인자가 통치하시는 새천년왕국의 새 질서에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은 일”이 되며, 질병에 시달리며 사단에게 매여 살아온 사람들을 안식일에 풀어주는 것이 합법적인 일이 된다.

새 질서의 배척자와 수용자

새천년시대의 새 질서에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안식일 법보다 사람이 우선되고, 살림의 일이 우선된다. 그러나 새 세상이 도래하고 새 질서가 선포되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거세진다. 잃게 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은 새 세상을 원치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한 이유는 그들이 메시아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칼 한 자루 몸에 지니지 아니한 예수님을 반란자로 죽이려한 이유는 예수님이 메시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직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아니란 것을 아신 예수님은 너무 성급히 당신의 신분이 노출되시는 것을 경계하셨다. 때가 무르익기도 전에 혁명을 원하는 자들로부터 왕이 되어달라는 요청에 시달릴 염려 때문이었다. 종국에는 유대인들의 배척으로 새천년시대가 이방인들의 것이 될 것을 예견하셨다. 또 새 질서에서의 새 안식일 법은 새천년왕국의 시민들이 될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였다.

예수님께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은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심지와도 같았던 이방인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자비가 미쳤고,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구원의 은총을 수용하여 새천년왕국의 선민들이 될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22절의 “그 때에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에서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은 이방인들의 대표이며,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새천년시대를 보고 말하게 될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또 23절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그 이름을 드높일 자들도 이방인들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반면에 바리새인들과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새천년시대의 새 질서를 철저히 거부하고 배척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치유능력과 축마능력마저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서 비롯됐다고 깎아내렸다. 이에 예수님은 “사탄이 만일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므로 가당치 아니한 일이며,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선교활동이 새천년시대의 개방을 재촉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편에 설 것을 완강히 거부한 자들이고, 악한 자들이며, 나쁜 열매를 맺는 자들이기 때문에 금생과 내생에서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고 또 새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임을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복음서에서 안식일 논쟁은 유대교와 기독교, 옛 언약시대와 새 언약시대, 옛 질서와 새 질서, 율법과 복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하듯이, 새천년시대에는 새 질서가 필요하다. 그것이 복음이요, 살림의 일이며, 빛의 일이고, 질서의 일이며, 생명의 일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바치는 일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살림의 일을 본받고, 빛과 생명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새 질서의 성격

새 질서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며, 일곱 귀신으로 인하여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된 세대이다. 예수님께서 “요나보다 더 큰 이”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언급하신 이유는 메시아 인자가 새천년왕국에 필요한 새 질서를 선포하시는 분이란 뜻이다. 요나는 고기뱃속에서 구원받고 니느웨 성민을 회개시킨 선지자이며,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자이다. 유대교인들은 다가올 새천년왕국이 예루살렘성전중심의 신정국가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에 성전을 지은 솔로몬을 위대한 인물로 본다. 그들보다 더 크신 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새 질서를 세우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또 새천년시대의 새 질서에서는 혈통이나 혈연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에 좌우된다. 따라서 예수님은 48-50절에서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고 말씀하셨다. 새 질서를 수용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 없이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식구가 되지만, 새 질서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종족이나 피부색깔에 상관없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자녀들이 된다.

예수님은 39절에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하셨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하였다. 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는가?

유대민중이 세례 요한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던 것은 그가 메시아인가를 보려는 것이었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표적을 보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누가 참 메시아인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잣대 곧 메시아의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 잣대 또는 조건이 바로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이었다. 일찍이 이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보였던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모세는 하늘로써 만나를 내려 먹게 했고, 엘리야는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나 엘리야가 행했던 것처럼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보일 자를 기다렸다. 그 같은 표적을 행하는 자라야 비로소 메시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대인들의 정서가 복음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새천년시대에서의 새 질서의 성격을 밝히는 말씀이다. 새천년시대를 개방시킬 메시아가 세우실 새 질서는 빵의 일이나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이다. 이 세대가 악하고 음란한 이유는 사람들이 빵문제 해결이 아니면, 도무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빵문제에 집착하는 자들은 천국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눈먼 소경과 같아서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다. 빵문제에만 집착하는 자들은 값진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와 같아서 땅에 버리고 짓밟게 된다.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의 가치를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세우신 새 질서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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