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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빌 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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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350 2010.06.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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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빌 2:12-18)

헬리콥터 부모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란 말이 있다. 1991년 뉴스위크지의 네드 제먼이 처음 소개한 말로써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자녀가 처리할 일을 대신해주는 부모 혹은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학교와 교사에게 간섭하는 부모를 말한다. 문제는 부모의 과보호아래서 성장한 아이들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에 있다. 과보호를 받는 아이들조차도 그들이 '마마보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현명한 부모가 필요한 때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 한국 대(對) 그리스, 한국 대(對) 나이지리아 경기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나선 차두리 선수는 우리나라가 원정 16강에 오르는데 제몫을 해줬다. 이후 네티즌들은 차두리 선수가 차범근 감독의 로봇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퍼뜨렸는데 그 인기가 높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차두리 로봇 설계도'이다. 이 설계도를 닉네임이 ‘럭키2인자’인 한 네티즌이 그렸는데, 차두리를 “모델명 차미네이터, 신장 181cm, 체중 대외비”로 소개하였다. 절반은 인간으로, 나머지 절반은 로봇으로 묘사된 이 설계도에는 차범근 감독이 차두리 선수를 조정하기 위해 뇌에 무선 공유기를 달아 차범근 감독과 자동으로 연결되게 하였고, 비밀번호는 과거 차범근 감독 부자가 CF모델로 광고했던 00700 국제전화 할인번호로 지정하였다.

닉네임 '럭키2인자'는 차두리가 힘들 때나 기쁠 때 항상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로봇의 화면보호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등번호 22에 대해서는 차두리 로봇을 운영하는 운영체제(OS) 버전이 2.2이기 때문이며, 안드로이드폰 운영체제를 빗대어 '차드로이드'로 이름을 지었다. 차두리 선수의 원래 등번호는 11번이었는데, (이는 콘센트 구멍 내지는 UBS를 꽂는 구멍이었으며,) 22번으로 바뀐 것은 110V에서 220V로 업그레이드 됐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밥을 먹으면 보약으로 바꿔 체내에 저장하는 것이 로봇 차두리의 체력 보충방법이라고 설명하였고, 동물인 치타와 톰슨가젤의 줄기세포배양 근섬유를 이식받아 일반인의 5배, 빅리그 선수의 2배 이상의 스피드를 낼 수 있다는 비밀까지 공개하였다. 또 차두리 선수가 빡빡머리인 것은 태양열로 작동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소개한 차두리 로봇설은 웃자고 꾸민 이야기에 불과하며, 콩트에 불과하다. 네티즌들은 이런 재미있는 콩트를 통해서 한국 선수들의 원정16강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리들 가운데 혹시 헬리콥터 부모와 같은 하나님, 우리를 로봇처럼 배후에서 조종하는 하나님, 자녀를 자기의 분신 또는 아바타로 여겨 배후에서 조종하는 부모처럼, 우리를 배후에서 100퍼센트 컨트롤 해주실 하나님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현명한 부모라면 자녀들을 마음대로 조종하기보다는 코칭을 통해 독립심을 키워줄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자녀인 성도들을 매사에 간섭하고 조종하시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독립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를 원하지 않으시겠는가?

유대인들의 역사의식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떠돌이 또는 노예로까지 비하할 정도로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구약성서에서 보듯이 그들은 하나님과의 매우 특별한 관계를 설정해놓고 그 관계 속에서 매우 특별한 역사인식을 갖는다.

구약성서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보통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무엇, 그것을 아이러니라고 불러야 할지, 역설이라 말해야 할지가 잘 구별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고 복 주실 것에 대한 약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복에 대한 약속은 겉으로만 볼 때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식의 하나인 우리 민족은 떠돌이요, 노예였다는 것과는 아주 상반된다. 아브라함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짧게는 215년, 길게는 430년간 이집트에 얹혀살면서 어느 시점부턴가는 노예 신세로 바뀌게 되었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정복에 성공한 이후에는 잦은 외침에 시달렸으며, 결국 북왕국이 주전 722년, 남왕국이 주전 586년에 각각 강대국에 패망하고 말았다. 망국이후의 역사는 주후 70까지 각각 차례대로 바벨론제국과 페르시아제국과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에 편입되어 속주민의 운명으로 살아야 했으며, 주후 70년 이후부터는 1948년 5월 14일 나라를 재건할 때까지 무려 1878년간 제 나라 땅에서 살지를 못하였다. 통틀어 2,600여 년간 세계를 떠도는 유랑민족으로서 때로는 노예로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했던 불운한 민족이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비극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주후 70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남의 나라를 떠돌던 1878년간 무려 1,2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이 같은 비극을 일컬어 그들이 과연 복 받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아주 특별한 관계 속에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으며, 복을 약속받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유대민족의 비극사가 역사인식에 따라서는 아이러니일 수도 있고, 역설일 수도 있다. 겉으로만 보면 아이러니요, 속까지 깊숙이 보면 역설이다.

이토록 오랜 수천 년의 비극사를 가진 유대민족을 무시하거나 위대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고 가장 큰 비극사를 가진 유대민족을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이 현실이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왜 유대인들은 위대한가? 물질의 복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비극에 직면해서도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지 않고 지속시키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에 대한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그것들을 성취시켜갔기 때문인가? 유대인들의 위대함은 아브라함 때로부터 3,800여 년 동안 한시도 그들의 꿈과 희망을 접지 않았고,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오히려 더욱 그들의 희망(하티크바)인 다가올 세계(올람하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키워나갔으며, 그들의 종교, 문화, 축일, 관습, 교육 모든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더욱 굳건히 세웠기 때문이다. 과거 수천 년에 걸친 불행했던 역사의 어느 한순간에서조차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중단하거나 멈춘 적이 없다. 이것이 유대인의 역사의식이다. 그들에게 역사는 단지 하나님의 시험무대요 경륜의 장이였을 뿐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시험무대

2010년은 6.25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란 책에서 박현은 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상이 죽고, 준비가 없고, 꿈과 이상이 없고, 중국을 크게 보는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함석헌 선생은 6.25의 발발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소홀히 취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6.25는 임진왜란 때와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가운데서 발생했고, 북침하겠다는 기상이나 의지는 고사하고, 북의 남침에 대비할 기력조차 갖지 못했다고 했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많이 혼이 나고서도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이 과거의 실패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역사는 하나님의 시험무대이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38선은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시험하려고 낸 시험문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8.15해방 직후에 38선이란 남북분단의 아픔을 주신 것은 자유와 통일이 얼마나 중한가를 깨닫고 스스로 그 선을 넘어보라는 것이었고, 그만큼 학대받고 천대받았으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일제 36년 동안 자유가 귀하다는 것을 배웠으면 통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뭉치지 못한데서 고난이 온 것이요, 고난은 뭉치라는 가르침인데, 그것을 깨닫고 제대로 시행하는지 알아보자는 것이 38선이었다는 것이다. 38선은 물과 같아서 나눠질 수 없는 것인데, 남북이 꽁꽁 얼어붙어 있으니까 나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6.25발발 60주년인 금년에 남북관계가 최고조로 경색되었다. 금강산관광객피살, 개성공단직원구금, 천안함폭발사고로 이어진 남북관계는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달했고, 개성공단만이 실낱같은 명맥을 잇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참전국의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대결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가는 북한을 바꾸려는 것이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더 나아가 남북 공동번영과 평화통일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다. 한편 대통령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지금의 남북관계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며 대통령께 그 해법을 건의했다고 한다. 그 해법의 한 가지가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이며,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단절은 북측의 경제손실뿐만 아니라, 남쪽의 손실도 만만치 않게 클 것이라고 한다. 긴장이 고조되면 해외수주가 끊기게 될 것이고, 남한이 금강산, 개성공단, 평양 등지에 투자한 시설과 사업권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고 한다.

역사는 하나님의 시험무대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의 말씀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꿈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데 그 소원을 우리 안에 두고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꿈이 60년이나 지났다고 해서 포기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나타났다. 그 뜻을 이뤄야할 몫은 우리 국민의 것이다. 하나님은 헬리콥터 어버이가 아니시다. 오히려 여러 시험들을 통해서 자녀들을 단련시키시는 현명한 분이시다. 시험에 통과하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바타도 로봇도 아니다. 하나님은 때로 특별 은혜(계시)를 주시지만, 우리는 보편적인 은혜(계시)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특별 은혜와 보편적인 은혜 속에서 길게는 3,800여년, 짧게는 2,600여 년간 그들의 희망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역사는 하나님의 시험 무대이다. 우리가, 우리 가족이, 우리 교회가,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우리의 희망은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실패와 실수가 없으시며 반드시 우리의 꿈을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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