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갈 6:6-10)
본문
하나님의 은혜(갈 6:6-10)
일반은혜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하나님의 일반은혜 속에서 살아간다. 일반은혜란 하나님께서 선인과 악인에게 고루 주시는 혜택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연법칙이다.
자연에 법칙이 있다는 것은 질서가 있다는 뜻이다. 질서란 혼돈과 우발의 반대이므로 예측과 과학을 가능케 한다. 기술과학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법칙은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다. 자연법칙이 진화된다거나 바뀐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자연법칙이 진화하거나 바뀐다면 믿고 신뢰할 법칙이 될 수 없다. 하루가 24시간이고, 일 년이 365일인데, 어느 날 갑자기 하루가 15시간으로 바뀌고, 일 년이 200일로 짧아진다든지, 하루가 30시간이 되고, 일 년이 400일로 늘어난 때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 우주에는 일정한 법칙들이 존재한다. 이 법칙들에 의해서 별들이 움직이고, 사계절과 밤낮이 생기고 생로병사가 존재한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계시 또는 일반은혜라 부른다. 이 우주를 만드신 절대자의 개입 없이 자연법칙들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술과학문명이 가능한 것은 이 드넓은 우주에 일정한 질서가 있기 때문인데, 그 질서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자연법칙 가운데 한 가지가 인과법칙이다. 인과법칙이란 원인 없이는 결과도 없다는 존재의 필연법칙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집이 있는 것은 누군가가 그 집을 세웠기 때문이다. 시계가 있는 것은 누군가가 그 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해와 달과 별이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과에는 우연은 없다. 저절로 집이 세워지거나 우연히 시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과 같다. 우리는 그 최초의 원인자를 일컬어 신(神) 또는 창조주라 부른다. 이 인과법칙을 통해서 창조주 신(神)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일반계시 혹은 자연계시라 부른다. 또 신(神)의 창조와 자연법칙의 혜택을 누구나 선인이든 악인이든 고루 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반은혜라 부른다. 우리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들을 이 하나님의 일반은혜 속에서 보낼 뿐 아니라, 자연법칙 혹은 인과법칙 속에서 산다.
사람들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자연법칙이요, 인과법칙이다. 콩 심었는데 팥 나는 일 없고, 팥 심었는데 콩 나는 일 없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고,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을 거둔다. 그래서 성경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한다.
물질이 있으면 반물질이 있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이것은 물리법칙인 동시에 관계법칙이다. 열심히 산 사람에게 선한 결과가 주어지고, 좋은 일을 행한 사람에게 복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남보다 더 크게 입게 된다.
특별은혜
하나님의 일반은혜가 물질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항상 공평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연법칙 속에는 먹이사슬과 적자생존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고 말씀하셨다. 이런 점에서 타고난 것과 타고나지 못한 것 사이에 생기는 행불행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회가 되지만 또한 위기도 된다. 타고난 것이 분명 기회지만, 그것이 위기가 되기도 하고, 타고나지 못한 것이 분명 위기지만, 또한 그것이 기회가 되기도 한다. 타고난 것과 타고나지 못한 것 모두에 있는 기회를 살리고, 위기를 극복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신 시험문제이다. 그래서 역사를 하나님의 시험무대라 부른다.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이 원정 16강을 자국민 감독아래서 이뤄냈다. 몇 년 전 읽었던 <이규태 칼럼>에 따르면, 서양 사람은 발재간을 타고나고, 동양 사람은 손재간을 타고난다고 한다. 서양 사람이 동양 사람보다 축구를 더 잘 하는 것은 축구가 발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은혜에 속하는 데 그것이 서양 사람에게는 기회요, 동양 사람에게는 위기이다. 그러나 그 위기를 극복한 한국과 일본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8강 또는 4강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만일 서양 사람들이 분발하지 않는다면, 가까운 장래에 동양 사람들에게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인류역사상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가장 적게 누린 민족이 유대민족이다. 땅덩이도 작고,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소수 민족인데다가 그들이 발붙이고 살던 땅의 대부분이 산간지역이어서 농사에도 적절치 못했다. 사막기후인데다가 강수량이 적어서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다가 주변국들의 잦은 침략으로 과거 3,800여 년간 고통과 설움을 혹독하게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토록 오랜 아픔의 시간들 속에서 불굴의 투지를 불사를 수 있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3,800여 년간 누린 하나님의 특별은혜 때문이다.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일반은혜의 혜택을 가장 적게 누린 민족인 동시에 하나님의 특별은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민족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은혜란 특정한 사람이나 민족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를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계약의식(구약이라 부름)을 치렀고, 계약의 말씀으로 받은 계명들(모세오경에 담겨 있음)을 철저하게 지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대인들이 3,800여 년간 간직하며 누려온 하나님의 특별은혜의 핵심은 희망과 미래이다. 하나님이 약속한 복에 대한 희망의 끈을 유대인들은 120대(代)가 넘도록 자손 대대로 이어가고 있다. 자기 대(代)에서 그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또는 자기 조상들의 대에서 그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그들의 희망을 후손들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유대인들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특별은혜를 고통과 신음 속에 있는 자기 대(代)에 이뤄져야할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먼 미래세대까지를 전망했다는데 위대함이 있다.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의 일반은혜와 특별은혜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개입여부에 있다. 하나님의 일반은혜는 하나님의 특별개입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하나님이 최초에 부여하신 자연법칙에 따라 또는 지질과 기상의 변화에 따라 지구상의 만물이 생성 발전 쇠퇴 멸망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무신론자들이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자연신론자들이 하나님의 개입을 부정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개입을 철저하게 믿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대표적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우주만물의 먼 배후에서 팔짱낀 채 보고만 계시지 않고, 지구상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고 관여하시며, 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내리신다. 신구약성서는 하나님이 인간들의 삶 속에 개입하시고 관여하신 사실들을 기록한 책이다.
성서시대를 산 사람들의 삶은 현대인의 삶과 많은 차이가 있다. 현대인들의 일상은 직업이 있든 없든 퇴직을 했든 안했든 너무 바쁘고 분주하다. 모임도 많고, 볼거리 먹을거리 눈요기 거리도 많아서 좀처럼 시간을 쪼개서 경건의 시간이나 기도회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왜 우리는 다윗이 쓴 시편처럼 깊은 영감의 찬양시를 쓸 수 없는가? 왜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던 세대들의 신앙인들이 쓴 찬송가를 여전히 불러야하는가? 그들에 버금가는 영감이 가득한 찬양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현대인들의 영성이나 신앙의 깊이가 그들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김은석 목사의 삶을 보면, 그는 앉으나 서나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교회에 있거나 안방에 있거나 다락방에 있거나 하루의 대부분을 성경읽기, 전도하기, 기도하기, 집회인도로 보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시대만큼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를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묵상과 명상의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의 개입사건은 구약성서의 출애굽 사건과 신약성서의 성육신 사건이다. 출애굽 사건은 모세에 의해서 이뤄진 하나님의 대 구원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성육신 사건의 예표와 모형적인 사건이라 부른다.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은혜 혹은 특별계시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굴 무덤에 장사되셨으나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셨다. 우리는 그분을 구세주라 부른다. 하나님은 그 분을 믿는 자들에게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보증과 인침의 표시로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다. 비록 지금 우리는 떠돌이 나그네로 이 땅을 살지만, 가까운 장래에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상속자들이다. 이밖에도 하나님은 여러 형태의 복을 약속하셨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이 약속을 먼 미래의 후손들에까지 전망하고 있는지, 혹시 고통 중에 있는 지금 나의 대(代)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절망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진지한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점은 자신의 삶의 질곡에 갇혀 허덕일 뿐 미래가 없다는데 있다. 희망이 없다는데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들이 반드시 우리 대(代)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꿈이 없다는, 미래가 없다는, 희망이 없다는 증거이다. 여러분의 꿈과 희망을 먼 미래세대에까지 전망하는 역사의식이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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