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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시작(막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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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959 2010.08.0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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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시작(막 1:1)

세 번째 희망

마태복음 1장 17절의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는 이스라엘 왕국의 출범과 발전기를 말한다. 이스라엘 왕국은 아브라함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모세가 싹을 틔어 다윗이 통일왕국의 열매를 맺게 하였다. 그리고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는 왕국의 쇠퇴기와 멸망을 말한다. 솔로몬사후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북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망한 후 136년 만에 남유다 왕국도 망하였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는 노예와 떠돌이였던 아브라함이후 모세 때 품었던 첫 번째 희망처럼 포로기시대의 예언자들은 새로운 희망 또는 두 번째 희망을 품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희망의 싹을 틔운 분이 모세였다면, 두 번째 희망의 싹을 틔운 분은 예수님이었다. 이 두 번째 희망의 시작, 곧 새천년의 시작을 마태복음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였고,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복음서가 선포한 새천년의 시작은 유대인들이 바라는 세속 국가가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 곧 그리스도의 교회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박해 받고 있던 성도들에게 두 번째 희망의 완성이자, 세 번째 희망의 시작인 천년왕국 또는 신천신지를 선언하였다. 이 세 번째 희망의 시작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영원한 세계로써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이후 지금까지 희망하고 있는 나라와 비슷한 세계이다. 이 영원한 나라는 영적인 동시에 부활했거나 영광스런 몸으로 변형된 성도들이 영원토록 살게 될 신천신지로 변모한 자연세계요, 새 예루살렘을 포함한 신령한 가나안 땅이다.

180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신약성서교회운동과 교회연합운동의 배경을 보면, 세 번째 희망인 새천년시대의 도래를 확신하는 믿음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리스도인의 교회운동과 교회연합운동을 젊어서 시작하여 죽는 순간까지 펼쳤던 발톤 스톤은 새천년시대에는 모든 교파명의 교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한 가지 이름아래서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였다. 그의 이런 희망 때문에 1804년 6월 28일 스프링필드 장로회가 <<유언서>>를 남기고 해체되었다. 교파들이 해체될 때, 계시록 20장에 예언된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스톤은 노예해방운동도 활발하게 펼쳤는데, 천년왕국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스톤은 그리스도인의 교회 운동, 교회연합운동, 노예해방운동을 <<그리스도인 전령>>(Christian Messenger)이란 월간지를 통해서 펼쳤는데, ‘그리스도인 전령’이란 새천년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뜻이다. 알렉산더 캠벨도 7년간 지속됐던 월간지 <<그리스도인 침례자>>(Christian Baptist)를 폐간하고, 그 대신 1830년부터 <<천년시대의 선구자>>(Millennial Harbinger)란 이름의 월간지를 사후 4년까지 40년간 발행하였다. 알렉산더 캠벨은 기독교 본래의 순수성과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새 천년시대를 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서 신약성서교회 운동을 선구자로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처럼 스톤과 캠벨은 자기들 시대에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 새 천년시대의 전령 또는 선구자를 자임하면서 개혁운동, 곧 신약성서교회로의 회복운동을 펼쳤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거룩한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번째 희망

아브라함이 나이 일흔 다섯에 가나안 땅을 희망한 이후 그 첫 번째 희망을 가시적으로 성공시킨 인물이 모세였고, 다윗왕국이 멸망당하고 가나안 땅을 빼앗긴 이후 예언자들이 가나안 땅의 회복을 희망한 이후 그 두 번째 희망을 가시적으로 성공시킬 인물이 그리스도이신데, 그 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라는 것이 복음서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두 번째 희망의 시작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 마가복음 1장 1절이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복음이란 기쁜 소식을 말한다. 왜 기쁜 소식인가? 그것이 다윗왕국이 멸망당하고 가나안 땅을 빼앗긴 이후 예수님의 공생애 출범 때까지 612년간이나 오래 묵은 두 번째 희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브라함이 나이 일흔 다섯에 가나안 땅에 대한 희망을 품은 이후 출애굽까지에 걸린 시간이 짧게는 430년, 길게는 645년이었다. 유대인들은 짧은 430년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시작이란 새로운 시작, 다가올 좋은 세상의 시작, 새천년의 시작을 말한다. 그 시작이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시대였다. 그리고 복음은 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의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것은 마치 이집트에서 노예로서 눈물과 고통의 세월을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어 그들을 가나안 땅에로 인도하시겠다고 선포한 기쁜 소식과 같고, 모세의 영도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첫 번째 희망인 가나안 땅의 시대, 즉 새천년시대를 활짝 연 것과 같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란 바로 새 희망 곧 두 번째 희망의 시작을 말한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예수님의 탄생 시점은 다윗왕국이 완전히 멸망당하고 가나안 땅의 희망이 처참하게 짓밟힌 지 무려 580여년 만이었다. 모세가 이집트에 등장한 시기처럼 예수님의 등장시기역시 흑암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모세 때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의 노예였던 것처럼, 예수님 때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압제를 받고 있었다. 이 압제는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에로 6백년이 넘도록 대물림되어 온 것이었다. 실로 그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었다(마 4:16). 또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자들이었다(마 9:36). 특히나 마가복음이 기록되던 시기는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처참하게 짓밟히고 붕괴된 후에 왕과 백성이 유배지로 끌려갔듯이, 그로부터 656년만인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붕괴되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당하던 시기였고, 동시에 로마에서는 극심한 기독교 박해가 네로에 의해서 저질러지던 시기였다. 이뿐 아니라, 당시의 세계는 끊임없는 전쟁과 혼란과 가난과 전쟁노예들로 인해서 가정이 붕괴되고 도덕과 윤리와 기강이 무너진 시기였다. 이런 당대의 로마시대를 다루고 있는 영화가 <로마>라는 시리즈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마가는 로마의 기독교박해 현장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알리고 있고, 새로운 희망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듯이 예수님의 등장은 실로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희망의 빛이었고, 복음의 시작이었다.

희망의 시작

이어령 박사가 나이 일흔이 넘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것과 그가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한국의 지성사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이어령 박사는 젊은 날 날카로운 펜촉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를 앞세워 니체와 같은 무신론을 주장했던 지성인이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지성에서 영성으로 나아갔다. 왜 그랬을까? 그에게도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있었고, 그 속에서 구원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불어 닥친 시련은 오히려 그의 인생에 새로운 희망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었다.

이어령 박사는 세례를 받은 후 변화에 대해서 “과거 오류로만 보였던 성경이 지금은 구슬을 꿰듯 새롭게 읽힌다.”면서 “그동안 누군가에게 몸을 맡겨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외로운 삶인가. 혼자 바들바들하면서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불쌍했다. 가장 사랑하는 내 딸도 얼마나 쓸쓸했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면서 세례 받을 당시의 심경을 고백하였다. 그는 또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예로 들면서 “세례 받기 전까지 나는 토끼 인생이었다. 나는 잘났고,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거북이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왔고 얼마나 많은 것이 부족했었는지... 인간의 오만을 버리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가장 큰 변화다”고 말하였다. “저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지식과 돈이 너를 구하지 못했다. 정말 네가 주 안에서 편안함을 얻었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나의 무력이 증명된 것이 아니냐. 내가 이 무력함에 매달려 지금까지 살았구나. 동행하자. 지금 자신은 없지만 네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본 빛을 나에게도 보이게 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 이어령 박사를 변화시킨 딸 이민아 씨는 지금은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지만, 원래는 미국의 변호사였다. 1992년에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고,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나 암이 재발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 아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판명나면서 이민아 목사는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신의 몸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아들에게까지 문제가 생기자 그녀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이주하였는데, 이번엔 그녀가 망막이 손상돼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하와이로 달려간 이 박사부부는 눈이 안 보여 설거지도 못할 정도가 된 딸을 보고 마음이 타들어 갔다고 한다. 이때 이 박사는 한 교회에 엎드려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후 이민아 변호사는 병 고침을 받았고, 이 박사는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세례 받은 지 3주 만에 이 변호사의 큰 아들인 25세 된 유진 씨가 돌연사하는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시련을 극복하고 목사가 되어 LA에서 청소년 치유사역을 하고 있다. 시련은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란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어령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기적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 기적은 구제의 표시이지 목적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기적이다’라고 떠들면서 믿으러 오는 사람들을 아주 슬픈 눈으로 쳐다보셨습니다. 진짜 ‘만나’를 보라고. 영원히 죽지 않는 빵을 보라고 말입니다.”고 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복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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