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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열매(요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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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119 2010.08.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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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열매(요 1:1)

희망을 이루게 하는 믿음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의 말씀은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의 말씀이다.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꾸는 변화의 말씀, 기적의 말씀이다. 태초의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독생자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 인류가 의지할 궁극적인 희망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Logos)를 번역한 말이다. 요한복음은 이 로고스가 사람에게 빛을 주고, 생명을 주는 독생자 하나님이시며, 그분을 믿는 믿음이 만들어내는 변화,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변화를 일곱 개의 표적들로 설명하였다.

첫째,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2:1-11). 이 표적은 유익한 변화, 건설적인 변화, 부족을 채우는 변화, 분위기를 쇄신하는 변화,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는 변화였다. 모친 마리아에게서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타난 다음, 물이 맛좋은 포도주로 바뀌는 변화가 나타났다.

둘째,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셨다(4:46-54). 특히 유대인 니고데모, 사마리아인(절반 유대인) 여성, 이방인 왕의 신하한테서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타난 다음, 구원에 이르는 중생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 세 인물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남녀노소, 민족, 신분의 차별이 없음과 그것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다(5:1-18). 이 표적은 복음적 사고(思考), 유신론적 창조사고, 살림과 열림의 사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병자에게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타난 다음, 38년이나 된 고질병이 낫는 변화가 나타났다.

넷째,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빈들에서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셨다(6:1-15). 이 표적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영생을 얻는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민중에게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타난 다음, 그들의 굶주린 배가 채워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다섯째,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셨다(6:16-21). 이 표적의 특징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들이면 폭풍이 몰아치는 죽음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는다는데 있다. 제자들에게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타난 다음, 제자들을 밤새도록 괴롭힌 파도와 바람이 잔잔해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여섯째, 예수님은 타고난 맹인을 고치셨다(9:1-7). 예수님은 흑암에 빛을 주시는 분이시다. 맹인에게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타난 다음, 타고난 맹인의 눈이 떠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일곱 번째,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11:17-44). 나사로의 가족에게 변화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타난 다음, 무덤에 묻힌 나사로가 살아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처럼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음은 우리의 희망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다.

희망의 꽃

아브라함이후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희망은 가나안땅이다. 유대인들이 노래하는 희망(Ha-Tikvah)은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자유민이 되는 것이다. 천사도 믿고 부활도 믿는 유대인들이 있었고, 종교색채를 강하게 띠기 때문에 그들이 노래하는 희망에 영적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들의 희망은 지상의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 점에 의문을 품고 근본에 접근한 것이 기독교이다. 떠돌이와 노예로 시작한 유대인들은 안정된 주거를 보장하는 땅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아브라함이후 가슴에 품었던 가나안땅의 희망을 이뤘고, 다윗 때는 통일왕국의 위용을 세웠지만, 영원하리라 믿었던 다윗왕국은 무너졌다. 이후 아주 오랜 세월동안 유대인들은 많은 제국들의 흥망성쇠의 부침의 역사를 보아왔고, 그 속에서 웃고 울었다. 그런 중에서도 유대인들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가나안땅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14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소수 유대인들이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믿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수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세속적인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2천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아브라함의 희망을 다르게 해석하였다. 영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의 실체와 근본으로 보는 헬레니즘의 영향도 있었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본 것은 이 지상에는 영원한 안식처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원한 평화, 영원한 왕국, 영원한 안식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따라서 영원히 지속될 다윗왕국의 회복을 희망하는 유대인들의 메시아 관(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에,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예수님이 나타나 천국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영원한 평화, 영원한 왕국, 영원한 안식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짧은 기간에 그분을 추종하는 작은 세력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비로소 왜 그분이 그리스도이신지, 왜 그분이 유대인들이 그토록 희망했던 메시아였는지를 숙고하였다. 그들은 알렉산더 대왕보다 더 위대한 영웅이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등장한다 해도 팔레스타인을 통치했던 셀류키드 헬라왕조(312-64 BC)가 248년 만에 붕괴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땅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결국 알렉산더와 같은 영웅을 희망하는 유대인들이 꺼려하고, 빛의 세계에 이르는 길(지혜 또는 지식)을 찾는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 생명과 영생을 얻는 길이요, 희망을 참되게 꽃피우는 길이란 것을 전파하였다.

요한복음에는 ‘믿고’와 ‘믿는’이란 단어가 ‘생명’과 ‘영생’이란 단어와 함께 대단히 많이 쓰이고 있다. 요한복음이 쓰인 목적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생명과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3:15-16, 20:31). 인류의 궁극적인 희망은 영원한 생명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 희망을 꽃 피우고, 희망의 열매인 영원한 생명과 영생을 얻는 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임을 요한복음은 밝히고 있다.

희망의 열매

인간의 희망에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요한복음에서 희망의 열매는 생명 곧 영생을 말한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믿음’에 관련한 단어가 포함된 구절이 85절이나 된다. ‘영접’이 7절, ‘생명’과 ‘영생’이 합해서 35절, ‘구원’이 6절, ‘하나님’이 68절, ‘그리스도’가 18절, ‘세상’이 56절, ‘나라’가 4절이나 된다.

56절에나 포함된 ‘세상’이란 단어는 영생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 즉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나라를 말한다. 이 나라는 예수님이 가르친 천국과 크게 차별되는 나라이다.

이 세상은 빛의 세계에 반대되는 어둠의 세계이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빛을 배척하는 세계이다(3:19). 빛을 배척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배척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8:12).

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한다고 하셨다(15:19). 그러나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죽이려고 하였고(5:18),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19:15-16). 그러나 그들이 죽인 예수님은 육신덩어리에 불과하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63)고 하셨다. 또 빌라도에게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18:36)고 하셨다. 따라서 요한복음에서의 가나안땅은 지상의 땅이 아니라, 히브리서나 계시록에서 말하는 것처럼 저 천국에 있는 가나안땅을 말한다.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1:12)이라야 한다. 또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17:3) 자들이어야 하고, 믿는 자들이어야 한다(3:16, 6:47).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11:25-26)고 하였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20:29)고 하였다.

다른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11:25-26)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33)고 하셨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6:27)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희망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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