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완성(계 21:1-4)
본문
희망의 완성(계 21:1-4)
하늘 가나안땅(천국)
계시록이 말하고자 한 것은 희망의 완성이다. 계시록에는 두 가지 가나안땅이 나온다. 한 가지는 하늘 가나안땅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가나안땅이다. 여기서 하늘 가나안땅은 임시적이고 유한한 제1차 희망의 완성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의 가나안땅은 영원한 제2차 희망의 완성이다. 하늘 가나안땅은 낙원세계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의 가나안땅은 말 그대로 신천신지의 세계이다. 하늘 가나안땅이 임시적이고 유한한 이유는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때까지, 즉 주의 재림 때까지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 가나안땅은 지상세계가 존재할 동안만 필요한 곳이고, 지상세계가 끝나는 주의 재림이후에는 하늘 가나안땅과 지상세계가 통합되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지상과 낙원의 구분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만 존재하게 된다.
계시록은 주님 재림이전 세계인 하늘 가나안땅과 지상세계의 대 환난과 대 구원에 대해서 1장부터 19장에서 설명하고 있고, 주님 재림이후 세계인 신천신지와 불 못에 대해서는 20장부터 22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계시록 이해의 핵심은 지상세계 특히 가나안땅과 예루살렘과 시온에 있는 것이 하늘 가나안땅에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반대로 하늘 가나안땅에 있는 것이 지상 가나안땅에도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계시록에서는 천국에도 가나안땅이 있고, 예루살렘이 있으며, 시온이 있고, 성전이 있으며, 보좌가 있고, 장막이 있으며, 제단이 있고, 등대가 있으며, 향로가 있다. 이런 것들은 다 히브리민족의 가나안땅에 있었던 것들이다. 땅에 있는 것이 천국에 있는 이유는 땅의 것들은 천국의 것들의 그림자요 모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을 잘 알려면 구약성경을 잘 알아야하고, 하늘의 것을 잘 알려면 땅의 것을 잘 알아야한다는 사실을 교훈한다.
계시록에 ‘보좌’란 말이 35개의 절에 나온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지성소이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이동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서편에 언약궤(법궤 혹은 증거궤)가 있었다. 당연히 천국에도 성전이 있고, 지성소가 있고, 언약궤가 있다. 계시록 11장 19절을 보면,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하였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는 지성소의 보좌를 말한다. 언약궤가 곧 보좌이다. 그리고 언약궤의 뚜껑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시은소이다. 언약궤 속에는 하나님의 토라 즉 율법의 말씀이 들어있기 때문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엄을 상징한다.
광야시대의 이동성막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한 대로 만들어졌다. 하늘의 것을 모형과 그림자로 지상에 보여주신 것이다. 광야시절 이동성막의 언약궤 위로 구름기둥이 솟았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준 계시였다. 땅의 것을 보고 하늘의 것을 알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보이는 땅의 것(유한한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영원한 것)을 이해한 지혜와 영감은 예수님이후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어졌다.
하늘 가나안땅의 중심
구약성경에 하늘 가나안땅(천국) 개념이 없다. 보이는 땅의 것에 희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이다. 39권의 구약성경은 페르시아제국시대에 기록이 끝났고, 적어도 동시대까지는 지상의 가나안땅이 유대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고, 안식처였다. 보이는 땅의 것(유한한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영원한 것)을 이해할 지혜와 영감이 그때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의 교회 신앙인들은 유대인들이 지상 가나안땅을 희망하는 것만큼 하늘 가나안땅을 희망하였다. 그곳이 더 좋은 세상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는 하늘 가나안땅 개념으로 가득하다. 하늘 가나안땅(천국)에는 지상 가나안땅의 좋은 것들이 다 있지만, 지상 가나안땅의 나쁜 것들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면, 사랑, 기쁨, 평안, 안식, 감사는 물론이고, 각종 좋은 보화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반면, 미움, 슬픔, 번뇌, 노동, 불평은 물론이고, 배고픔과 각종 질병과 자연재해는 하늘 가나안땅에서 찾아 볼 수 없다.
하늘 가나안땅의 중심은 성전이다. 유대인들은 성전중심의 신정국가를 희망하고 있다. 하나님은 히브리민족이 광야에서 장막을 칠 때는 이동성막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진을 치도록 지시하셨다(민 2:2). 이 지시대로 하늘 가나안땅에는 성전을 중심으로 지성소에 하나님의 보좌(언약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 네 생물(케루빔 천사)이 있으며, 보좌 앞에 하나님의 일곱 영과 보좌를 둘러선 24장로들이 있고, 네 생물과 24장로들 사이에 어린양 예수님이 있으며,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수를 셀 수없는 천사들과 또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계 5:13)이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
하늘 가나안땅은 예배중심이다. 계시록 4장에서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찬양과 경배를 돌려보내고 있고, 5장에서는 네 생물과 24장로뿐만 아니라, 그들을 빽빽하게 둘러선 수를 셀 수 없는 천사들까지 합세하여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돌리고 있다. 그리고 5장 13-14절은 종합적으로 온 우주만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 모두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돌리고 있다.
찬양의 내용은 이렇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시며,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이시고(계 4:8), 만물을 지으셨으므로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계 4:11). 또 그리스도께서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들 가운데에서 믿는 자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바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아 땅에서 왕 노릇하게 하셨으므로(계 5:9-10),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계 5:12). 이것이 우리가 하늘 가나안땅에서 부를 찬양의 내용이다.
지금 우리가 바치는 예배와 찬양은 하늘 가나안땅에서 드리는 완전한 예배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또 현재 우리의 삶은 하늘 가나안땅의 삶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중심은 하나님의 성전과 보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는 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을 수도 있고, 가정과 교회에 있을 수도 있다. 어디에 있든 간에 하나님의 보좌가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은 경배와 찬양이 되어야 한다.
신천신지(영원한 통합세계)
계시록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백성의 희망의 성취이다. 왜 희망이 성취될 수밖에 없는가와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를 환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희망이 성취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주신 분이 오류나 실수가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신천신지라는 영원한 세계를 마련해 놓고 계신다.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를 계시록 7장, 21장, 22장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사는 곳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기 전에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성도들과 함께 하셨지만, 인간들이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존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모든 인간은 거룩한 몸으로 변형된 완전한 모습을 갖춘 깨끗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이 성도들의 집과 함께 있게 되며, 하나님은 성도들과 함께 살게 된다(계 21:3-4).
둘째,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친히 빛을 비추는 곳이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밤이 없고, 해와 전기가 필요 없는 곳이다(계 22:5).
셋째,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계 22:1), 생명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곳이다(계 22:2). 새 하늘과 새 땅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는 곳이다(계 7:16). 정리해고나 부도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넷째, 새 하늘과 새 땅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사 65:18). 새 하늘과 새 땅은 눈물이 없고, 슬픔이 없는 곳이다(계 21:4).
다섯째, 새 하늘과 새 땅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곳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해함이 없고 상함이 없고(계 22:3; 사 65:25), 질병이 없고, 죽음이 없는 곳이다(계 21:4).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놀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는 곳이다(사 65:25).
여섯째, 새 하늘과 새 땅은 깨끗하고 건전한 생각만 하는 곳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의 실수나 잘못이 마음에 생각나지 않는 곳이다(사 65:17; 계 21:4).
일곱째,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성도들이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 하는 곳이다(계 22:5). 새 하늘과 새 땅은 남에게 지배를 받거나 고용 당하지 않는 곳이다. 이밖에도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튼튼하고,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고, 보석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으로 임한 새 예루살렘성에서 보호받으며 안식하게 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좋은 곳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무나 막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돈 많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머리 좋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잘났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 들어가 땅을 차지할 상속자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이며, 최후까지 믿음을 지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을 올린 자이다. 또 어린양의 피로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이다. 신약성경은 마태복음에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궁극적인 희망의 시작과 완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 거대한 역사의 주인공들로서 희망을 성취할 하늘 가나안땅의 상속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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