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요한일서 4:7-21)
본문
간디의 경험
간디를 변화시킨 것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한 가지 사건이 안타깝게도 영국 기독교인의 편견이었다.
간디는 학생 시절에 신약성경을 진지하게 읽었고, 영향도 많이 받은 터라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고려했었다고 한다. 간디는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인도에서 사람을 차별하는 고약한 계급(카스트)제도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께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간디가 예배당에 들어서자 안내원은 그에게 자리에 안내하기를 거부하며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예배드릴 것을 권했다. 그러자 간디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민족과 신분의 차별이 있고, 남녀노소빈부의 차별이 있다면, 그냥 힌두교에 남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만 발길을 돌려 버렸다. 훗날 간디는 “나는 예수는 좋아하지만, 예수를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리고 간디는 끝까지 힌두교에 남아 있으면서 남에게는 그 어떤 종교도 강권하지 않는 종교다원주의자가 되었다.
간디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로서 사랑(비폭력)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인 진리이며, 신(神)에게로 가는 길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경전을 고집하거나 전통을 맹목적 또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인은 아니었다. 간디 자신은 오랜 역사 속에서 힌두교가 끌어들인 오류들과 폐해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힌두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자기 아내에 대한 감정에 비교해서 설명하였다. “내 아내는 이 세상의 어느 여자보다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렇다고 내 아내가 아무런 결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내 눈에 띄는 것 이상의 결함을 내 아내는 가지고 있다고 단언해도 좋다. 그러나 아내와는 끊을 수 없는 연분을 느낀다. 그 온갖 결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에 대해서도 그렇게 느낀다.”고 말하였다.
간디를 변화시킨 또 다른 사건들은 간디가 변호사 개업을 막 시작한 무렵에 발생하였다. 어려움에 처한 형의 간청으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면(知面)이 있는 영국인 주재관을 찾아갔다. 그 주재관은 간디의 청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하인을 시켜 간디를 밖으로 내쫓았다. 분개한 간디는 그 주재관을 고소하려고 했지만, 영국인을 고소해봤자 신세만 망친다는 뛰어난 변호사의 충고를 듣고 “마치 독배를 드는 듯이 괴로웠다”고 술회하였다.
간디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를 떠나 남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거기서 간디는 위촉받은 소송사건 때문에 기차를 타야 했다. 도중에 유색인종은 1등 칸에 탈 수 없다며 백인 차장이 간디를 외진 산간 역에 내동댕이쳤다. 지역은 남아프리카였지만 고지인데다가 겨울이어서 몹시 추었다. 등불도 없는 대합실에서 뜬눈으로 지새우며 간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일련의 이런 사건들은 간디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의 인생행로를 인도인을 위한 비폭력운동의 독립운동가로 바꿔놓게 하였다. 간디가 겪었던 차별과 시련은 오히려 간디에게 자유와 해방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들을 쟁취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주었다.
간디의 사상과 실천
간디는 인도의 독립과 복지향상을 위해서 한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실천적 인물이었다. 간디의 실천의 근거는 그가 진리와 사랑(비폭력)의 법이라 불렀던 도덕법칙에 일관되게 의존하였다.
간디는 종교인이었고, 그의 인생철학의 핵심도 종교였다. 그러나 그의 종교는 인습적이거나 전통적인 것은 아니었고,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탐구와 정신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간디는 종교적인 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이성과 실천을 통해서 검증하고, 또 그것을 정신적 사회적 경험에 비추어서 재해석하였다. 그 결과 간디는 종교의 본질은 도덕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간디가 목적으로 삼고 추구한 것은 “신(神)을 눈앞에 보기 위한, 즉 구원을 얻기 위한 자기실현”이었다. 그러나 간디의 종교의식은 개인이 구원을 얻기 위한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의와 평화를 얻기 위한 예언자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동포를 위한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서 신(神)을 구했다. 그는 신이 진리라 믿던 것을 진리가 신이라고 바꿔 믿었다. 도덕을 종교생활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던 것을 종교의 본질이 도덕이라고 바꿔 믿었다. 진리(사티아)와 사랑(아힘사)은 꼰 새끼와도 같아서 나눌 수가 없어서 “진리 없는 사랑은 맹목이요, 사랑 없는 진리는 공허하다”고 하였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에게는 자기감정과 욕망을 억제시키고, 자신을 육신의 제약에서 해방시켜줄 어떤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을 간디는 사랑과 비폭력(아힘사) 속에서 발견하였다. 그것은 외적인 힘이 아니라, 내적인 어떤 힘으로써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의 힘’과 ‘성령의 법’에 가깝다.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는 순결(브라마차리아)과 비소유(아파리그라하)를 준수함으로써 일반적으로는 사나운 격정을 누르고, 특수하게는 성욕과 소유욕을 억제하기 위하여 사랑의 힘(기독교의 성령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순결,’ ‘자제,’ ‘자기 정화’를 위해서 모든 감각기관과 말, 생각, 행위일체의 통제가 필요하고, 성욕의 억제와 미각의 통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성욕은 육체적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수의 아기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만 써야한다면서 10대 초반에 결혼한 간디는 30대부터 부부생활을 단절하였다.
소유는 장래를 위해 필요한 것인데, 조물주는 그날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므로, 만일 우리 각자가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그 이상은 취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간디는 그가 깨달은 이후로 순결과 비소유를 주장했고 또 실천했지만, 그의 핵심사상과 실천은 사랑과 봉사였다. 사랑과 봉사만이 신(神)에게로 나아가는 즉 진리와 구원을 달성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신(神)의 실현인 만큼 인간의 온갖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활동은 신(神)을 본다는 궁극적인 목적에 의해서 인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온 인류에 대한 직접적인 봉사가 인간의 노력의 불가결의 임무가 된다. 그 이유는 신(神)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은 신(神)을 그의 피조물 속에서 보고, 그것과 하나가 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온 인류에 대한 봉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간디는 말하였다.
간디의 이상(理想)
간디의 이상세계를 '라므라자'(Ramraja)라 부르는데, 이는 신(神)이 다스리는 또는 순수한 도덕의 권위에 따르는 이상사회로써 종교적이다. 미국의 ‘아미쉬’ 그리스도인들처럼 자급자족에 기초한 단순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하며, 일체의 근대문명과 사유재산을 거부한다. 국가와 정부, 군대와 경찰, 철도와 기계, 병원과 의사, 법관과 변호사 등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간디가 추구한 이상세계는 비폭력에 기초한 무정부 농촌사회였다.
간디의 후계자 네루는 개인과 민족 전체에게 간디가 주고 간 최대의 선물은 공포심(아바야)을 갖지 말라는 것,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실 영국의 지배아래서 인도는 숨 막힐 것 같은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간디는 침착하고 결의에 찬 말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쳤다. 왜냐하면 공포심을 갖고서는 진리도 자유도 그 밖의 고귀한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공포심을 버리자 인도 민중에게는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을 모욕하고 타락시킨 외국지배에 그토록 오랫동안 굴종해온 사실을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단코 굴종하지 않겠다는 욕구가 생겼다. 두려움을 극복한 인도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다음의 증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완벽한 침묵 속에서 줄지어 걷던 간디의 사람들은 철조망에서 90여 미터(100야드)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선택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열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철조망 가까이 다가섰다. 갑자기 20여 명의 원주민 경찰들이 정지선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달려들며 강철을 입힌 곤봉으로 마구 머리를 쳐댔다. 그러나 시위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곤봉을 막으려고 팔을 들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볼링 핀처럼 무너졌다.... 얻어맞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자세로 쓰러져 갔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 두개골이 깨진 사람, 부서진 어깨의 고통 때문에 몸을 비튼 채 쓰러진 사람....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열을 이탈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며 얻어맞고 쓰러질 때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 모두가 몇 분 후면 얻어맞아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망설임이나 두려움의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고개를 당당하게 든 채 휘청거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루이 피셔의 [마하트마 간디의 삶], 1952>
비록 종교는 달랐지만, 간디는 예수님의 생애와 그리스도인이었던 톨스토이에게서 많은 지혜를 얻었다. 예수님이 묵묵히 지신 십자가가 얼마나 위대한 행위였는가를 안 사람이 간디였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힘인가를 안 사람이 간디였다. 그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몸소 실천하신 사랑과 봉사라고 믿었다. 순결과 비소유라고 믿었다.
요한일서 4장 18-21절은 다음과 말한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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