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톨스토이(마 25:31-46)
본문
레오 톨스토이(마 25:31-46)
톨스토이의 경험
톨스토이는 명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나(1828.9.9)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소년시절 감수성이 예민했고, 공평치 못한 일에 공분했으며, 도덕적 완성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20살에 대학교육에 실망을 느껴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가 지주로서 영지 내의 농민생활을 개선하려 하였으나, 그의 이상주의는 실패로 끝나고 잠시 방탕생활에 빠졌다가 24살에 군에 들어가 포병대 장교로 복무하였다. 이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이름을 내기 시작하였다.
한편 조정원(調停員)으로서 농민과 지주와의 분쟁을 중재하거나, 노동현장에 내몰린 농민의 자녀들을 모아 학교를 설립하기도 하고, 혹은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의 발행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어느 것에서도 본래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30대 초반에(1857~62) 두 차례 외국 여행을 하였으나 발달한 도시문명에 환멸을 느끼고 귀국하였다. 이 무렵에 결혼(1862)하여 가정생활과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다. 이후 42세에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1869)의 연재를 끝냈고, 이어 49세에 <안나 카레니나>(1876)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無常)으로 심하게 정신적인 동요를 일으켜, 과학ㆍ철학ㆍ예술에서 해답을 구하려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이때가 그의 전향기(轉向期)로써 53세에 <교의신학비판(敎義神學批判)>(1880), 54세에 <요약복음서>(1881), 55세에 <참회록>과 <교회와 국가>(1882), 57세에 <나의 신앙>(1884) 등 신학과 믿음에 관련된 글들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톨스토이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한편 그는 자신의 톨스토이주의와 동일한 신념을 18세기 중엽부터 실천하고 있던 ‘두호보르’ 기독교 교단이 정부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고 국외로 추방당하게 되자 그들(4천여 명)의 캐나다 이주비용을 조달할 목적으로 72세에 그 유명한 <부활>(1899)을 발표하였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무교회주의를 표방하며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하였으므로 74세 때인 1901년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破門)을 당하였다.
톨스토이는 당대의 러시아정교회가 민중에 무관심 한데 실망한 나머지 원시(사도행전) 기독교에 환원하여 동포주의와 인도주의를 표방하였고, 노동, 채식, 금주, 금연을 통해서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였다. 또 비폭력 무저항주의와 사랑과 관용(용서)의 정신으로 세계평화와 복지에 기여하려했으며, 정치적으로는 온갖 허위와 부패를 배격하는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는 당시의 사회제도와 도덕생활 양식에 도전하여 이를 남김없이 부정하고, 끝내는 자신의 모든 특권들까지도 포기하였다. 55세 때인 1882년에 모스크바의 한 빈민굴을 시찰한 이후부터는 그의 생각이 종교와 윤리문제에 뿐 아니라, 사회제도에까지 미쳤다. 그러나 58세 때인 1885년에는 사유재산을 부정함으로써 부인과 충돌이 잦았고,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하였으며, 그의 저작권 일체를 16살 아래의 부인이 관리하였다. 톨스토이는 가정생활의 모순을 해결할 한 가지 방법으로 83세(만 82) 때인 1910년 10월 29일 이른 아침 장녀와 주치의를 데리고 집을 떠나 방랑자의 길에 올랐으나 11월 7일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현 톨스토이역)의 역장 관사에서 11월 20일 숨을 거둠으로써 고뇌와 파란의 생애를 마쳤다.
톨스토이의 개혁사상과 실천
톨스토이는 젊어서 영지 내의 농민생활을 개선하려는 이상을 품었고, 노동현장에 내몰린 농민의 자녀들을 모아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교과서를 집필하였고, 교육 잡지의 발행을 시도한바 있다. 50대에 접어들어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하였고, 원시 기독교 정신에 환원하여 평화주의, 동포주의, 인도주의를 표방하였으며, 노동, 채식, 금주, 금연을 통해서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였다. 또 비폭력 무저항주의와 사랑과 관용(용서)을 주장하였으며, 모든 공권력을 부정하는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표방하였다. 톨스토이는 또 당대의 사회제도와 도덕생활에 도전하였고, 모스크바의 빈민굴을 시찰한 이후로는 사회제도 개선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사유재산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 개혁사상들은 번번히 현실문제에 막혀서 제대로 실행되지를 못하였다. 이로써 그를 위선자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고, 이런 자기모순을 해결할 한 가지 방법으로 가출했다가 객사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부유한 귀족이었으나 러시아 봉건사회의 현실을 농민의 눈으로 묘사한 작가였다. 러시아의 변혁을 그 누구보다 열망하였으며, 농노교육과 농노해방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는 역사의 참 주인공이 야망이나 자기주장과는 거리가 먼 겸허한 민중임을 입증하려 했고, 귀족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서 대다수 민중들이 가난하다고 비판함으로써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출판되지 못하기도 했다.
톨스토이에게 인생은 선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선의 실천은 인생의 목적이며, 모든 사람이 달려가야 할 목표였다. 그리고 이것을 달성하게 할 수단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또 사랑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므로 지금 당장 실천하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무가치한 것이며, 미래의 행복도 없다고 하였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서 살면 안 된다고 하였다.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이 자기행복만을 생각하게 되면, 그 희망이 다른 사람의 희망과 충돌하기 때문에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하였다.
톨스토이의 사랑은 소설 <부활>과 여러 민화들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로 나타났다. "어느 누구도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사람을 처벌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수백 번이고 용서하는 길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소설 <부활>의 남자 주인공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읽는다. 산상수훈대로만 실천한다면, 폭력은 사라지고,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즉 지상천국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톨스토이는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과 전쟁수행을 위한 군대의 공권력을 포함한 모든 폭력에 반대하였다. 정부나 공권력 없이 인간사회가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모든 폭력에 대하여 우리가 취할 태도는 “남들이 내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청교도적 금욕주의를 실천하려고 애썼던 인생의 교사로서, 일생을 사람은 왜 사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문제와 씨름하였고, 그 해답을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찾았다.
톨스토이의 신념
톨스토이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과 죄인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복음서의 가르침이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불러올 뿐, 미움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믿었다. 이 사랑과 용서가 톨스토이가 쓴 민화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대자(代子)>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와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에 나타난 메시지이다.
톨스토이는 총 23개의 민화를 썼다. 이들 가운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있다. 톨스토이는 이 글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은 사랑이고, 주지 아니하신 것은 내일 일어날 일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유는 알지 못하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주어진 사랑을 오늘 당장 여기서 실천하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톨스토이는 <대자>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사랑의 실천이다. 악은 악 때문에 눈덩이처럼 커지고, 악은 책망하면 할수록 더욱 크게 번진다는 것이다. 악은 악으로 다스려지지 않고, 사랑으로 다스려진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신념이었다. <대자>에 등장하는 곰 사냥이야기는 ‘악은 악 때문에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숲 속 넓은 초원 큰 소나무에 무거운 통나무를 가지에 매달아 늘어뜨려 놓고 통나무 밑에다 꿀통을 놓아둔다. 그러면 곰들이 나타나 코를 벌름거리며 꿀통으로 다가가 코끝을 처박고 꿀을 핥는다. 그러다 보면, 소나무에 매달려 있던 통나무가 곰들의 몸에 닿아서 조금씩 움직이게 되고, 곰들을 성가시게 한다. 그래서 곰이 통나무를 멀찌감치 밀쳐버리게 되면 사태는 악화된다. 곰에게서 멀어졌던 통나무는 여지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곰의 머리나 등을 때리기 때문이다. 통나무에 얻어맞고 물러섰던 곰은 화가 나서 이번엔 통나무를 더 힘껏 더 멀리 밀쳐버리게 되고, 그네처럼 멀리 밀려갔던 통나무는 더 큰 힘으로 되돌아와서는 그 순간에 꿀통에 다가선 곰을 전보다 더 세게 쳐서 쓰러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한 놈이 통나무에 맞아 죽게 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다.
톨스토이는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에서 가난하고 또 혼자되어 외롭게 살지만 정직하고 성실하며 신앙심이 깊은 구두 수선공 마르틴이 가난한 노인에게 따뜻한 차를 여러 잔 대접한 일, 배고파 우는 아이를 안고 추위에 떠는 애기 엄마에게 빵과 수프를 대접한 일, 할머니에게서 사과를 훔친 사내아이를 달래서 용서를 구하게 하고 화해를 시킨 일이 마르틴에게 그날 나타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주님께 행한 일들이었다고 말한다. 주님께서 마르틴에게 나타나서 말씀한다. “마르틴, 마르틴,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누구를요?” “날 말이다. 아까 네가 만났던 노인은 바로 나였어.” “추위에 떨고 섰던 애기와 엄마도 나였어.” “싸우고 있던 할머니와 사내아이도 나였어.” 마르틴은 성경을 펼친 후 다음의 성구를 읽는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이전글 디트리히 본회퍼(마 8:18-22) 10.10.25
- 다음글 다산 정약용(행 20:17-35) 10.10.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