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사 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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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사 40:3-5)
마르틴 루터 킹의 생애
1982-8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스보로 시(市)에서 느꼈던 인상은 꽤 충격적이었다. 아브라함 링컨이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하지 120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십 수 년 전인 1960년대 이후 미국 남부지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권운동의 흔적들에 적의 놀랐던 것이다. 노예해방선언에 따라 자동적으로 모든 흑인들이 자유를 누렸을 것으로 알았지, 미국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노예해방이 선언된 지 100여년이 넘도록, 인종차별이 자행되고 있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해봤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80년대 미국에서 직접 경험했던 당시 흑인들의 노예근성이 노예해방선언이후 120년이 넘도록, 왜 그토록 오랫동안, 근절되지 못하고 있었는가를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종차별을 불법화 시키고, 공공장소와 공공시설에서의 인종차별을 완전히 사라지게 한 것, 괄시와 천대를 받던 흑인들을 각성시켜 마침내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게 한 것은 비폭력주의로 흑인민권운동을 펼친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의 공적이었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토록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은 노예해방선언 일백주년기념 워싱턴평화행진 행사 때 수도 워싱턴 광장에 운집한 25만 참가자들과 수백만 텔레비전 시청자들 앞에서 34살 때 행한 연설이었다. 마르틴 루터 킹의 열정과 신념, 호소력 넘치는 언변과 화려한 수사, 그의 예언자적 면모에 힘입어 미국 민권운동은 비로소 그 절정까지 치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1968년 4월 4일 투쟁을 펼치던 멤피스 시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서른아홉의 나이로 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29년 1월 15일 생으로써 15세 때에 대학을 입학하였고, 22세에 신학대학원을 마쳤으며, 25세에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의 덱스터 애버뉴 침례교 목사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26세 때인 1955년에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1일 로자 파크스 흑인 부인(당시 42살)이 버스 안에서 흑인은 뒤쪽으로 가야한다는 흑백분리법규에도 불구하고 백인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체포되자, 마르틴 루터 킹은 파크스 부인의 공판날짜인 12월 5일부터 버스승차거부를 전개하자는 성명서를 내고 수많은 위협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381일간 승차거부를 진행시켜 관련 시조례가 위헌이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얻어냈다. 이 와중에 자택이 괴한에 폭파 당했고, 구금되기도 하였다. 이후부터 1968년 암살당하기까지 13년 동안 민권운동기구인 남부 그리스도교지도자회의 의장으로서 수없이 겪어야 했던 고뇌와 좌절과 또 언젠가는 암살당하고 말 것이라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흑인들과 무산계급인 백인들의 아픔과 고통의 십자가를 영웅적으로 짊어지고 가시밭길 그 험한 투쟁의 길을 걸었고,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갈망과 미래의 희망과 비폭력의 힘으로 흑인대중을 이끌어 평등과 자유의 나라 가나안 땅에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모세처럼 그가 꿈꿨던 가나안땅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가 죽고 18년이 지난 1986년에 미 의회의 결정에 따라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킹 목사의 탄생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밀어붙이는 힘(pushing power)
공관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짧은 생애 부분 중에 갈릴리를 출발하여 예루살렘에로 향하는 여정을 주요내용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누가는 복음서 9장 51절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라는 글을 적고 있다. 여기서 “승천하실 기약”이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한다. 누가는 19장 44절까지 통틀어 10장, 전체 내용의 42퍼센트를 예수님의 이 예루살렘에로의 여행에 할애하고 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순례의 목적지, 또는 어떤 목표지점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야하는 예수님이 도달해야할 정점은 골고다였다. 그러다보니까 공관복음서 모두가 예루살렘에로의 여행과정에서 예수님이 겪는 죽음에 대한 번민과 짊어져야할 십자가의 과중한 심적 무게를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 곧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때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붙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막 14:34)라고 하실 만큼 번민이 가득하셨다. 그리고 여러 차례나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음이 잔칫집에 즉 세속적인 성공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기지 못하였다.
이점에 있어서는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바울 역시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고린도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올 때,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붙고 있음을 여러 채널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도들이 바울더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그렇지만 바울도 예수님처럼 죽음이 매복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루살렘에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의 생애와 사도행전에 실린 바울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면, 박해자들의 탄압이 그들을 죽음에로 몰아붙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해자들의 탄압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푸싱파워’(pushing power)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박해자들의 탄압이 예수님을 여지없이 골고다로 몰아붙여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함으로써 그들을 죄에서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처럼, 또 초대교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탄압으로 흩어지게 하시고, 탄압으로 바울을 도시에서 도시에로 계속해서 도망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시고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어 복음이 땅 끝까지 도달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푸싱파워’ 즉 박해와 탄압이 죽음의 사자처럼 예수님과 바울의 삶에 따라붙었고, 그로 인해서 비록 그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짓눌렸지만,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게 하시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마르틴 루터 킹도 탄압으로 인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번민에 시달렸고, 여러 번 동지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지만, 오히려 자기를 죽음에로 몰아붙이는 그 힘을 민권운동에 역이용하여 여러 번 목적을 달성하였다. 마르틴 루터 킹에게 있어서 백인들의 탄압은 불더미에 기름을 끼얹듯 그의 민권운동에 불을 더 크게 키웠다. 그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그를 탄압하는 이 푸싱파워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간디에게도 만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불살라 억울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큰 뜻을 이뤘다.
마르틴 루터 킹의 신앙과 사상
마르틴 루터 킹이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뒤 독기 서린 전화 세례와 자신을 살해하려는 흉계가 모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에 빠져 밤이 맞도록 식탁에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여, 여기 이 낮은 데서 옳은 일을 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여, 비틀대며 머뭇거리는 중입니다. 용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제 모습을 보게끔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저 혼자서는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곳까지 와 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르틴 루터, 공의를 위해 일어서라. 정의를 위해 일어서라. 진리를 위해 일어서라. 그리하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겠다.” 그 후로 마르틴 루터 킹은 10여년 세월의 죽음의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 킹은 비폭력 사랑의 힘으로 백인들을 끝내 이기게 될 것으로 확신하였다. 경찰들이 풀러놓은 사나운 개들과 곤봉세례와 소방호스에 또는 백인 자위대의 야구 방망이와 쇠사슬세례에 처참하게 두들겨 맞고 찢기고 터지고 부러지고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와중에서도 마르틴 루터 킹은 끝까지 비폭력의 힘을 믿으며 다음과 같이 역설(力說)하였다.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증오의 세력을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부에 사는 모든 백인 형제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견뎌내는 힘으로 고통을 가하는 당신들의 힘과 겨룰 것이라고.... 우리 집 안에 폭탄을 던지십시오. 그래도 우리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당신들 가슴과 양심에 호소합니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우리는 당신들을 끝내 이길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희망을 피력하였다. “승리를 거두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너무나 큰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승리의 순간이 올 것입니다.” 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또 “저는 (죽는) 그날이 오면 마르틴 루터 킹은 자신의 인생을 남을 돕는 데 바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마르틴 루터 킹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일생 동안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일생 동안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제가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역시 간디나 본회퍼나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편하게 살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엘리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제 몸을 불사르게 내주었던 그의 생애는 오늘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숭고한 열정을 가진 한 인간의 힘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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