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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베푸시는 주님(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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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806 2010.11.1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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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베푸시는 주님(살전 5:16-18)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다. 첫 번째 기적이 오병이어의 표적이다.

우리 각자가 80년 동안 한 달에 일백만 원씩만 쓰고 산다고 해도 평생에 쓰고 가는 돈이 9억 6천만 원이나 되고, 여기에 주택마련비와 교육비 등을 합하면, 10억 원이 훌쩍 넘는다. 자료들을 찾아보면, 보통사람이 일생동안 먹고 입고 교육받고 결혼하고 집 장만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0억 정도는 족히 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만일 수도권에다 집을 마련해야한다면 수억에서 수십억이 더 소요된다. 자료를 보면, 일인당 자녀 교육에 드는 비용이 1억, 노후생활에 필요한 돈이 최소 3억으로 나와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런 엄청난 비용을 우리가 실제로 쓰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이런 엄청난 비용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주고 계신다. 심지어 죽으면 장례비까지 계산해 주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 저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먹고 입고 쓸 것을 주시고, 직업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다. 두 번째 기적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신 표적이다.

헬렌 켈러의 수필, “3일만 볼 수 있다면”을 보면, 첫째 날에는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과,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과 아이들의 순진하고 사랑스런 얼굴과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책과, 충직한 강아지의 눈동자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동녘의 떠오르는 태양과 연극관람과 아름다운 율동과 영롱한 별빛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과 영화감상과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한 후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헬렌 켈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것들을 아직까지 보지 못하신 분이 있는가?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에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 많은 것들을 멀쩡한 두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헬렌 켈러는 이런 소경들, 즉 눈은 뗬지만 정작 눈이 멀었을지도 모를 친구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내가 만약 내일 소경이 된다면, 오늘 내가 무엇을 보고 살까 그런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내가 만약 내일 귀머거리가 된다면, 오늘 내가 어떤 음악을 들을까 그런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결코 여러분의 인생이 허무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 저에게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을 일으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영혼의 눈을 뜨게 하시고, 지혜의 눈을 뜨게 하시고, 지식의 눈을 뜨게 하시고, 영원한 빛과 생명의 세계를 밝히 보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다. 세 번째 기적이 농아의 청각을 고쳐주신 표적이다.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한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만 장애인이 대략 일백만 명 정도 있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시각장애인이 25만 명 정도이고, 청각장애인이 35만 명이나 된다. 우리 가운데 이들처럼 말을 듣지 못해서 수화로 대화를 나눠야 하는 불편을 겪는 분이 있는가?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에 농아가 말을 듣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 많은 말들을 멀쩡한 두 귀로 듣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 저에게 귀먹은 자가 듣는 기적을 일으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영혼의 귀를 열어 주시고, 혀의 맺힌 것을 풀어주시고, '에바다'라고 말씀하시고, 막힌 것이 뚫리고 닫힌 것이 열리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다. 네 번째 기적이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을 고쳐주신 표적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계신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간에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 11:5)고 적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고쳐준 일이 있고, 바울도 터키의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쳐준 일이 있다.

앉은뱅이들은 대개 구걸로 연명을 한다. 중국에서는 요즘 지하철과 도로 등지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도를 넘은 구걸 행위가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베이징에 사는 한 중국인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육교에서 구걸행위를 하는 한 남성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걸인은 맨바닥에 누운 채 몸을 배배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신체 대부분을 쓰지 못해 보이던 걸인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는 걸 알아챈 뒤 욕설을 내뱉으면서 벌떡 일어나더니 돈을 수거하는 통을 챙겨 황급히 도망쳤다고 한다. 두 다리가 멀쩡한 소위 ‘짝퉁 거지’였던 것이다. 중국 언론매체에 따르면 이 걸인은 이 지역에서 여러 달째 구걸행위를 해왔으며, 경찰들까지 진짜 반신불수로 착각할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펼쳐 사람들을 속였다고 한다.

앉은뱅이 장애는 ‘체념’ 또는 ‘주저앉음’의 상징성을 갖는다. 성경에서 앉은뱅이들이 고침을 받고 일어서는 것을 보면, 중국의 한 걸인처럼 그들이 사진기나 공안(경찰)에 놀라서 벌떡 일어선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그분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벌떡 일어선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중에 체념상태로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비벼대면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분이 있는가?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에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멀쩡한 두 발로 걷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 저에게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을 일으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매순간 발과 발목에 힘을 주시고, 일어나 걷게 하시고, 일어나 뛰게 하시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님의 이름으로 걷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다. 다섯 번째 기적이 오그라든 손을 고쳐주신 표적이다.

<오체 불만족>이란 책을 쓴 오토다케 히로타다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장애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아간다. 그의 팔다리는 고작 10c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달리기, 야구, 농구,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보통사람과 똑같이 교육을 받은 그는 자신의 신체가 지닌 장애를 결코 불행한 쪽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초개성적’이라 생각하며 “장애와 행복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흔히 장애인은 불행할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지 않음을 온몸으로 말해준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팔다리가 없는데도 매일매일 활짝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는 “장애인이긴 하지만 인생이 즐겁다”고 얘기한다. 우리 가운데 오토다케 히로타다처럼 팔다리가 없어서 불편을 겪는 분이 있는가?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에 오그라든 손이 펴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멀쩡한 두 팔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두 팔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 저에게 오그라든 손이 펴지는 기적을 일으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매순간 팔과 팔목에 힘을 주시고, 손과 팔을 쓰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품꾼이 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많은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다. 여섯 번째 기적이 무능력자를 품꾼 삼아주신 표적이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포도원의 품꾼에 관한 것이 있다(마 20:1-16). 품을 파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일력시장에 나가 일감을 기다린다. 그들 가운데는 운이 좋아 아침 6시부터 일감을 얻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오전 9시에 혹은 12시에 혹은 오후 3시에 심지어는 오후 5시에 일감을 얻어 일터인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들도 있다.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는 절박한 사람들의 애환을 읽고 있던 포도원 주인이 그들 모두에게 한날의 양식을 사는데 필요한 돈을 품삯으로 지불했다. 아침 6시부터 일한 사람들을 빼고는 아무도 하루 품삯을 온전하게 받을 자격이 없었다. 자격이 부족한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은 아닐까? 그런데도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먹고 입고 쓰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한다.

기적을 베푸시는 주님, 저에게 이 모든 기적들을 일으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품꾼의 자격을 주시고,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게 하시고, 넉넉한 품삯까지 주셨으니, 제가 이룬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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