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교회 (마 20:1-1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2,239 2010.12.26 06:36

본문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교회 (마 20:1-16)

일군을 찾으시는 하나님

2010년 경인년이 어느새 한 주밖에 남지 않았다. 백호의 기운을 빌어 힘차게 시작했던 2010년이지만, 올 한 해는 국가적으로 볼 때, 즐거운 일보다는 슬프고 충격적인 일들이 더 많았다. 세계는 불황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기후악화로 배추파동을 비롯하여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했으며, 충격적인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다.

365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온 한해를 돌아보면, 힘들고 고달팠던 때와 즐겁고 행복했던 때가 없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마지막 주가 우리에게 절망의 벼랑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란 점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인류에게 새 빛, 곧 희망의 시작이 되어왔다. 이 시점은 또한 어둠에 밀리기만 하던 빛이 새 힘을 얻고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 새 빛, 곧 예수님과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하는 송구영신이 되었으면 한다.

지난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교회”를 지향하며 하나님의 뜻에 동역하는 교회가 되기를 힘썼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줄 안다. 공리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모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각자는 조금씩 주님 앞에 더 다가섰던 뜻 깊은 한 해였지 않았나하고 자위해본다. 아무튼 깊은 반성과 함께 좀 더 열심히 주를 섬기자는 뜻에서, 새해의 표어를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교회”로 결정하였다.

마태복음 20장 1-16절을 보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찾는 주인과 새벽부터 일력시장에 나가 일감을 찾는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노동자들은 우리 자신들이고,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찾다’이다. 하나님은 끝임 없이 일군을 찾으신다. 새벽 6시부터 일력시장에 나가기 시작해서 아침 9시와 정오, 오후 3시와 5시에도 나가서 일군을 찾으셨다. 일군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일감을 찾는 이들을 측은히 여기셨기 때문일까? 또 과연 우리는 일감을 찾고 있는 사람들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뽑아 일을 시켜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일을 시킬까봐서 꽁무니를 빼는 사람들인가? 또 아니면, 일감을 얻지 못하여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사람들인가? 예수님의 이 포도원 비유에서 우리가 반드시 봐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시고 일군을 찾으신다는 점과 하나님께 뽑힌 사람들의 특징은 해가지도록 포기하지 않고 일감을 찾고 있었던 사람들이란 점이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안다. 얼마나 눈물겹고 고된 일인가를 알고 있다. 일이 없다는 것만큼 서글픈 일이 없다. 벌이가 없다는 것만큼 슬픈 일이 없다. 하루 종일 일감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사람들의 아픈 심정을 누구보다 하나님은 더 잘 알고 계신다. 문제는 이런 심정을 우리가 주님의 일을 위해서 갖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포도원의 일은 주님의 일, 곧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한다. 하나님께 뽑힘을 받은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먼저 뽑혔느냐 혹은 나중에 뽑혔느냐는 하나님의 나라에 그다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간절하게 자원해서 주님의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고자 하는가에 있다.

포도원에 들어간 일군들

마태복음 20장 1-16절의 포도원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먼저 하나님의 일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고, 개개인의 능력에도 큰 차별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6절 “이와 같이 앞선 사람이 뒤떨어지고 뒤진 사람이 앞설 것이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학력이나 재력이나 개개인의 능력에도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무한한 가능성을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활짝 열어놓고 계신다. 능력이 많아서 새벽부터 뽑혀 일한 사람을 능력이 적어서 오후 5시까지 서성이던 사람이 앞설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는 가난한 노동자들로서 자신을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도록 뽑아준 포도원 주인에게 누가 더 고맙게 생각하겠는가? 아침 6시부터 일한 사람이겠는가, 아니면 오후 5시부터 일한 사람이겠는가? 주인에 대한 고마움은 오후 5시부터 포도원에 들어가 일한 사람이 제일 클 것이고, 반대로 주인에 대한 불평은 오전 6시에부터 포도원에 들어가 일한 사람이 제일 클 것이다.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풀타임(full time)으로 일한 사람은 하루 품삯을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품을 팔수 있게 해 준 주인에게 고마운 마음은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감을 구하지 못해 일력시장을 서성이던 노동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헤아려준 주인의 너그러운 마음이 불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자격이 없어서 정상적인 시간에 일군으로 뽑히지 못했던 사람들, 특히 온종일 일감을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에게 그 짧은 시간이나마 일감을 준 주인이 너무 고마웠을 것이다. 아침 6시부터 일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농땡이를 부리며 일과가 끝날 시간만을 기다린 반면, 늦은 시간에 일터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인에 대한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지는 해가 멈춰서기를 바라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일했을 것이다. 주인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한 하루 품삯을 지불하였다.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하루 품삯을 온전하게 받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감격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몇 번씩이나 고맙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이 포도원 비유는 늦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은혜를 입은 이방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아침 6시부터 일하고도 하루 품삯밖에 받지 못했다는 불평은 일찍 선택받았다고 뽐내며 선교에 태만한 유대교인들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속하는가? 모태신앙을 자랑하며 평생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주님을 섬겼노라고 자만하며 태만한 유대교인에 속하는가, 아니면, 못나고 부족하여 일찍이 주님을 알지도 못하다가 남보다 훨씬 늦게야 주님의 부름을 받아 은혜를 입고 감격해 하는 이방 기독교인에게 속하는가? 일감을 찾아 일력시장에 나가 서성이었을 나 자신을 수십 번 또는 수백 번 생각해 보지만, 과연 내가 공정한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뽑혀서 일감을 얻을 만큼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는가?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 과연 내 능력 때문이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후 3시 혹은 5시에 가까스로 뽑혀서 포도원에 들어가 단 몇 시간 일한 일군처럼, 하나님께서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신 때문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면 그는 필연코 은혜를 입은 자일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일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일군이 될 수 있을까? 마태복음 20장 1-16절은 일군으로 뽑히지 못한 이후에도 일력시장을 떠나지 아니한 사람들, 일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해질녘까지 일력시장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지켰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일력시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찾아온 포도원 주인에게 뽑혀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할 수 있었고,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동등한 품삯을 받았다. 이것은 교회가 아무리 미력하고 성장이 더디다할지라도 주님의 교회에 대한 미래와 꿈을 버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교회는 주님이 당신의 피로 사서 세우신 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인내하며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서 쓰신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하나님께 뽑힘을 입고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들과 같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보답할까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오후 3시 혹은 5시에 가까스로 뽑혀서 포도원에 들어가 열심히 일한 품꾼들처럼, 하나님의 선택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7가지 큰 죄가 있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 일곱 번째가 희생이 없는 종교라고 말했다.

교회는 위계의 질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성 프랜시스의 기도처럼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일군들이 되기를 원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기를 바라며,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기를 바란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들이 일군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권이며 영광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며, 인간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기뻐했으며, 그분을 섬기게 된 것을 크게 즐거워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종 혹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어떤 다른 사람의 종이 된다면 이는 매우 수치스런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특권이며 영광이다.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고전 4:2)고 했다. 또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다. 물론 여기서 충성이란 말은 신실 하라, 하나님과의 약속을 굳게 지키라는 뜻이다. 2011년 신묘년(辛卯年)에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군이 되어 더욱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