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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생존법칙(살전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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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193 2010.12.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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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생존법칙(살전 5:1-11)

생존에 필요한 기지 첫 번째

2011년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기지를 요구하는 때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려 있다. 강대국들은 야수처럼 한반도를 집어삼키려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말에 노쇠한 청과 신흥강국인 일본과 같은 몇몇 깡패나라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가 우리를 보호해 줄까를 놓고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나라꼴을 망친 때처럼 또 해방직후 좌파와 우파로 나눠져 싸우다가 결국 남과 북이 갈린 때와 다름없다. 성서적으로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과 이집트와 같은 깡패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노쇠한 이집트에 집요하게 매달리다가 신흥강국인 바벨론에 망하고 만 그 때와 다름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남북이 서로 으르렁 거리며, 서로 어느 한쪽 강대국의 비호를 받으며, 강대국들의 패권다툼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이다. 따라서 약자인 우리나라에 지금 강하게 요구되는 것은 기지와 단합이며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다.

2011년은 신묘년(辛卯年), 토끼해이다. 토끼해는 생장ㆍ번창ㆍ풍요를 상징한다. 암컷 한 마리가 일 년에 최대 800마리까지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번영, 우리 교회의 성장, 우리 각자의 성공이 크게 기대되는 희망찬 새해이다. 토끼해는 다정하고 사랑스런 화목관계를 상징한다. 반목과 분열을 그치고 대동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또 토끼해는 위기를 모면하는 기지를 상징한다. 약자인 토끼가 발휘한 기지가 올 한해 우리 모두의 삶에 있기를 소원한다. 별주부전을 보면, 약자를 수탈하는 수궁(水宮)의 용왕(龍王)이 병들자, 토끼 간(肝)을 구하는 사명을 띤 자라가 산중에서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수궁으로 돌아왔으나, 토끼가 간을 볕에 말리려고 육지에 꺼내 놓고 왔으니 다시 가서 가져와야 한다고 기지를 발휘하여 육지로 돌아온 후에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이다. 토끼가 왜 토끼인가하면, 토끼기(도망)를 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끼기’(도망)가 손자병법 36계에 속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별주부전의 이야기는 세상이 온통 속이고 속는 요지경이란 점을 시사한다. 토끼는 약자의 상징이다. 별주부는 이런 토끼에게 육지는 맹수가 많아서 위험하지만, 수궁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며 유혹한다. 별주부의 유혹에 빠진 토끼는 수궁으로 들어간다. 위기에 빠진 토끼는 기지를 발휘하여 그곳을 도망쳐 나온다. 토끼는 기지는 좋지만 남에게 잘 속는 약점이 있다. 별주부는 수궁 지배층의 충성스런 신하이다. 육지에 나가 달에서 약을 찧는 신령스런 토끼 간을 구해오라는 용왕의 호소를 듣고 모든 물고기 신하들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선뜻 나서지 않았으나 별주부는 목숨을 건 육지행을 자청한다. 별주부는 용기와 충성심은 있지만, 역시 잘 속는 약점이 있다. 세상은 이처럼 속임수가 난무한 위험천만한 곳이다. 도처에 우리를 삼키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크게는 국제정치에서 그렇고, 작게는 우리 각자의 삶에서 그렇다. 약자인 우리에게 필요한 생존법칙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신앙인의 기지는 거기서 나와야 한다. 남을 속이려는 데서 나오면 안 된다. 하나님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온 기지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기지는 정직과 성실에서 나온다. 정직과 성실은 끊임없는 자기 싸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뢰가 여기서 나온다. 정직과 성실이 생존법칙이 되는 것은 역설적이다. 식빵에 쥐를 넣어 경쟁자를 쓰러뜨리려했던 속임수는 멸망을 초래했다. 그러나 정직과 성실은 신망을 키운다. 궁극적으로 성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자기와의 싸움이 없이는 정직하고 성실하기 어렵다.]

생존에 필요한 기지 두 번째

많은 짐승들 가운데 약자인 토끼가 가장 강자인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이야기가 있다. 길 가던 나그네가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주었다. 그러나 굶주렸던 호랑이는 자기를 구해준 나그네를 잡아먹으려 했다. 나그네는 살려준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라고 말하면서 삼심제로 재판을 받아보고 나서 잡아먹혀도 먹히겠다고 했다. 1심(審)에서 속까지 검은 까마귀는 호랑이가 옳다고 강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2심(審)에서 교활한 여우도 호랑이가 옳다고 강자의 편을 들었다. 상고심(上告審)인 3심(審)을 맡은 토끼는 현장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호랑이로 하여금 함정에 다시 들어가도록 했다. 호랑이가 함정에 다시 들어간 다음, 토끼는 나그네에게 그대로 두고 가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굶주린 호랑이가 숲에 나타나 모든 짐승을 무차별 잡아먹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동물들은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비통한 심정으로 잡아먹힐 순서를 정하였는데, 맨 먼저 잡아먹히겠다고 나선 것이 토끼였다. 그는 호랑이 앞에 일부러 늦게 나타나서 하는 말이, 오는 도중에 호랑이를 데려오면 당장에 잡아먹겠다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짐승을 만나 늦었다고 했다. 자존심이 상한 호랑이는 결투를 벌일 속셈으로 토끼를 앞장세우고 그 짐승을 찾아나셨다. 그러나 토끼는 호랑이를 벼랑 끝으로 유도한 다음 기습적으로 등을 떠밀어 벼랑에 떨어져 죽게 하고는 숲 속의 나약한 짐승들을 구했다.

토끼의 임기웅변술이 윤리적으로 정당했는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았다. 절대주의자들은 호랑이를 속인 토끼의 행위가 무조건 잘못되었으니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말했고, 상황주의자들은 생명을 구한 것이 호랑이를 속인 것보다 우선된다며 토끼를 변호했으며, 공리주의자들은 좋은 결과는 항상 선한 것이므로 토끼의 거짓말은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누구의 주장이 옳든 간에 토끼는 생존을 위협하는 숲속의 깡패를 물리친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강자의 상징인 호랑이해가 가고 약자를 대변하는 토끼해가 왔다. 양육강식의 자연법칙 속에서 생존투쟁을 펼쳐야할 약자인 우리나라와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생존법칙은 남을 속이는데 있지 않고, 역설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는 자신과의 싸움에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힘을 키워 남을 돕고자하는 선하고 지혜로운 마음에 있다. 우리 신앙인의 기지는 여기서 나와야 한다.

작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과거에 햇볕정책을 통해서 후하게 퍼주고 안보를 보장받으려 했거나 강대국에 의지해 안보를 보장받으려 했던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 자신들과의 충실한 싸움, 즉 자신의 힘을 진정으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 사건들이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강대국들에 의지하여 안보를 보장받으려하는 남과북 이스라엘왕국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북왕국은 앗수리아에 망했고, 남왕국은 바벨론에 망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과연 우리가 경주하다말고 토끼처럼 낮잠이나 자고 있을 때인가 또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 빠져있을 때인가를 경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 각자에게도 언제 어떻게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자신과의 싸움에 전력하지 않으면 낮잠 자다 실패한 토끼처럼 쓴 잔을 마시게 된다.

생존에 필요한 기지 세 번째

토끼가 거북이와 경주를 하다가 낮잠을 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실패한 전형이다. 토끼는 빨리 달릴 수는 있었지만, 목적의식이 없었고, 거북이는 비록 느리긴 했지만, 정복해야 할 목표가 있었다. 토끼는 자만했지만, 거북이는 겸손했다. 자신의 부족을 알았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것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정상적인 경쟁에서 결코 토끼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했지만, 이에 거북이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실용주의적 성공주의에 연연하지 않았다. 실용주의적 성공주의는 우리 사회를 총체적 부실과 부정부패로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토끼를 이기든 지든 상관치 않았다. 토끼와 경주를 벌인 것은 자신과의 싸움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게임에 임했고 최선을 다했던 것이 우연찮게 승리를 얻게 된 요인이었다.

어느 분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은 글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이 우화를 통해 여러 교훈을 배웠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느리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같이 성실함의 전형인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한참 바뀌었다. 사람들이 성실하다고 모두가 잘살 순 없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바로 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열 받은 토끼가 거북이에게 다시 대결을 요청한다. “야, 한 번 더 뛰어!” 첫 대결로 뼈저린 교훈을 얻은 토끼는 이번에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 결코 한눈팔지 않아서 토끼가 이겼다.

속도의 시대로 바뀌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뛰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빨리빨리'가 시대의 교훈이 되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죽어라 일하고 속도를 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거북이가 열 받았다. 경기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문제 삼아 다시 토끼에게 경주를 제안한다. “야, 너 토끼 한 번 더 뛰어, 그런데 이번에 코스를 바꿔, 강을 건너자!”

시대가 요구하는 철학이 속도에서 이제는 경쟁력의 시대로 바뀌었다. 내가 잘 못하는 것 때문에 속상해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과는 다른 경쟁력을 갖추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지금도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을 위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하는 이가 많으리라. [그러나 성실과 정직도 경쟁력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월이 흘러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야 이번에는 우리 둘만 뛸 것이 아니라 정글에서 열리는 큰 대회에 나가자.” 평지에서는 토끼가 거북이를 업고 뛰고, 강에서는 거북이가 토끼를 업고 뛰고 둘이 팀을 이루어서 이겼다. 이것이 바로 팀워크의 시대다.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팀을 믿고 팀의 시너지를 활용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70,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1세기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버전 업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다. 성실의 시대, 속도의 시대, 경쟁력의 시대, 팀워크의 시대. 나 자신은 어떤 시대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2011년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또는 하나님 앞에서 펼치는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하자! [우리 모두 영웅이 되도록 하자. 영웅은 외롭다. 영웅이 왜 영웅인가,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기 때문이다.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처럼 우리 모두 금양모피를 찾아 2011년의 거친 바다에 배를 띄우고 돛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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