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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7]하나님의 진노(롬 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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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136 2011.04.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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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7]하나님의 진노(롬 1:18-19)

인간의 죄 문제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는 인류가 안고 있는 죄 문제와 그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다. 인간은 죄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행위나 입산수행과 같은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창조주의 존재를 의식하고 공경할만한 이성과 종교성이 있다. 도덕법을 만들어 지킬만한 사회성도 있다. 지켜야할 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 느끼는 양심의 가책도 있다. 또 도덕법과 양심법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특히 하나님과 긴밀하게 관련된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따르면, 이런 것들을 잘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바울은 1장 18-32절에서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시기(계시) 때문에 이방인들일지라도 창조주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2장 1-16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에 자기 존재를 드러내시기 때문에 도덕주의자들에게 양심법이란 것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2장 17절부터 3장 8절까지에서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자기를 특별하게 계시하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3장 9-19절에서 결국 인류는 그들의 죄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3장 20절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다”고 하였다.

여기에 우리가 반드시 해답을 얻어야할 물음이 있다. 그 물음은, 왜 인간이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가이다.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인간은 만들어진 존재 즉 피조물이어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류와 실수를 피할 수 없다. 오류와 실수를 피할 수 없다면, 죄를 안 짓고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은 오류와 실수를 완벽하게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죄를 완전하게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며 절대적이다. 그런데다가 법이란 아무리 잘 지켜도, 혹 가다 한 가지만 지키지 못해도 죄를 짓는 게 되고 만다. 만 가지 법들 중에 한 가지만 지키지 못해도 죄인이 되고 만다. 따라서 유대인들처럼 613개의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한 속성을 만족시키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하고 완전한 기준을 인간에게 요구하신다면,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 인간은 아무리 고결하고 깨끗하게 산다고 해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이, 죄 없는 사람이 없다. 큰 죄도 죄이고, 작은 죄도 죄이다. 만일 하나님이 ‘죄의 대가는 죽음’이란 잣대를 들이대신다면, 아무리 깨끗하고 고결하며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어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은총을 입지 않으면, 아무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날, 심판의 날과 같이 하나님이 특별히 정하신 날과 시간에 폭발하는 진노를 말한다. 노아시대의 홍수심판 때처럼, 소돔과 고모라성의 유황불심판 때처럼 혹은 재림의 날에 있을 대심판 때처럼 특정한 때에 폭발하는 진노를 말한다. 통상 하나님은 당신께서 정한 시간과 날자가 임박한 때까지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역으로 추적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쉽사리 분노를 폭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노를 발하시면 노아 때의 홍수심판이나 소돔과 고모라성의 유황불심판처럼 엄청난 재앙이 인간에게 닥치게 된다.

신약성경에 쓰인 ‘진노’나 ‘분노’를 뜻하는 단어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뚜모스’(thymos)이고, 다른 것은 ‘오르게’(orge)이다. ‘뚜모스’는 쓰나미나 지진처럼 바람, 물, 땅, 혹은 표범처럼 짐승들의 거친 움직임에서 유래된 말이다. 신약성경에서는 대부분 분노를 의미한다. 반면에 ‘오르게’는 보복 혹은 징계를 뜻하기 때문에 불의를 갚아야 하는 통치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본문에 사용된 단어는 '오르게'로써 악을 미워하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드러나는 진노를 말한다. 그것은 마치 춘향전에서 암행어사가 출현하여 불의와 부정을 일삼던 목민관을 심판할 때 드러내는 진노와 같다.

성경에서 사랑과 진노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하나님 사랑의 크기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서 계량된다. 반대로 하나님 진노의 크기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계량된다. 1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강도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수용하는 자는 이 진노를 피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는 자는 이 진노를 면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이었다. 하나님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무조건 진노하시거나 무조건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죄 없으신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이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그 사실을 믿고 수용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이렇게 하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들로부터 죗값을 지불받더라도 누그러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의 속성은 만족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만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한 싸움 끝에는 정당한 죗값을 받게 했더라도 쉽게 분이 삭여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음은 하나님과 진노의 대상인 인간을 근본적으로 화해시킬 수 있는 화목제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를 삭일 수 있고, 인간을 용서하시고픈 하나님의 사랑을 만족시킬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님의 십자가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가 일종의 우리 선조들의 자책문화인 ‘조상매’와 같기 때문이다. 아무 잘못 없는 하나님께서 인간 탓을 당신 탓으로 돌리는 ‘내 탓 정신’이 하나님의 진노에 담겨있는 귀중한 개념이다.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할 점이다.

하나님의 명품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전(前)에는 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전에는 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들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명품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고, 하나님 집의 식구가 되었다고 말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공평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 집의 식구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풍조와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명품답게 품위를 유지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위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라고 말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하는가?’고 묻고 답하기를,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온갖 영적인 복들을 주시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영적인 복들은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신 것,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신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를 용서하신 것,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신 것,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알게 하신 것,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신 것, 성령님을 우리가 받을 상속에 대한 약정서에 직인 찍음으로 주신 것, 성령님을 우리가 받을 상속에 대한 약정서의 담보물로 주신 것들을 말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전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고 묻고 답하기를, 우리가 다 죄의 삯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들이며, 세상풍조를 따라 살았고,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따라 살았으며, 육신의 정욕대로 살았던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들’이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명품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전에 우리는 육신적으로 이방인이었고, 유대인들로부터 할례 받지 못한 자란 소리를 듣던 자들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도 없었으며, 선민의 약속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런 소망 없이, 하나님도 없이 황야의 늑대처럼 외롭게 살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 덕분에, 그분이 흘리신 보혈덕분에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었고, 하나님의 자녀까지 되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이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이고, 하나님 집의 가족이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3장에서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런 큰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고 묻고 답하기를,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서 비롯된 것이고, 하나님이 감춰 놓았던 비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 비밀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예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속박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비밀병기,’ 하나님의 ‘히든카드,’ 하나님의 ‘슈퍼스타,’ 하나님의 ‘제3의 대안’이었다. 둘째는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차별 없이 값도 없이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시겠다는 계획이었다. 우리가 다 이 비밀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새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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