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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8]하나님을 알만한 것(롬 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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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5,048 2011.04.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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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8]하나님을 알만한 것(롬 1:19-20)

하나님의 형상

초자연적인 기적과 성경이외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인간에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3차원의 보이는 물질세계에 갇힌 인간이 4차원 이상의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를 자각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바울은 로마서 1장 19-20절에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람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만물 속에 하나님의 특성들을 알만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말하고 있다. 사람 속에도 만물 속에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럼, 사람 속에 있는 무엇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에 고려해야할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이 갖고 있는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장 26-27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과 어떤 모양을 말할까? 하나님과 인간에게 공통으로 있는 것을 찾아보면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찾을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인성(人性), 즉 지성(이성), 감성, 의지, 사회성이다. 인성은 인간 본성의 특질이면서 또한 하나님 본성의 특질이다. 이 특질, 곧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를 자각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고,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인성, 즉 지성(이성), 감성, 의지, 사회성은 신(神)과 천사와 인간만이 가진 공통적인 특질이다. 물론 동물에게도 다소의 지능과 감정과 의지와 사회성이 있지만, 인간처럼 지성으로 학문을 창출할 수 없고, 감성을 문화 예술로 승화시킬 수 없으며, 본능 말고는 의지적 결단을 기대할 수 없다. 사회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들도 관계성을 갖고는 있지만, 인간들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문명형태의 사회구조나 관계형성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인성의 요소는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요소를 가지고 인간은 하나님에게는 예배자로서, 만물에게는 청지기로서, 예배와 찬양, 관리와 보전의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예배자로서 인간이 관심하는 신학과 신앙은 지성과 감성보다는 결단과 관계회복에 비중을 둔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 즉 인성이란 그릇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그릇에 채울 의(義)와 진리의 거룩함이 내용물로 주어졌다(엡 4:24, 골 3:9-10). 그러나 인간의 거듭된 실수와 오류로 인해서 의(義)와 진리의 거룩함이 더렵혀졌다. 이 더럽혀진 내용물이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갈 5:19-21) 같은 것이며,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중생의 씻음과 새롭게 하심으로(딛 3:5) 회복된 내용물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 5:22-23)와 같은 것이다.

자연(일반) 계시

그럼, 만물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만하게 하는가? 몇 가지 가능한 방법들이 있다. 첫째는 만물의 존재 자체가 창조주의 존재를 증명한다(자연신학적 증명). 둘째는 만물과 같은 결과물이 있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최초의 원인(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한다(우주론적 증명). 셋째는 불완전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완전한 신(神)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한다(존재론적 증명). 넷째는 만물에 제각각 존재목적이 있는 것은 고도의 지적 설계자가 계시다는 것을 증명한다(목적론적 증명). 다섯째는 인간에게 도덕법칙이 있는 것은 그것의 원천이신 신(神)의 존재를 증명한다(도덕적 증명).

갈릴레오(Galileo Galilei/1564-1642)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는데, 한 권은 자연이란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성경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를 하나님이 주신 자연이란 책에서 배운다.”고 하였다. 그렇다. 자연은 하나님을 알만하게 하는 보편적인 계시이다. 성경이 인간의 삶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구원활동을 기록한 책이라면, 자연은 창조 과정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이 두 가지가 다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확인해 주는 계시(啓示)들이다.

한편 대(大) 진화(進化) 옹호론자들은 자연은 어떤 형태로든 신(神)의 존재를 계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연한 대폭발로 우주가 생성되었고, 지구에 생명체가 생기면서 강자가 살아남는 자연선택이 생물의 종(種)의 진화를 진척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설에 대해서 소(小) 진화(進化)를 수용하는 창조론자들은 대(大) 진화(進化)를 수용할만한 확고한 자연적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파리는 언제나 파리이고, 원숭이는 언제나 원숭이였듯이 유전학적으로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들의 태아가 형태와 구조에 있어서 서로 비슷한 것은 진화를 입증하기보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지적 설계를 입증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도 과학적 결론은 아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고 한 히브리서 11장 3절의 말씀처럼 자연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계시한다는 신념은 일종의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만물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강조한 신학자가 칼 바르트이다. 칼 바르트는 자연 계시로써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가 만물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전도의 미련한 것,” 즉 십자가의 도에 관한 사도들의 설교뿐이라고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밝혔듯이 칼 바르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로마서 1장 22-23절의 말씀대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이유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 계시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이나 자연 계시 또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철학적-신학논증으로써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가 믿는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게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 곧 성경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하나님을 알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았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정확하게 밝혀주는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칼 바르트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모든 인간이 서야 할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 대신 설 자로 선택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배반하고 죄 범한 인간에게 영생의 축복을 마련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다.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오히려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셨다. 또 하나님은 인간의 몫을 당신께서 받는 대신에 당신의 몫인 축복과 생명을 인간에게 주시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셨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이시라고 바르트는 말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큰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격을 갖춘 고등한 동물로 만드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인간을 위해서 당신의 권리와 권한을 제한하신 분이시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과 도전과 모독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고 계신 분이시다. 오래 참으시면서, 인간들이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찾고 계신 분이시다. 오류와 실수투성인 돌아온 탕자들을 날마다 새롭게 빚어내는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서야 할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 대신 설 자로 선택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시고,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신 분이시다.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시고 인간을 높이기로 결정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벌을 받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이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과 더불어 우리 죄인들을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대신 흘린 보혈이었다. 우리 죄를 속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속죄제물이 되셨다. 이 큰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 읽고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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