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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13]인간의 숙명(롬 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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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750 2011.05.2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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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강13]인간의 숙명(롬 3:1-20)

유대인의 나음

바울은 로마서 7장 12절에서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하였다. 그런 바울이 율법을 문제 삼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만들어 지킨 울타리(게자이라)법과 관습(타카나, 민하그)법에 얽매인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계명인 율법을 지키는 인간이 완전하지 못해서였다.

할례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증표이고, 언약의 내용은 바울이 유대인의 유익이라고 말한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토라)이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있고, 언약의 증표인 할례가 있다는 점이 어떤 점에서 유익이 되는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유익이 된다. 약속이라 함은 문자적으로 가나안땅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 가나안땅을 자기 민족에 대한 배타적이고 문자적인 약속이라고 믿기 때문에 영적으로 하늘 가나안땅으로 이해하거나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약속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지 못했다. 그렇다보니까, 유대인들은 그들의 사명이 이방인 선교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안식일법, 손 씻기법, 그릇 씻기법, 음식법과 같은 각종 울타리법과 관습법들을 만들어서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차단하였다.

비록 율법과 할례가 그것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배타적으로 유대인에게만 특별히 주신 것이라 할지라도, 바울은 율법이 100퍼센트 완벽하게 지켜질 때 비로소 할례가 효력을 갖지, 율법이 단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할례의 효력은 정지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할례는 언약의 증표일 뿐 할례를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언약의 효력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약의 내용인 율법을 잘 지키느냐, 잘 지키지 못하느냐가 언약의 효력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인 율법을 눈물겹도록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노력과 성의만 따진다면, 백점만점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오류와 실수를 피하기 어려운 피조물이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류와 실수를 피하기 어렵다. 또 율법의 특성상 한 가지 법만 어겨도 죄를 범한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한 바울의 논증에 설득력이 있다. 또 이런 점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만큼은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특별이 다를 게 없어진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데는 민족의 차별이 없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만인이 하나님 앞에 평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3장 1절에서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묻고, 9-12절에서,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숙명

인간의 문제는 피조물로써 육체를 갖고 있다는데 있다. 인간이 오류와 실수는 물론이고,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육체에 있다. 피조물의 특징인 육체의 불완전함은 어찌해볼 수 없는 숙명이다.

인간이 피조물이란 점에 인간불행의 원인이 있다. 신(神)이라면 불행해질 리가 없겠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자 필연적인 운명이다. 인간은 오류와 실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죄인일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켜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타락했거나 악(惡)해서이기보다 완전하지 못해서 그렇다. 이 불완전이 인간을 죄인으로 만든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도덕법을 지키려는 책임의식을 갖는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고, 사회계약으로써 도덕법을 의식하게 된다. 죄의식은 인간에게 책임의식은 있는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데서 생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육체가 있기 때문이고, 육체에는 기본욕구라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인 이성(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있지만, 이것들은 말 그대로 형상(形象)일 뿐, 신적(神的)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능의 욕구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이성이 본능을 완전하게 제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처사이다.

세속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신적 존재나 기적을 부정하면서 믿을 것이라곤 인간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인간에겐 이성과 지성이 있다는 식이다. 인본주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인본주의가 있고, 세속인본주의가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은 인본주의의 표상이다. 기독교인을 비롯해서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누구나 인본주의자이다. 그러나 세속인본주의자들은 신적 존재나 신이 인간생활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과 심판도 믿지 않는다. 반면에 인간의 이성과 과학과 진화론은 신뢰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이성론(합리론)자 혹은 회의론자라고 부른다.

버펄로 소재 뉴욕 주립대 철학교수 폴 쿠르츠(Paul Kurtz)가 1980년에 초안한 <세속인본주의자 선언>을 보면,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할 인간 자신의 능력들을 믿는다고 되어 있다. 그들이 표방하는 것은 이성과 민주정치와 자유이다. 인간은 자유하며, 자신의 운명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다. 이성과 과학은 인간의 문제들을 쉽사리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성과 과학은 인간지식에 크게 공헌할 수 있고, 인간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인간지성의 함양을 대신할 그 무엇도 없다고 말한다. 세속인본주의는 신뢰를 신의 가호에 두지 않고 인간지성에 둔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도 믿을 것이 못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구세주가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피로 얼룩진 인류역사는 인간이 결코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첨단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이익을 주기도 하지만,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악용하려는 사악한 인간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운명

인간에게는 자유도 있고, 운명도 있다. 인간은 운명의 문을 여닫을 수 없다. 운명을 바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능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운명의 문을 여닫지 않는다. 만일에 하나님이 운명의 문을 여닫으신다면, 그 문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닌 게 된다. 하나님은 스스로 결정한 일을 번복하지 않기 때문이며, 오류와 실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결정은 완벽해서 번복할 일을 만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함부로 특히 나쁜 일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으신다. 이런 점에서 인간에겐 굳게 닫힌 운명보다 활짝 열린 자유와 기회가 더 많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유와 기회를 선용해서 발전과 유익을 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유와 기회를 악용해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도 있다. 자유란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만일 운전자가 운전 중에 문자를 보내거나 보내온 문자를 읽는다면, 그 행위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대가는 자유를 악용한 사람이 치려야한다.

인간에게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보다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어 있지만, 자유를 누린 다음에는 반드시 선악간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고 안 하고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대부분 인간이 결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책임도 함께 져야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된다.

인간에겐 운명이란 것이 있다. 운명이란 마치 굳게 닫힌 문과 같아서 아무리 열고 싶어도 열 수가 없다.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 자연법칙이다. 자연법칙은 엔트로피법칙 또는 제2열역학법칙으로써 죽음의 법칙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죽는다. 설사 생명이 없더라도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썩거나 병들거나 소모되어 사라진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운명이다.

죽음은 운명이지만 수명은 운명이 아니다. 인간은 주어진 자유와 기회를 활용해서 어느 정도 수명을 늘린다든지, 노화와 부패를 지연시킬 수 있다. 또 현상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여 치료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피조물은 만들어진 것이고, 만들어진 것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죽음이다.

예전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운명처럼 생각된 적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식물의 유전자 조작은 물론이고, 인간의 유전자까지 조작하여 맞춤형 아기를 생산할 수 있을 정도이다. 타고난 신체를 고치는 성형은 유전자 조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기술이다. 이런 행위들이 하나님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능력이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궁극적으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운명이다. 반대로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수많은 자유와 기회를 주고 계시다는 점이다. 이 자유와 기회를 세속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을 신뢰하는 이유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운명이 있다는 점은 불완전 인간이 반드시 믿고 신뢰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구원받아야할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이다.

*** 가장 적정한 거리에서 태양을 맴도는 지구에 생명력이 존재하듯이, 가장 적정한 거리에서 하나님을 맴도는 신자들에게 생명력이 존재한다.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생명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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